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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n 24. 2019

1925년,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주체성'의 한계

2019년 대중문화와 비교해보는 1925년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

<인생의 베일>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페인티드 베일>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줄 남자를 찾기 위해 몸을 치장하고 꾸미는 것이 여성 삶의 최고 미덕으로 여겨졌던 시대. 
어머니의 엄격한 지도 아래, 결혼할 만한 신랑감을 찾다가 당시 혼기가 꽉 찬 25살이 된 키티. 혹시라도 자신보다 외모가 못난 동생이 먼저 결혼할까 두려워 엉겁결에 때마침 청혼한 월터와 결혼을 하게 된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처치곤란 골동품 취급을 받기 두려웠던 탓이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건너간 키티는 유부남인 찰스 타운센드에게 첫눈에 반하고, 들끓는 욕망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른다. 완벽히 남편 월터를 속이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사실 월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키티에게 자신과 함께 전염병이 도는 중국의 소도시로 가게끔 키티를 종용한다. 


여기까지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사랑을 알기도 전에 결혼이란 제도에 속박되어 일종의 아내 역할극을 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비극을 맞이한 안나와 키티가 매우 겹쳐 보였다. (심지어 <안나 카레니나>에서 사회적 시선과 정해진 틀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 뻔했지만, 레빈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된 안나의 사촌 동생 이름도'키티'였다.) 하지만 키티는 전염병이 창궐한 곳에서 매 순간 삶과 죽음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수녀들의 삶에 경외감을 느끼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살았던 삶은, 늘 예쁜 여자로서의 삶, 누구에게나 돋보이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수녀는 키티와 같은 여성이지만 다른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그동안의 자신의 무지함과,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편협함을 느끼며 키티는 삶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조금은 자기 합리화 같지만, 삶이란 커다란 의미 아래, 자신들이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티끌과 같단 생각을 하며, 월터가 그녀와 그 자신을 용서하고 편해지길 바란다. 하지만 끝내 월터는 그녀를 사랑한 자기 자신도 용서하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에 따라 키티는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보가 들려오는데, 이는 키티의 삶에 있어서도, 이야기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어머니로부터 전해 내려 온 수동적인 여성의 삶의 종결과 동시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웠던 건, 1925년에 여성이 나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라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듯하다. 자신의 딸에겐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고, 거침없이 살아가게 할 거란 포부와는 달리, 혼자라는 것이 외로워 끝까지 아버지에게 삶을 의탁하는 키티의 모습은 '적극성'과는 거리가 멀다. 혼자 박차고 나와 잘 살아가려나 했지만, 아무래도 시대의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2019년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이었다면, 혼자 어떻게 해서든지 독립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1877년에 단행본이 나온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처럼 결혼이란 제도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진보했다고 봐야 할까.


디즈니 2013년 개봉작 <겨울왕국>의 엘사, 2019년 개봉작 <알라딘>의 자스민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디즈니의 행보가 마음에 든다. 수많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창조자급이었던 디즈니. 늘 왕자를 만나 행복해지는 공주의 모습은 전형적인 구시대의 소유물이다. 요즘의 여성들은 왕자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가 자기 세계의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그런 점에서 오랜만에 디즈니가 냈던 <겨울왕국>의 엘사가 좋았고, 이번에 실사화된 <알라딘> 영화 속의 자스민이 반가웠다. 스스로가 수동적인 공주로 자리하길 바라지 않고, 술탄이 된 자스민. 더 이상 숨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여왕이 된 엘사. 그런 그녀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알라딘과 크리스토퍼가 멋있다. 
마블 스튜디오도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 히어로나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캡틴 아메리카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있고, 난 이런 변화가 아주 반갑고 이에 대해 아주 찬성한다.


2019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써나가는 이야기 속에는 더 다양한 주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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