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 투어 둘째 날이 밝았다. 전날 저녁에도 와인을 과음하고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덕에 간 해독이 덜 되었는지 몹시 피곤했다. 그런데 하필 둘째 날 들리는 와이너리 두 곳은 모두 묵직한 스타일의 까베르네 쇼비뇽을 생산하는 스택스 립(Stag's leap)과 실버 오크(Silver Oak)였다. 두 곳 모두 나파 밸리의 유명한 대형 와이너리다. 첫째 날 들린 월터 헨젤(Walter Hansel)과 메리 에드워즈(Merry Edwards) 와이너리가 소규모의 가족적인 와이너리라면, 둘째 날 들린 두 곳은 대기업형 와이너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파리의 심판, 스택스 립
스택스 립(Stag's Leap)은 굉장히 유명한 일화 하나가 항상 붙어 다닌다. 1976년에 일어난 '파리의 심판'이 그것이다.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로 여겨졌던 시절,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까베르네 쇼비뇽 1위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이 스택스 립이다. (Stags' leap이라는 와이너리도 있는데, 명백히 다른 와이너리이니 혼돈하지 말자)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당시 화이트 와인 1위도 샤또 몬텔리나(Chateau Montelena)라는 미국 와이너리였으니, 그야말로 파리는 충격의 도가니였다. '파리의 심판'은 그야말로 미국 와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와인이 금메달만 40개를 땄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관광 필수 코스, 나파 밸리 와인 투어
나파 밸리는 소노마 카운티보다 더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짧게는 당일치기로도 나파 밸리로 와인 투어를 떠난다. 나파 밸리에는 약 300곳 이상의 대형 와이너리들이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생산지임에 틀림없다. 미국 와인의 아버지인 로버트 몬다비, 프랑스 LVMH 그룹이 세운 도멘 샹동 등도 모두 나파 밸리에 위치해 있다.
스택스 립의 빈야드: FAY, S.L.V
스택스 립 와인 셀라는 총 두 곳의 빈야드를 갖고 있다. FAY 빈야드와 S.L.V 빈야드인데, 두 빈야드가 인접해 있지만 특성이 달라 다른 풍미의 와인을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FAY 빈야드는 충적토로 조금도 워터리 하고 부드러운, 과실 풍미가 더 느껴지는 포도를 생산한다고 하며, S.L.V 빈야드는 화산토로 단단한 구조감과 스파이시한 풍미를 지닌 포도가 자란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빈야드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스택스 립 와이너리 테이스팅의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Estate collection tasting flight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가격은 45불에 총 5가지의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2016 Arcadia Vineyard Chardonnay와 2016 FAY Cabernet Sauvignon, 2016 S.L.V Cabernet Sauvignon, 2016 CASK 23 Cabernet Sauvignon, 2017 Artemis Cabernet Sauvignon이었다.
까베르네 쇼비뇽 95%, 메를로 4%, 말벡 1%로 블렌딩 된 아르테미스. 토양의 흙 맛에 블랙베리 같은 과일향이 조금 더 있다. CASK 23보다 조금 대중적일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와인은 전체적으로 '땅', '흙', '대지', '토양'의 느낌이 강했다. 못 견디겠는 철의 맛이 아니라, 굉장히 고급스럽고 묵직한 까베르네 쇼비뇽이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과연 프랑스 와인들과 상대한 와이너리 답다고 생각했다.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공간은 그들의 까베르네 쇼비뇽 풍미만큼 정말 멋졌다. 탁 트인 테이스팅 공간, 가까이에 보이는 빈야드. 모든 것이 멋졌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역시 그 '대기업'같음에 있었다. 불행히도 이날 우리를 서버 해 준 분은 우리가 영어를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다른 테이블 서버분들보다 많이 해주지 않으셨다. 질문을 해도 거의 단답형의 대답. 급기야는 <신의 물방울>의 갖고 오며 여기에 나온 와인이라고 설명을. 고급진 와인을 마셨으나 설명의 부족함에 뻑뻑한 까베르네 쇼비뇽을 마신 것처럼 갈증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감히 이 곳을 6곳의 와이너리 중 가장 별로라고 적어볼까 한다. 아무리 와인 맛이 맛있어도, 공간이 아름다워도 고객이 그 공간에서 한 경험이 부족했다면 그건 그냥 부족한 거다. 유쾌하게 질문과 답변이 오갔던 월터 헨젤과 메리 에드워즈가 생각나는 둘째 날 아침이었다.
<막간 추천> 나파 밸리 와인 투어 중 배가 고프다면, 타코 트럭은 어떨까요?
Tacos Garcia Taco Truck (2985 Jefferson st. NAPA CA. 94558)
두 번째 와이너리를 가기 전, 허기지고 쓰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맛집을 찾다가 인생 브리또를 만났다. 9달러짜리 브리또가 세상 튼실하고 또 뚠뚠. 대도시 관광지 푸드 트럭에서 파는 그저 그런 부리또가 아니고, 정말 멕시코에서 먹는 듯한 부리또다. 아저씨는 조금 무서워 보일 수 있지만,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내 물음에 묵묵히 카메라를 바라봐 주는 츤데레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