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는 모름지기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요즘 계속 스파클링 와인만 마셨더니 배가 부르면서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탄산수를 많이 먹을 느낌이랄까.
그래서 화이트 와인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요즘. 화이트 와인이라 하면 샤도네이나 쇼비뇽 블랑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왠지 크게 끌리지가 않는다. 캐러멜 향이 나는 바디감이 있는 미국 샤도네이는 날도 무더운데 더 무거운 느낌이고,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은 풀 내음이 괜히 부담스럽다.
샤도네이나 쇼비뇽 블랑 대신 뭔가 풍미 있고! 깔끔하고! 미네랄리티도 있는!! 화이트 와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선선한 알자스 지방의 화이트 와인이 떠올랐다!
그래서 준비한 알자스 화이트 와인 특집!!! 그중에서도 알자스의 유명한 생산자인 트림바크(Trimbach) 와인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독일과 접경지대인 프랑스 알자스 지방. 빨갛게 표시한 곳이 트림바크 도멘.
트림바크는 프랑스 알자스 지방 중 리보빌레 마을에 위치한 도멘이다. 1626년에 설립되어 벌써 395년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가문으로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와 현재는 12대손이 와인을 만들고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그뿐만이 아니라, 51개의 알자스 그랑크뤼 AOC 포도밭 중 30%를 차지하고 있으니, 과연 알자스의 대표 도멘답다. 주요 품종은 리슬링, 피노 그리,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블랑 등 화이트 품종이며, 그중에서도 리슬링이 메인이다. 트림바크 리슬링은 프랑스 파리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 모두 입점되어 있다고 하니, 그 자부심이 엄청날 것 같다.
피노 그리 품종은 피노 누아에서 유전적으로 변형되어 파생된 품종으로, 회색 빛깔을 지녔다. 주로 선선한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알자스 그랑크뤼 AOC에서도 많이 재배를 하고 있다. 이 트림바크 피노 그리 2010년 빈지티는 이마트 직원이 엄청나게 추천을 해주셔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하게 됐다. 알자스 지방의 2010년 해는 정말 좋은 빈티지기 때문에 무조건 경험해 보라는 것. 그렇게 해서 첫 인연을 맺게 된 트림바크 피노 그리였다.
컬러는 굉장한 황금빛 컬러. 노오랗게 물든 밀밭 같은 느낌이다. 고흐가 그린 밀밭이 잔에 담긴 듯하다. 향을 맡아보았다. 고급스럽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향에 감동의 도가니. 리슬링 같은 호롱불 등유 향, 대충 오크향을 내려고 넣은 오크칩이 아닌 정말 고급진 오크향에 맛은 대반전으로 꿀맛 허니 맛. 10살 된 와인이라 그런지 오래 묵힌 꿀단지 맛이 났다. 그런데 그 단맛이 스위트 와인 같은 인위적인 단 느낌이 아니라 정말 자연에서 금방 채취한 꿀에서 나는 듯 자연스럽고 고급진 단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향이 강해 와인을 매칭 하기 조금 부담스러운 고등어회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잘 어울린다고 표현하기엔 표현이 아쉬운 느낌으로, 마리아주 같은 느낌이 물씬!
트림바크 피노 그리 2010년 빈티지는 이마트에서 장터 시 79천 원에 구매했다(다른 빈티지는 조금 더 저렴했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게뷔르츠트라미너. 스펠링은 더 쓰기 어렵다. Gewurztraminer라니.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름에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Gewurz(게뷔르츠)는 Spicy를 뜻하는 독일어로 향긋한 풍미를 가진 이 품종의 특징을 담고 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피노 그리와 마찬가지로 선선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데, 그래서 프랑스 알자스 지방,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많이 재배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최고로 쳐준다고 한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이런 Spicy 한 성격 때문에, 동남아나 인도 음식 같은 향신료를 많이 쓰는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의 매콤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하여, 이번에 비빔면이랑 먹고 싶어서 데려와 보았다.
일단, 이 가격에 이 맛이라니! 3만 원 대의 화이트 와인에서 이런 풍부한 향을 만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사루비아나 아카시아 같이 꿀이 든 꽃향, 리치나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향이 처음에 흐드러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밀향이나 치즈향 같은 고소한 향이 올라온다. 산미는 중간 정도. 달지 않고, 약간 드라이하다. 이전에 다른 도멘의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마셔보았는데 조금 달아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는데, 다행히 달지 않아 좋았다. 게다가 비타민C 같은 산뜻한 노란색 컬러도 여름이랑 정말 잘 어울리고 아름다웠다.
와인에 숙성한 돼지고기와 매콤한 비빔면과 페어링을 해 보았다. 특히 비빔면 위에 깻잎을 올려보았는데, 향이 풍부한 게뷔르츠트라미너와 정말 잘 어울렸다. 돼지고기도 그냥 생으로 구운 것이 아니라, 레드 와인에 20분 정도 숙성하여 와인의 향을 머금은 채로 구운 것이라 향기로운 이 와인과 더없이 잘 어우러졌다.
트림바크 게뷔르츠트라미너 2016 빈티지는 이마트에서 38~39천 원 대에 구입했다. 이 가격에 이 퍼포먼스면 가심비가 대단하다.
무더운 여름이다. 시원하게 칠링한 화이트 와인이 마시고 싶다면, 오늘은 샤도네이나 쇼비뇽 블랑 같이 자주 볼 수 있는 품종 말고 피노 그리나 게뷔르츠트라미너 같이 조금은 낯선 품종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