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으로 인해 돼지고기 값이 폭락했던 어느 날, 어떻게 하면 돼지고기를 양껏 사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돼지고기 값이 떨어져도 식당에서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으니 식당에 가고 싶진 않았다. 우리가 결혼한 커플이었다면 집에서 구워 먹으면 되니 문제는 간단했겠지만, 우리는 결혼하지 않은 풋풋한 커플이었으므로 문제가 복잡했다. 고민을 하던 중 남자 친구는 텐트를 주문했고, 작년 가을! 그렇게 우리의 식도락 캠핑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캠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고기와 와인. 고기도 와인도 최대한 맛있는 조합으로 먹고 싶어 많은 시도를 해 보았고, 그중 '이만하면 괜찮은 조합이다' 할만한 조합들로 추려보았다.
1. 가성비 조합의 삼겹살과 브로켈 말벡
Trapiche Broquel Malbec 2017
트라피체 브로켈 말벡 2017
가성비 굉장히 훌륭한 와인으로 이마트에서 2만 원 미만으로 구입 가능하다. 말벡은 아르헨티나 대표 품종으로 파워풀하고 묵직한 매력을 뽐낸다. 플럼 등의 덩치가 큰 검푸른 과실 향과 오크 터치에서 묻어 나오는 바닐라향, 그리고 피망이나 고추류의 스파이시함이 매력적이다. 삼겹살이 워낙 기름지다 보니, 그 기름을 씻어낼 수 있는 와인이 필요했다. 보통 오크향이 강한 화이트 와인과 많이 매칭 하지만, 바닐라향과 달큼한 과일향이 느껴지는 브로켈 말벡도 삼겹살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끝 부분에 느껴지는 초록색 피망의 스파이시함과 부담스럽지 않은 중간 정도의 탄닌이 삼겹살의 기름짐을 잡아준다. 1만 원 대의 말벡과 값이 착한 삼겹살, 이 정도면 훌륭한 가성비 조합이 아닐까?
2. 이름 따라 맛 따라, 빌까르 살몽 브뤼 샴페인과 연어 스테이크
Billecart-Salmon Extra Brut Champagne N.V
빌까르 살몽 엑스트라 브뤼 샴페인 논 빈티지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싶은 빌까르 살몽. 이름에 Salmon이 있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연어 스테이크와 기가 막힌 마리아주를 보인다. 레몬의 청량함과 산미, 버터에서 오는 듯한 이스트 향은 그 자체로 연어 스테이크의 맛이었다. 안 어울릴 수 없는 조합!
3. 강한 고기에는 강한 와인으로, 알베 바롤로와 양갈비
G.D. Vajra Albe Barolo 2014
지디 바이라 알베 바롤로 2014
바롤로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대표 품종인 네비올로 100%로 만든, 왕 중의 왕으로 대우받는 레드 와인이다. '탄닌 회초리'라고 불릴 정도로 탄닌이 강하고, 산미도 높은 것이 특징이다. 고급 와인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에 이탈리아 레드 와인 중 비싼 축에 속한다. 지디 바이라 알베 바롤로는 5만 원대로 살 수 있는, 비교적 살만한 가격의 바롤로이다. 허브의 스파이시함, 체리 같이 알맹이가 작은 딴딴한 과실에서 오는 산미, 힘 있는 탄닌감 등 강한 캐릭터를 자랑하는 바롤로는 특유의 향기가 강한 양고기와 찰떡이다.
4. 해산물엔 샴페인, 대방어회와 새우 소금구이엔 앙드레 끌루에 드림 빈티지 2006
Andre-Clouet Dream Vintage Brut Champagne Grand Cru Bouzy 2006
앙드레 끌루에 드림 빈티지 브뤼 샴페인 그랑 크뤼 부지 2006
지난 와인 장터 때 앙드레 끌루에가 5만 원에 내놓은 드림 빈티지 샴페인 시리즈. 웬만한 샴페인은 최소 6만 원 이상으로 가격대가 포진되어 있는데, 5만 원에 괜찮은 샴페인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기회였다. 병마다 컨디션이 다르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다행히 뽑기 성공! 2006년 빈티지로 13년이나 되었다고 처음에는 향과 맛에서 모두 단호박이 느껴졌다. 찐 단호박, 혹은 단호박 케이크 같이 부드러운 단호박의 느낌. 그러다가 1시간 정도 지나 절반쯤 먹었을 때에는 우리가 아는 샴페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짝 건조된 듯한 사과향과 이스트 향으로. 방어는 피노누아와도 많이 먹지만, 해산물에는 어떤 샴페인을 매칭해도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참치과의 기름진 방어와 샴페인, 향이 강한 새우구이와 샴페인으로 실패 없는 페어링 강력 추천.
5. 설날을 맞이하는 자세, 떡국과 보쌈엔 월터 헨젤 샤도네이
Walter Hansel The North Slope Vineyard Chardonnay 2016
월터 헨젤 더 노스 슬로프 빈야드 샤도네이 2016
올해 1월 1일이 되는 날, 하늘공원에서 해를 맞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한강 난지공원에서 캠핑 결심! 설날이니만큼 떡국으로 한 살을 먹고 싶었고, 또 명절이니 한국 음식인 보쌈을 와인과 페어링 하고 싶었다. 떡국과 보쌈과 페어링 한 와인은 바로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월터 헨젤 샤도네이. 고급지게 우러나오는 깨 향과 오크향이 은은한 맛을 자랑하는 떡국 및 보쌈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크향뿐만 아니라 은은한 살구향과 여운이 긴 짭조름한 미네랄리티, 혀를 흔들어 깨우는 산미까지, 삼삼한 우리 음식들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굳이 월터 헨젤이 아니어도 좋으니, 미국 샤도네이와 설날 음식들을 매칭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류와도 잘 어울릴 느낌이니, 이번 구정 때 한번 매칭해 보자!
6. 족발과 함께 슬픔이여 안녕, 샤스 스플린
Chateau Chasse-Spleen Moulis-en-Medoc 2013
샤또 샤스 스플린 2013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 말과 딱 어울리는 와인이 있으니,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의미를 가진 샤스 스플린이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족발과 함께 샤스 스플린!
떡갈나무 숲 사이사이에 굳건히 자라고 있는 체리나무, 낙엽이 떨어진 땅에 가만히 고개를 내민 허브들, 떡갈나무의 낙엽들이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숲을 걷다가 신기루 같이 마구간 하나를 발견한 느낌. 체리나무의 산미, 낙엽이 잔뜩 쌓인 흙냄새, 떡갈나무 같이 껍질이 두꺼운 나무 오크향. 그리고 첫 잔에만 느껴진 소똥 냄새. 시간이 꽤 지난 다음에는 치즈향까지 올라온다.
족발 자체가 돼지 특유의 Cheesy 한 노린내가 나면서도, 한약재 같은 향이 함께 올라오는데, 이것이 샤스 스플린의 오크향 및 허브향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게다가 체리의 산미가 족발로 기름진 입 안을 깔끔하게 닦아주니 더없이 좋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6만 원이 넘는데, 2013년 빈티지가 썩 좋은 해는 아니라 이마트에서 5만 원에 구입했으니 가성비까지 챙긴 셈.
캠핑 요리에 매번 같은 와인을 매칭 하지 말고, 음식마다 각각 특색 있는 와인을 함께 페어링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간단한 캠핑 요리도 와인과 만나 미슐랭 뺨 칠 정도로 별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