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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13. 2020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s Pick 와인 시음기

<그레이트 와인스 오브 더 월드 2019> 서울 그랜드 시음 행사 회상기


입장권은 팔찌로 변경해야 해요!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구 마시기 시작한 지 2~3년, 그 사이에 와인 쪽으로 아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났고 그분들 덕분에 고맙게도 작년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진행된 <그레이트 와인스 오브 더 월드>에 초대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와인스 오브 더 월드>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 Suckling) 사단이 주최하는 이벤트로, 일 년 내내 시음한 21,000개의 와인 중 제임스 서클링이 엄선한 와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동안 홍콩이나 중국에서는 진행이 되었지만, 서울에서는 처음 개최가 되었다고 한다. 시작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했는데 이미 건물 바깥으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나만 기대되고 설렌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긴 줄을 기다려 입장한 행사장. 80여 개의 와인 중 뭘 마셔야 하나 미리 생각해 가긴 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사람도 많고(1300명 신청), 브로셔랑 각 와이너리의 숫자가 달라져 어안이 벙벙했다. 정신 못 차리면 제대로 즐기고 가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제일 긴 줄이 샤또 무똥 로칠드겠거니, 하고 줄을 섰다.





내 인생 첫 번째 샤또 무똥 로칠드

My Very First Chateau Mouton Rothschild

샤또 무똥 로칠드의 마르크 샤갈, 데이비드 호크니, 이우환 작가의 레이블



'5대 샤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르도 특 1등급의 와인들로서,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마고, 샤또 라투르, 그리고 샤토 오 브리옹이 그에 해당된다. 가격도 굉장한 만큼 솔직히 언제 마셔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제임스 서클링 내한 와인 시음 행사 덕분에 나의 첫 인생 5대 샤또의 시작을 끊을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샤또 무똥 로칠드! 5대 샤또 중 샤똥 무똥 로칠드를 기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예술적인 레이블에 있다. 샤똥 무똥 로칠드는 매년 어마어마한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레이블을 작업하는데, 샤갈, 달리, 피카소, 미로 등 저명한 작가들이 이미 작업한 바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샤갈은 1970 빈티지에, 작년에 핫했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2014 빈티지에, 그리고 2013 빈티지에는 한국인 작가 처음으로 이우환 님이 작업을 해서 기사도 났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마셔본 것은 2009년 빈티지. 아나쉬 카푸어라는 인도 출신 조각가가 레이블을 작업했다.



Chateau Mouton Rothchild Pauillac (Premier Grand Cru Classe) 2009

샤또 무똥 로칠드 2009

Red Wine from Pauillac, France

나의 첫 5대 샤또, 샤또 무똥 로칠드 2009 빈티지


로버트 파커와 제임스 서클링이 100점 중 98점을 준 2009 빈티지 (2010 빈티지는 로버트 파커와 제임스 서클링 모두 100점을 준 바 있다). 운이 좋게도 이 날 행사에서 첫 잔과 마지막 잔을 모두 샤또 무똥 로칠드로 했다. 첫 잔으로 마셨을 때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느꼈었다. 삼나무로 만든 장롱 속에 보관한 새로 산 갈색 가죽 재킷 같은 조금 강건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픈한 지 시간이 좀 지나고 마지막 잔으로 다시 한번 마셔보니 더 열렸는지 텍스처도 부들부들해지고,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향들이 뿜어져 나왔다. 무화과 조금, 장미 조금, 그리고 소똥 냄새의 피니쉬까지. 이렇게 복합적인 와인이라니! 다음 날 아침까지도 그 삼나무 향이 몸에서 나는 듯했다. 마치 삼나무로 짠 관에서 일어난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여운이 길었던 샤또 무똥 로칠드 2009 빈티지였다.






같은 와인을, 두 가지의 빈티지로!

The Same Wine in Two Different Vintages!

두 가지 빈티지로 맛볼 수 있었던 샤또 퐁테 카네


Chateau Pontet-Canet Pauillac (Grand Gru Classe) 2011, 2014

샤또 퐁테 카네 2011, 2014

Red Wine from Pauillac, France


샤또 퐁테 카네는 <신의 물방울>에서 시즈쿠가 24권 메독 마라톤을 하던 중 마셔본 와인으로 나온다. 2000년 빈티지를 마시고, '진짜 남자 이상으로 남자답고, 그러면서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화려한 여성만의 다카라즈카 무대'라고 표현한다. (다카라즈카는 남성의 역할도 여성이 연기하는 일본의 극이다)

이번에 운이 좋게 같은 와인을 2011, 2014라는 다른 빈티지로 마셔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같은 와인인데도 빈티지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참 신기하다.


2011년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이 95점을 준 빈티지다. 기본적으로 보르도의 삼나무 느낌과 함께 약간 두부 같은 향, 발효된 콩 향 같은 향이 났다. 8년을 묵혀서 그런지, 부들부들하게 넘어가는 것이 목 넘김이 좋았다. 2014년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이 98점을 주었다. 확실히 2011년 빈티지보다 어린 느낌. 2011 빈티지처럼 오크향에 살짝 두부콩 향이 나면서, 맛은 체리 같은 작은 열매의 산미가 느껴져서 더 좋았다. 종종 이마트에서 보이던데, 가격 좋으면 꼭 다시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샤또 퐁테 카네.






내 인생 첫 번째 마고 와인

My Very First Margaux Wine

이 날 무똥 로칠드를 제외하고 제일 제일 좋았던 샤또 지스꾸르


Chateau Giscours Margaux Grand Cru Classe 2010

샤또 지스꾸르 마고 2010

Red Wine from Margaux, France


이 행사에서 샤또 무똥 로칠드를 제외하고 가장 좋았던 와인을 꼽으라면, 나는 이 샤또 지스꾸르 마고 2010 빈티지를 꼽을 것이다. 제임스 서클링에게 95점을 받은 이 와인은, 수많은 강건한 보르도 와인들 중에서 혼자 꽃을 핀 느낌이었다. 마고 지역은 보르도 중에서도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로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다른 보르도 와인들에서 삼나무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면, 지스꾸르 마고 2010 빈티지에서는 꽃 향기와 함께 삼나무보다 조금 더 여리여리한 꽃줄기 같은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던 와인. 포도 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 60%, 메를로 32%, 카베르네 프랑 5%, 쁘띠 베르도 3%의 비율로 블렌딩 되었다.

샤또 지스꾸르는 메독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와이너리로 손꼽힌다고 한다. 어서 코로나 사태가 끝나서 방문해 볼 수 있었으면!






꿀맛 허니 맛의 올드 빈티지 샴페인

Honey-flavored Old Vintage Champagne

병부터 약간 보석 호박 느낌 나는 샴페인 드 브노쥬 루이 15세 브뤼


De Venoge Louis XV Brut Champagne 1995, 1996

샴페인 드 브노쥬 루이 15세 브뤼 1995, 1996

Sparkling Wine from Champagne, France


이번 행사에는 샴페인을 많이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가뭄의 단비처럼 드 브노쥬를 맛볼 수 있었다. 드 브노쥬는 1837년 스위스 귀족 앙리 마르크 드 브노주가 프랑스 에페르네에 설립했다고 한다. 연간 170만 병을 생산하는데, 와인샵, 호텔, 레스토랑에만 제한적으로 유통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트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었던 와인이다. 일단 바틀 디자인부터 눈에 띄었다. 일반 샴페인 병과는 다르게, 마치 보석 호박 펜던트 같이 생겼다. 물방울 모양 같다고나 할까. 그 병에 담긴 샴페인이 몹시 영롱해 보인다.


드 브노쥬 샴페인 중에서 최고급 샴페인이 바로 이 루이 15세의 이름이 붙은 루이 15세 브뤼라고 한다. 피노 누아 50%, 샤도네이 50%으로 만든다. 1995년, 1996년 빈티지라 하면 벌써 25년 정도 묵혀진 셈인데 이 정도로 올드 빈티지의 샴페인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기대가 되었다. 1995 빈티지는 마치 꿀에 아몬드 한 줌 뿌린 듯한 허니와 너티가 고루 섞인 느낌이라면, 1996 빈티지는 호박엿 같이 제대로 허니의 느낌이었다. 오래된 세월을 반영하듯 둘 다 꿀의 뉘앙스가 많이 났고, 기포는 매우 미미하고 또 부드러웠다. 이때 깊숙이 각인되었다. 올드 빈티지의 샴페인에는 이런 엿과 꿀의 느낌이 많이 난다는 것을. 제임스 서클링은 1995 빈티지는 98점을, 1996 빈티지는 96점을 주었다. 나 역시 아몬드 한 줌 집어넣은 듯한 1995 빈티지가 더 좋았다.







스페인 와인계의 천재 생산자 피터 시섹의 걸작, 핑구스

The Masterpiece of Peter Sisseck

스페인 컬트와인의 선봉, 핑구스


Dominio de Pingus Pingus 2016 / Dominio de Pingus Flor de Pingus 2016

도미니오 드 핑구스 핑구스 2016 / 도미니오 드 핑구스 플로 드 핑구스 2016

Red Wine from Ribera del Duero, Spain


스페인 와인은 핑구스 전후로 나뉠 만큼, 피터 시섹이 만든 핑구스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 피터 시섹은 덴마크 사람으로 스페인의 떼루아에 감명을 받아 와이너리를 설립한 천재 와인 메이커다. 로버트 파커에게 셀러를 단 하나의 와인으로 채워야 하면 어떤 것으로 채울 거냐고 묻자, 플로르 드 핑구스로 채울 것이라 대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핑구스 2016과 플로 드 핑구스 2016 모두 템프라니요 100%로 만들어졌다. 핑구스 2016 빈티지는 다크 초콜릿과 블랙베리향이 정말 좋았고, 플로 드 핑구스 2016 빈티지는 산도 있는 작은 체리 같이 맑고 깐깐한 느낌이었다.






나의 첫 우루과이 와인

My Very First Uruguay Wine

우루과이 와인 마셔본 사람?


Bodega Garzon Single Vinyard Tannat 2017

보데가 가르손 싱글 빈야드 따나 2017

Red Wine from Maldonade, Uruguay


생전 우루과이에서 와인을 만들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가르손 와이너리는 우루과이의 토스카나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알레한드로 불게로니가 부인 베티나가 2008년에 설립한 신생 와이너리라고 한다.

보데가 가르손 싱글 빈야드 따나는 100% 따나 품종으로 만든 와인. 따나는 굉장히 거칠고, 탄닌감이 강한 남성적인 포도 품종이라고 하는데, 애초에 탄닌(Tannin)이라는 것도 따나(Tannat)에서 왔다고 한다.


향은 캐러멜 같이 살짝 스위트 한데, 피니쉬는 탄닌으로 인해 엄청나게 묵직했다. 달콤하다가 급 사포로 혀를 긁는 느낌. 달콤한 꿈을 꾸다가 회사에 나온 느낌이랄까. 제임스 서클링은 2017 빈티지에 93점을 주었다.






나의 첫 BDM!

My First BDM Ever!

찐찐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Siro Pacenti Brunello di Montalcino 2013

시로 파첸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3

Red Wine from Montalcino, Italy


<신의 물방울>에서 쵸스케 때문에 자주 등장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aka BDM. 시로 파첸티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수장이라고 한다. 이 와인은 토스카나의 주요 품종인 산지오베제 100%로 이루어져 있다.

굉장히 묵직했고, 특히 불에 그을린 듯한 스모키한 향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제임스 서클링은 2013 빈티지에 95점을 주었다.






이런 칠레 와인이 있다니!

I've never had this kind of Chile wine ever!


Albaviva 2017

알마비바 2017

Red Wine from Maipo Valley, Chile


알마비바는 '넘치는 영혼'이라는 의미로, 1997년 칠레 와인 최고 와이너리 콘차 이 토로와 보르도 최고의 와이너리 샤또 무똥 로칠드가 50:50으로 합작하여 설립한 와이너리다. 칠레의 그랑 크뤼 와인으로, 칠레의 최고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임스 서클링은 알마비바 2015년, 2017년 빈티지에 모두 100점을 준 바 있다.


이 와인은 <신의 물방울> 12권에도 소개되었는데, '진하고 불꽃처럼 격렬하고, 피처럼 싱싱한 고기 맛이 난다'라고 표현했다. 과연 피 같은 와인이었다. 피의 철분 맛과 대지의 묵직한 흙 맛이 예술이었던 알마비바였다.






제임스 서클링과 한 장 :)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엄청난 와인들은 한 공간에서 시음할 수 있어 좋았던 행사였다. 원래 올해도 진행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불투명해졌다는 슬픈 소식이 들렸다 :'(

아마 올해 가게 된다면, 그 사이에 공부도 했고 많이 마시기도 했으니 느끼는 게 더 달라졌을 텐데, 개최가 안될 수 있다는 건 너무 슬픈 것 같다.

그래도 이런 행사가 우리나라에 이제 개최가 되는 것을 보니, 와인이란 것이 일부 계층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문화가 된 것 같아서 몹시 기뻤다. 부디 코로나가 어서 잠재워져서, 이런 기회를 속히 만나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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