핑구스 피에스아이, 무사 까바 브뤼, 샤또 지스쿠르, 샤또 몽페라
재팬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 2007년에서 동상을 수상한 것 외에,
브뤼셀 국제 콩쿠르 2011년에는 금상을 획득했지.
- 음~ 내가 가져온 스푸만테보다 싼 데다, 산과 단맛의 밸런스가 뛰어나.
초여름, 비 오고 난 뒤의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볼에 닿는 바람을 느끼면서 달리는 듯한…
그런 기분 좋고 상쾌한 와인이에요.
- 34권 129쪽, 시즈쿠 & 쵸스케 & 카와라게 부장 -
맨날 근무시간에 흥청망청 와인 마시던, 아주 남부럽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던 타이요 맥주 와인사업부 직원들이 드디어 일을 하기 시작. 집에서 마시는 와인 3병 세트인 2980 세트를 내기 위해, 각자 갖고 온 와인들을 시음해 보는데, 그중에서 최종으로 결정된 와인이 바로 무사 까바 브뤼다.
까바의 이지한 특성답게, 어디에나 마시기 쉬운 휘뚜루마뚜루 페어링 하기 쉬운 무사 까바 브뤼. 까바의 특징인 짙은 페트롤 향(등유 향)과 리치 같은 열대 과일과 귤 같은 시트러스 향이 느껴진다. 산미가 중간 정도로 있어서, 입맛을 돋우기 좋다. 이 정도면 와인을 그다지 마시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무난하게, 호불호 없이 마실 수 있을 와인으로 타이요 맥주 직원들이 잘 선정한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도 여름이지만, 겨울에 등유 난로 피워놓고 이불속에서 귤 까먹는 느낌으로, 겨울에 캠핑 가서 마시고 싶은 느낌이 드는 까바라고 생각한다.
예, 이 복잡하고 고혹적인 향기는 나이가 꽤 많은 포도가 맞네요.
아마도 30년은 됐을 거예요. 다 떠나서 이 고요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스페인의 와인이라고 하면 정열적이고 진한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건 전혀 달라….
- 그 고요함은 표고의 높이에서 오는 거네. 해발 800미터가 넘는 지역의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이다 보니, 저절로 고요함을 갖게 된 게 아니겠나?
조용해. 미술관을 걷는 것 같아.
조용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야.
기대를 품고 계속해서 회랑을 걸어가. 무얼 기대하고 있는 걸까?
아는데 보이질 않아. 그 난해함에 당혹감을 느끼지만, 확신은 있어.
정신을 차리니 나는 한 장의 그림 앞에 서있어.
멍하니 그 강렬한 개성에 사로잡혀서,
물감이 만든 수수께끼 같은 댄스를 물끄러미 바라봐.
복잡하고 불규칙해 보이는 그 그림은, 사실은 하나의 철학적 통합을 보여주지.
안에 열정을 감추고 있지만,
그것을 알기 쉽게 표현해내지 않고 보는 이에게 해답을 맡기는 거야….
눈앞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컴퍼지션 II'.
추상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고전 미술과 현대 미술 사이에 흐르는 거대한 강의 흐름을 만들어낸,
이 러시아 아티스트의 심상 풍경과 닮은 것이… 이 와인 속에도 흐르고 있어.
…
'프사이(ψ)'는 그리스 알파벳의 23번째 문자라네.
비오디나미 방식으로 생산하는 포도를 심플한 양조법으로
차분히 시간을 들여 만드는 이 와인의 철학적인 의미와,
아마도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붙인 이름일 거야.
- 그렇군요. 에티켓의 나뭇가지 형태가 프사이네. 발상이 재미있는 걸.
그야말로 칸딘스키야.
- 36권 30쪽 시즈쿠 & 카와라게 부장 및 타이요 맥주 직원들 -
타이요 맥주 와인사업부 직원들은 바로 이전에 소개한 무사 까바 브뤼를 포함한 집에서 마시는 스페인 2980 세트로 소소하게 성공을 거둔다. 문제는 이것이 스페인 와인은 저렴하다,라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 그 우려에 스페인에도 프리미엄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 수입업자가 와인사업부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그 수입업자가 이후 택배로 보내준 와인이 바로 핑구스 PSI 2009년 빈티지.
스페인의 스타 생산자 피터 시섹의 와인 핑구스의 엔트리급 와인, 피에스아이. '프사이'보다는 '피에스아이'로 더 많이 불리는 것 같다. 지금까지 2016 빈티지와 2018 빈티지를 마셔볼 수 있었는데, 잘 만든 스페인 와인에서 맡아볼 수 있는 보랏빛 라일락 꽃향기와 더불어, 허브에서 오는 스파이시, 약간의 간장향을 느낄 수 있었다. 향기가 좋아서 기분 좋게 마신 핑구스 피에스아이. 약간 달큼한 뉘앙스가 있는데, 달다기보다는 집에서 과일 넣고 만든 간장 같이 약간 달큼한 느낌 정도로, 산미는 중간이다. 솔직히 시즈쿠가 표현한 칸딘스키의 컴퍼지션 II 인 것도 모르겠고, 고요한 것도 모르겠다. 너무 현학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렇지만, 핑구스 PSI는 너무도 잘 만든 와인인 것은 인정.
어머나! 마고 마을의 3급 샤토네요!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 와인이에요.
젊지만 의외로 마시기 좋아요.
- 응. 품위 있으면서 화려하고 움직임이 있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와인이야.
수많은 신사숙녀가 왈츠에 맞춰, 빙글빙글 돌면서 춤추는 듯한 와인이야.
- 39권 28쪽, 시즈쿠 & 미야비 -
11사도 대결에서 시즈쿠가 기분 좋은 패배를 하고, 2차로 크리스토퍼 왓킨스가 데려간 레스토랑에서 마신 와인은 바로 샤또 지스쿠르 2003년 빈티지다.
과거에 제임스 서클링 행사에서 2010 빈티지를 마셔보고, 마고 지역의 장미향을 처음 느껴 너무 만족스러워서 구매했던 2016 빈티지. 마고 지역 와인답게 여전히 살아있는 장미향이 향기롭고, 간장향, 쿰쿰한 버섯향, 파프리카의 스파이시한 향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는 두부와 표고버섯 넣고 오랫동안 끓인 된장찌개 같이 푸근하고 부드러운 느낌. 시즈쿠의 표현처럼 장미의 화려함이 느껴지지만, 그 장미향이 인위적인 향수 같은 느낌이 아니라 소박하게 정원에 피어있는 생화의 느낌이라 요란스럽지 않고 우아한 느낌이 드는 샤또 지스쿠르 2016 빈티지였다.
방금 순간적으로 음악이 들렸어…. 뭐더라? 70년대 영국의 록밴드인데.
-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자네. 하지만 이해해. 아마 '퀸'이겠지?
파워풀하고…
그러면서 녹아내리는 듯한 단맛과 톡 쏘는 듯한 신맛이 확 밀려오는 느낌이야.
그거야말로 퀸의 보컬의 달콤하고도 허스키한 목소리를…
중후한 기타와 묵직한 드럼으로 감싸는 듯한….
뭐랄까, 클래식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 이건 보다 모던한 느낌ㅡ.
역시 '퀸'이에요.
- 1권 97쪽, 시즈쿠 & 시로 -
<신의 물방울>하면 이 와인을 빼놓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물방울> 와인으로 입문하는 와인 1위는 단연코 샤또 몽페라. 아버지 칸자키 유타카가 췌장암으로 타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와인만 마셨다는 불만에 와인으로의 여정을 거부하던 시즈쿠가 와인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던 와인이 바로 샤또 몽페라 2001년 빈티지다. 시즈쿠가 퀸의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한 와인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사실 그 정도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시즈쿠가 마신 2001년 빈티지는 정말 펑키하고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함이 조화로운 느낌이 들었을지 몰라도, 내가 마신 2014 빈티지와 2019 빈티지는 중상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인다. 딸기, 블루베리 같은 조밀한 베리류의 향기, 까베르네 쇼비뇽에서 오는 초록 피망의 스파이시함과 흙 향이 느껴진다. 마시니 엄청 스파이시해서 혀가 지릿지릿할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는 하는데 크게 임팩트가 있는 와인은 아니었다. 아마도 전통적인 보르도 레드 블렌딩인데, 클래식함 보다는 모던함이 느껴지고, 강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운 뉘앙스가 살아나 저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유명세보다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의 와인이었다.
이렇게 2023년의 칸자키 시즈쿠와의 나 홀로 시음 대결은 끝. 내년에 또 <신의 물방울>을 읽었을 때는 또 얼마나 많은 와인을 마신 다음일까. 의식하고 마시는 게 아니라, 우연히 마시고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만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혹시?'라는 기대감에 더 마음이 들뜬다. 다음에는 <신의 물방울> 최종장인 <마리아주>에 나온 와인들과 페어링을 해 볼 생각.
<신의 물방울>에 나온 다른 와인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