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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09. 2023

'바샤커피'로부터 한 수 배웁니다. 럭셔리 마케팅.

브랜드 인사이트 - 01 바샤커피


올해 싱가포르로 출장을 다녀왔다. 싱가포르에 언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가. 코로나 19로 인해 대략 8년 만에 방문한 싱가포르이었다. 싱가포르의 여러 상권들을 돌다가, 최고 관광 상권이자 럭셔리 상권인 '마리나샌즈베이몰'에 들렀는데, 분명히 8년 전에 못 보던 커피 브랜드 샵이 있었다. 이름하여, 바샤커피.

한눈에 확 들어오는 오렌지 컬러, 중동을 떠오르게 하는 이그조틱 한 디자인에 한눈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분명히 8년 전에 본 기억이 없는데, 'Since 1910'이라는 숫자에 나도 모르게 갸우뚱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속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무릎을 탁! 하고 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들에게 한 수 배웁니다. 바샤커피로부터 배우는 럭셔리 마케팅 전략.






1910년부터 시작된 바샤커피?

#브랜드 헤리티지 이식

브랜드에게 '헤리티지'란 무엇일까. 내가 일하는 메이크업 업계에서 '헤리티지'는 종종, 아니 자주 꺾을 수 없는 그 무언가로 다가온다. 오래되고 분명한 헤리티지를 갖고 있는 브랜드들이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역사로 밀고 들어오면, 그보다 짧은 역사를 지닌 브랜드 입장에서는 마치 골리앗과 처음 맞닥뜨린 다윗이 되고야 만다. 아니, 다윗은 궁극적으로 골리앗을 이겼으니 이것은 다소 적절하지 않은 비유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여 새끈한 한정판 제품을 낸다 한들, 디올이 헤리티지가 담긴 꾸뛰르 패턴의 제품을 내놓는 순간 고객들의 반응이 옮겨 가는 것을 심심찮게 본다. 그때마다, 헤리티지는 통곡의 벽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헤리티지'는 의미 그대로는 '유산'이라는 뜻인데, 결국 헤리티지가 있다는 것은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구절절 말 필요 없이, 보여주는 순간 납득하고야 마는. 그래서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함구하며 보여주고, 헤리티지가 부족한 브랜드는 설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럭셔리' 카테고리에 있어서 헤리티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럭셔리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2017년 싱가포르에 들렀을 때, 분명히 나는 바샤커피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바샤커피는 2019년에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샤커피는 영리하게도, 커피계의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이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어떻게? 역사적인 커피하우스를 모티브로 하여, 그 커피하우스의 역사를 단숨에 바샤커피의 헤리티지로 차용한 것이다. 원조 모델은 1910년 모로코에 있던 궁전 Dar el Bacha Palace로, 이곳에서는 손님들을 접대할 때 커피를 내놓았다. '모로코' 하면 '커피', '모로코 궁전' 하면 '커피하우스'라는 역사적인 공식을 차용하여, 2019년에 런칭한 신생 브랜드가 순식간에 유구한 역사를 지닌 헤리티지 명품 브랜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바샤커피가 처음은 아닌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싱가포르 브랜드인 TWG가 사용했던 방식이다. TWG의 1837년 역시 브랜드의 시작 연도가 아니고, 싱가포르 상공회의소가 설립된 년도로 싱가포르가 차, 향신료 등의 교역 장소가 된 해를 기념한 것이다. 실제 브랜드는 1837년이 아닌, 2008년에 시작되었다. 이렇게 차용해 온 숫자들이 브랜드에 헤리티지를 부여함으로써 해당 카테고리의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바샤커피와 TWG는 같은 그룹이다.






#확실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그조틱 한 오렌지와 블루 컬러

브랜드 헤리티지는 이식했다고 해도, 이들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잘 짜여 있고, 하나의 스토리 아래에서 통일된 요소들을 선보인다. 바샤커피는 과거의 바샤커피를 재현하고자 컬러, 타일 등등을 그때와 같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매장에 들어가면 마치 모로코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컵홀더도 마치 모로코 모자 같은 느낌이 나고, 그들이 포장재나 매장 디자인 등에 쓰는 오렌지와 블루 컬러 역시 모로코의 느낌을 십분 냈다. 원래 이전에는 모로코인들처럼 아랍 모자를 쓰고 판매원들이 일을 했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제 모자는 쓰지 않고, 키엘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전문가 포스를 내고 있다. (종교적인 색을 너무 내는 것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구현하고자 노력한 것은 비단 보이는 것뿐만이 아닌데, 커피에 대한 장인 정신도 과거의 바샤커피처럼 구현하고자 했다. 특히 커피에 대해서는 진심인데, 100% 아라비카산 커피 200종을 선보이고 있다. 플레이버는 자매 브랜드인 TWG와 유사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제품을 여러 번 개발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플래이버를 200개나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하늘 아래 같은 컬러 없다'는 공식에 의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홋수를 20개씩 개발하다 보면 사람이 미쳐간다.)

 





지하 2층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의 여정도 행복

#불편함도 기꺼이, 럭셔리 마케팅

무엇이 럭셔리고, 무엇이 럭셔리 마케팅인가. 정말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도, 답하기도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바샤커피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럭셔리는 고객으로 하여금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샤넬 백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감수하듯, 바샤커피를 사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내 면세점, 마리나샌즈베이몰, 아이온몰 등 총 4군데의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또한 마리나샌즈베이몰에서 바샤커피를 사고 마시기 위해서는 지하 2층에서 지상까지 올라가 야외에 나가야만 하는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들고 올라가는 길이 전혀 짜증 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이 브랜드를 경험하고 싶은 기대감이 더 증폭되었다. 샤넬 백을 사기 위해 오픈런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처음으로 공감이 되었다.






 


나름 메이크업 필드에서는 '럭셔리'라고 불리는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지만, 럭셔리 마케팅은 정말 할수록 어렵고 힘들다. 특히 아무런 기초 공사가 되어 있지 않은 시장에 처음 입점할 때가 가장 그러하다. 무슨 브랜드인지도 모르겠는데, 심지어 럭셔리로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면 여러모로 쉽지 않다. 헤리티지가 명확하게 있다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유통사에 '우리 이렇게 멋진 브랜드야'하며 영업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바샤커피는 참 영리하게 전략을 구축했다. 오래된 모로코 커피하우스의 헤리티지를 차용해 오고 그것을 로고에 넣는 영리함(1910 Bacha Coffee), 묘하게 에르메스가 떠오르는 오렌지 컬러를 사용한 영리함(덕분에 '커피계의 에르메스'라는 별칭을 얻은 것은 덤), 고객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게끔 매장 수를 제한한 영리함. 하지만 보여주기식에만 치중했으면 이렇게까지 사랑받지는 못 했을 텐데, 본질인 '커피의 퀄리티'에 집중한 영리함까지 더해지며, 명실상부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우뚝 서고 있다.


이렇게 바샤커피를 통해 한 수 배웠다.


'헤리티지'라는 것에 대해 그동안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게 없어서 힘들다고, 안될 거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바샤커피를 보니 그렇지 않다. 고객들은 이제 바샤커피가 1910년부터 시작된 커피 브랜드가 아닌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광한다. 어쩌면 이미 설득이 되고 난 고객들에게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본질(커피 퀄리티)이 탄탄하고, 스토리가 납득되고, 보이는 것과 연결이 잘 된다면, 즉 경험부터 구매, 만족에 이르기까지의 브랜딩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고객들은 기꺼이 로열티를 보여준다. TWG가 오랜 시간 싱가포르의 '선물' 경제를 살려왔듯, 이제는 바샤커피의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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