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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n 26. 2019

당신의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여행 사진에서 나는 늘 웃고 있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 오수진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 58p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분명 현실도피를 위한 수단이다. 일로부터의 도피, 때로는 감정으로부터의 도피. 그렇지만 여행을 십여 년간 다녀보며 느낀 건, 여행은 현실도피를 위해 더 현실을 가혹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해외는 여행이라도 가려면 안 그래도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준비라는 것을 해야 한다. 준비 없이 갈 수 있는 여행은 없다. 아무리 준비를 안 하는 사람도 비행기표는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다. 여행하는 당일만 생각하면 정말 그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솔직히 나에게 있어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귀찮은 게 크다. 나는 불안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남들보다 더 엄격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 과정이 재밌다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에겐 전혀 아니다. 내게 여행 준비는 귀찮고 번거롭고 피하고 싶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 정도쯤이다. 게다가 여행에 가서는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사람이 안 붐빌 때 박물관을 갈 수 있고, 타인과 여행할 땐 일찍 일어나야 먼저 느긋하게 씻을 수 있다. 


이 정도로 귀찮으면 차라리 여행을 안 가면 그만인데, 근데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있을까. 누군가 내게 여행을 좋아하냐 말하면, 좋아한다 말할 것이다. 곰곰이 몇 번을 생각하고 묻고 또 물어도 다른 대답을 생각할 순 없었다. 나는 '귀찮음을 이겨내고 하게 되는 것', 그 기저에 나의 '프로그램'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하는 '프로그램'이란, 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한다. 59p)
내겐 그 프로그램이 '내가 이제 이런 능력이 되는구나'의 안도감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정말 집이 잘 사는 친구들만이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녔다. 누구는 아빠의 출장에 따라가서 유럽을 다녀오기도 했고, 누군가는 기억도 잘 안나는 유년 시대에 온 가족이 미국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해외는커녕, 국내도 가본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여행은 무의식적으로 '부', '능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그런 내가 첫 해외여행을 간 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두부와 갔었던 2007년의 오사카였다. 준비할 것도 많고, 가서는 잠도 잘 안 오고, 어찌나 피곤하던지. 유람선에서 내내 잔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내가 느꼈던 뭔가의 '뿌듯함'. '나도 해외여행 다녀왔어!'의 느낌. 그게 지금까지 내가 해외여행을 다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준비의 귀찮음에도, 한국에서보다 더 힘든 일정에서 오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김영하는 본인의 삶이 여행자 같다고 썼다. 전학을 자주 다니던 유년시절에 영향을 받아, 늘 떠나야 할 것만 같고 여행을 떠날 때 기쁘다고 말이다. 나는 반대의 사람인 것 같다. 외향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나는 늘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만 하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덜 불안하려고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한다. 매우 귀찮지만,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되는 건, 이국적인 느낌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더 파고들어가면 결국 내가 속한 집단을 잠시 떠나지만, '여행 갈 능력이 되는 집단' 안에 속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 '해외여행 다녀와본 사람'에 손을 들 수 없었던 나에게,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프로그램이자 여행을 떠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아성찰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지, 아니면 나는 왜 여행을 싫어하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나 스스로의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막연하게 '나는 여행을 좋아해'가 아니라,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만나는 여행.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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