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 샴페인을 좋아하는 여자와 피노 누아를 좋아하는 남자는 집안을 망하게 한다ㄱ....
다른 와인들도 좋은 건 비싸기 마련이지만, 샴페인과 피노누아는 한번 맛 들이고 나면 대충 그저 그런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와인임엔 틀림이 없다. 절대 돈 쓰는 것에 후진은 없다는...
피노 누아는 포도 중 제일 키우기가 까다롭고 어려운 포도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수확량도 적을뿐더러, 기후 영향도 몹시 많이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피노 누아는 값이 많이 나가고, 최소 10만 원은 넘어가야 피노 누아 다운 피노 누아를 먹을 수 있다.
이런 피노 누아는 어느 나라가 명성이 좋은가 하면,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를 1순위로 꼽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마네 꽁띠 도멘이 있는 본 로마네뿐만 아니라 샹볼 뮈지니, 제브리 샹베르텡, 뉘생 조르주 등 내로라하는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밭에서 나온다. 2순위는 미국의 오레건 주, 그리고 3순위는 뉴질랜드 센트럴 오타고로 그 뒤를 잇는다. 세 곳은 위도가 같아 기후가 비슷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세계 3대 피노 누아 중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인 도멘 마샹 프레르 샹볼 뮈지니 비에이 비유 2017 빈티지와 미국 오레건주의 도멘 서린 피노 누아 2015 빈티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Red Wine from Chambolle Musigny, Bourgogne, France
여리여리 아름다운 투명한 레드빛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나와 남편이 다짐한 게 있다면, 이번만큼은 저렴한 와인에 눈길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일생일대의 신혼여행을 코로나로 인해 제주도로 온 것도 서러운데, 와인만큼은 평소 못 먹는 비싸고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제주 와인샵에서 고른 와인은 바로 이 도멘 마샹 프레르 샹볼 뮈지니 비에이 비뉴 2017 빈티지. 한국에 소량 할당이 되는 와인으로 많이 접해보지 못한 와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와인은 지금 열기에는 너무 덜 숙성이 되었을 거라 좀 더 묵혔다가 마시는 게 좋았을 뻔했지만, 이런 때 아니면 또 언제 화끈하게 마셔보았겠다 싶다. (실제로 빈티지 대비 10년 뒤 음용이 권장되고 있다)
샹볼 뮈지니는 부르고뉴 밭 중 제일 부드럽고 여성스럽고 우아한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첫 샹볼 뮈지니 피노 누아는 어떤 맛일지 굉장히 기대됐다.
붉은 베리류, 젖은 낙엽, 자그마한 허브류의 스파이시한 향, 우아한 꽃향(마치 로즈향을 넣은 립스틱 향 같은!)에 가죽 향이 한 0.5스푼 정도 들어간 향이었다.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이 와인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한고은 같다.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이 와인. 우아한 꽃향과 혀에 남는 허브의 스파이시함이 매력적인 첫 샹볼 뮈지니 피노 누아였다.
가금류나 치즈와 먹는 것이 좋다고 하여, 룸 서비스로 시킨 치킨과 함께 먹어보았다. 삼삼하고 담백한 후라이드 치킨에 스파이시함과 산미를 불어넣어주는 피노 누아는 괜찮은 페어링이었다.
제주 와인샵에서 14~15만 원대에 구매했다.
Domaine Serene Evenstad Reserve Pinot Noir 2015
도멘 서린 이븐스테드 리저브 피노 누아 2015
Red Wine from Willamette Valley, Oregon, United States
내가 지금까지 마셔본 미국 피노 누아 중 최고였던 도멘 서린 피노 누아. 다른 와인들과 비교해도 끄떡없다.
도멘 서린의 피노 누아 역시 앞의 도멘 마샹 프레르 피노 누아와 마찬가지로 많이 못 접해봤던 와인이었다. 커플 모임이 있어 가격이 심각하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훌륭한(...) 피노 누아를 찾던 중 추천을 받아 구매해 보았다. 평소 미국의 피노 누아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맛과 향을 기대하고 미국의 피노 누아를 산다면 아마 실망이 클 것이다. (미국의 피노 누아는 대개 바닐라 향이 강하고, 조금 더 파워풀하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미국 피노 누아를 사는 게 조금 주저스러웠는데, 추천해 주신 분께서 도멘 서린은 부르고뉴 스타일의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하여 믿고 구매해 보았다. 마침 비비노의 평점도 4.5점이라 눈 감고 사보았다.
결론은 별 10개도 더 주고 싶은 와인이었다. 첫 잔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온도가 덜 맞춰져서 그런지 향은 부르고뉴인데 맛은 여전히 미국의 바닐라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첫 잔을 마시고, 또 속은 건가 싶었는데 진정한 승부는 두 번째 잔부터였다. 가랑비에 잔잔히 젖은 듯한 낙엽, 우아하고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붉은 과실, 최고급의 떡갈나무향, 부드러운 목 넘김.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 2015년 빈티지인 것도 바로 마시기에 좋은 이유에 한몫을 했다. 5년 동안 병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숙성이 된 것에 이어, 잔 스월링을 통해 잠들어 있던 와인이 깨어난 듯했다. 첫 잔을 마셔본 몽로의 소믈리에님도 극찬에 극찬을 하셨던 도멘 서린 피노 누아.
페어링은 등심 스테이크와 구운 감자, 콜리플라워와 함께 했는데 피노 누아에 스테이크는 실패할 수가 없는 조합이다(비싸서 그렇지).
와인은 이마트에서 13만 원에 구매했다. 국내에 잘 안 들어오는 와인이라고 하여 보이면 또 살 예정.
이번 와인 비교를 통해 느낀 것은, 와인 산지나 품종 등에 따라 선입견을 갖지 말자는 것이었다. "미국 피노 누아는 이러이러해"라는 나의 선입견으로 인해, 이런 좋은 와인을 만나지 못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아쉽다.
와인을 이제 찬찬히 알아가는 분들이라면, 같은 품종이라도 산지에 따라 비교해서 마셔보는 것도 추천한다. 처음엔 국가 간 비교, 그 뒤에는 같은 나라 내 마을 간 비교, 그 뒤에는 같은 마을 내 생산자 간 비교, 이런 식으로 좁혀 나간다면 자신의 취향의 와인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여름철, 무거운 레드 와인을 마시고 싶지 않다면 가벼운 바디감의 피노 누아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 참치회나 스테이크와 먹는다면 황홀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