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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an 09. 2020

여유 넘치는 부잣집, 실버 오크(Silver Oak)

오스틴의 미국 와이너리 여행기 2탄: 나파 밸리 와이너리

#찐찐이 레드의 둘째 날

와이너리 투어 두 번째 날의 마지막 코스는 실버 오크(Silver Oak) 와이너리. 아침에 잠도 안 깬 상태로 스택스 립부터 찐득찐득한 레드 와인만 먹었더니 다소 피곤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작약하는 캘리포니아 햇빛 아래에서 술 마신 상태로 서있으니 노곤 노곤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피곤한 간 상태로 방문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와이너리인데, 3일 동안 강행군을 하려 하니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


구면이시네요. 실버 오크 레이블에서 보았던 실버 오크 건물.

짠! 와이너리 입구에서 걸어오다 보면, 실버 오크 와인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하다 싶은 하얀색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실버 오크 와인의 레이블에 그려져 있는 그 건물이다. 실버 오크의 시그니처!


#대기업의 좋은 예, 실버 오크

오늘 설명을 맡아주신 미스터 알렉스


우리는 The Silver Tour and Taste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인당 40불, 1시간 동안 운영되며 3가지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오전에 다녀왔던 스택스 립(Stag's leap wine cellar)이 프로그램이 부실한 듯한 느낌이었다면, 실버 오크는 훌륭한 대기업의 예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것이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진 느낌이랄까. 오크 숙성하는 곳, 스테인리스 스틸에 숙성하는 곳, 빈야드, 테이스팅 룸 등등 와이너리의 곳곳을 누비며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고, 질문 하나를 하면 정말 디테일하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투어가 끝난 뒤에도 넓디넓은 와이너리에서 자신의 잔을 갖고 거닐 수도 있었고, 또 잔을 하나씩 선물해 주는 센스까지. 대기업의 좋은 점이란 좋은 점은 모두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여유 있고 풍족한. 자본주의가 이런 얼굴이라면 기꺼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실버 오크의 강인한 까베르네 쇼비뇽, 알렉산더 밸리 vs. 나파 밸리


실버 오크의 대표적인 빈야드는 Napa Valley와 Alexander Valley 두 곳에 있다. Alexander Valley는 Napa Valley에 비해 조금 더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태평양과 더 가깝다 보니 해풍이 불어선지 개인적으로는 Napa Valley 와인보다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실버 오크의 대표 품종은 까베르네 쇼비뇽으로 아주 묵직하고 질감이 뛰어난, 파워풀한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을 자랑한다.


빨간 색으로 표시된 곳이 알렉산더 밸리. 나파 밸리를 찾아보세요!


이번 투어에는 나파 밸리 1병, 알렉산더 밸리 2병을 맛볼 수 있었다. 2014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2015 Alexander Valley Cabernet Sauvignon, 그리고 2012 Alexander Valley Cabernet Sauvignon이다.



Silver Oak Alexander Valley Cabernet Sauvignon 2015

실버 오크 알렉산더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2015

확실히 알렉산더 밸리는 나파 밸리에 비해 북서쪽에 위치해 있어 해풍 때문에 조금 더 부드러운 까베르네 쇼비뇽이 재배되는 것 같다. 실버 오크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에 비해서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 2015 빈티지는 피니쉬에 치즈향이 느껴졌다. 고급스러운 오크향.


Silver Oak 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2014

실버 오크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2014

나에게 있어 투머치 드라이했던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마치 사하라 사막에 서서 모래를 엄청나게 먹은 느낌이었다. 목 끝까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 서걱서걱, 바짝바짝이 이 와인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표현했더니 설명해 주던 알렉스가 폭풍 공감을 표했다. 초보자가 먹기엔 다소 난이도가 높은 까베르네 쇼비뇽.


Silver Oak Alexander Valley Cabernet Sauvignon 2012

실버 오크 알렉산더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2012

역시나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보다 부드러운 느낌. 2012 빈티지는 2015 빈티지 보다 프루티 한 과실 향이 더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목 넘김이 좋다고 할까? 세 가지 중에서는 단연 2012 빈티지의 알렉산더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이 내 취향이었다. 조금 더 대중적이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



#여유 있는 부잣집, 실버 오크

까무러친 거 아닙니다. 잠시 쉴 뿐...

투어가 끝난 뒤, 잔을 들고 와이너리에 조성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빈야드를 바라보았다.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햇볕, 그리고 정말 묵직한 질감을 자랑하는 실버 오크의 까베르네 쇼비뇽을 마시고 나니 머리는 핑글핑글 돌고, 두 눈은 풀려있고, 이는 보라색이 되었으며 혀까지 꺼끌꺼끌해진 느낌이었다. 저절로 잠이 쏟아졌다.


실버 오크는 정말 월터 헨젤 와이너리와 다른 의미로 좋은 기억이 남는 곳이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대형 와이너리. 마음도 여유롭고 풍족하여 눈치 보이지 않고 이 순간만큼은 나의 와이너리인 것처럼 내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모든 것이 시스템적으로 갖추어진 대규모 와이너리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실버 오크를 추천한다. 하지만 너무 묵직한 까베르네 쇼비뇽이 부담스럽다면, 실버 오크 보다는 로버트 몬다비와 같은 조금 더 대중적인 와이너리를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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