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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04. 2020

3만 원대로 코스트코에서 엔트리 급 보르도 와인 맛보기

샤또 테이시에 2016,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


이곳은 마치 알프스 같은 지리산 자락


얼마 전, 운 좋게 날씨 요정을 만나 장마를 피해 남도 쪽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얼핏 봐도 주변에 와인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여서 미리 코스트코 일산점에서 와인을 구입했다.

어떤 와인으로 구성을 할까 하다가, 요즘 남편이 <신의 물방울>에 빠져있는데 한창 보르도 파트가 나오는 때라 보르도 비중을 높여보았다.


코스트코에서 휴가 준비


와인을 좋아하는 나 때문에, 남편은 지난 1년 동안 와인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게 아주 간략한 설명만 들었을 뿐, 이건 어느 지방의 어떤 품종으로 만들어졌다는 등 체계적으로 마신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르도 좌안과 우안을 비교해보기로 하고, 3만 원대의 보르도 와인으로 구성봤다.

보르도 와인 자체가 비싸려면 끝도 없이 비쌀뿐더러(5대 샤또의 고향), 최근 빈티지를 마시는 순간 엄청나게 세고 떫고 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몇 시간 전에 열어두거나 디캔팅을 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혹은 마실 적기까지 셀러에 묵혀두는 것도 방법.


그러나 시간을 두고 묵혀두기엔 지금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없고, 디캔팅은 잘못하면 오히려 와인이 잘못된다 하여 고수가 아닌 우리에겐 부담스러운 게 사실!


그래서 이번에는 와인 초보가 30분 전에 오픈해두고 마셔도 거부감 없이 보르도의 느낌을 알 수 있을 법한 엔트리급 와인들로 선정해 보았다.




와인 리스트에 앞서, 보르도 좌안과 우안의 특징을 간략히 짚고 넘어가 볼까. 보르도의 좌안과 우안은 지롱드강을 중심으로 나뉘는데, 왼쪽은 좌안, 오른쪽은 우안이다. 좌안은 자갈 등 배수가 잘 되는 토양으로 되어 있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카베르네 쇼비뇽을 중심으로 와인이 블렌딩 된다. 요 산지로는 생떼스테프, 뽀이약, 생줄리앙, 마고 등이 있다.

반면에 우안은 진흙, 점판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을 좋아하는 품종인 메를로를 주로 재배한다. 주요 산지로는 생떼밀리옹과 포므롤이 있다.



이번 와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좌안에서 2병, 우안에서 1병으로 구성해 보았다.


1. 샤또 테이시에 2016 (Chateau Teyssier 2016)

보르도 우안 생떼밀리옹 지역. 생떼밀리옹의 그랑 크뤼 등급. 메를로 70%, 카베르네 프랑 30%로 구성


2.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 (Domaine de Saint-Guirons Pauillac 2012)

보르도 좌안 뽀이약 지역. 카베르네 쇼비뇽 65%,  메를로 30%, 카베르네 프랑 5%로 구성. 프랑스 A.O.C 등급.


3. 샤또 도작 오로르 드 도작 마고 2014 (Chateau Dauzac Aurore de Dauzac Margaux 2014)

보르도 좌안 마고 지역. 카베르네 쇼비뇽 61%, 메를로 39%로 구성. 샤또 도작의 세컨드 와인으로, 샤또 도작은 메독 레드 그랑 크뤼 5등급.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맛을 볼까.



Chateau Teyssier 2016

샤또 테이시에 2016

Red Wine from St.Emillion, Bordeaux, France

산청군 지리산 알프스의 정기를 받아 마신 샤또 테이시에 2016
소갈빗살, 양목살과 페어링해 보았다


유일하게 보르도 우안에서 고른 샤또 테이시에 2016. 비교적 최근 빈티지라 떫지 않을까 몹시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완전 대만족! 일단 컬러는 빛 투과량이 적은 짙은 검보랏빛. 육감적인 과실 향이 매력인 메를로 70%라 그런지 블랙 체리나 자두 같은 과실 향이 무척 풍부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보르도 와인의 삼나무 향이 베어 나온다. 텍스처는 무척 실키 하여 목 넘김이 좋다. 보르도 입문자가 마시기에 어렵지 않은 엔트리급 와인. 소갈빗살과 양목살과 페어링해 보았는데, 잡내 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렇게 빠르게 한 병을 순삭. 우리 부부의 데일리 보르도로 자리매김한 샤또 테이시에.

코스트코에서 32,990원에 구입했다.




Chateau Dauzac Aurore de Dauzac Margaux 2014

샤또 도작 오로르 드 도작 마고 2014

Red Wine from Margaux, Bordeaux, France

비 온 뒤 물안개가 낀 산 등성이를 배경으로 마셔본 샤또 도작 오로르 드 도작 마고 2014
양 목살 통구이와 마셔보았다


보르도 와인 중 가장 우아한 와인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좌안의 마고 지역. 특히 샤또 도작은 보르도 크뤼 5등급을 받은 샤또라 기대를 해보았다. 컬러는 역시 짙은 검보랏빛. 처음 오픈했을 때 코르크 상태도 엉망이고, 신향이 도드라져 와인이 상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천천히 잔에서 스월링 해보니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요세미티 공원. 울창한 숲, 색이 짙은 껍질을 가진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숲을 이룬다. 문득문득 작은 허브들이 고개를 내민다. 어디선가 야생화의 향이 스쳐 지나간다. 마시기 쉬운 텍스처. 미디엄 정도이고 처음엔 신 향이 많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시기 좋게 변해간다. 열어두고 조금 남긴 다음, 다음 날에도 마셨는데 첫날보다 더 마시기 좋았다. 양목살 통구이와도 잘 어울렸고 은근 양념통닭과도 괜찮은 궁합이었다. 코스트코에서 31,990원에 구입했다.




Domaine de Saint-Guirons Pauillac 2012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

Red Wine from Pauillac, Bordeaux, France

소갈빗살과 트러플 치즈와 페어링 해본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


마지막 주자는 좌안 뽀이약 지방의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 빈티지. 고른 와인 중 카베르네 쇼비뇽 비율이 제일 높아 파워풀함을 기대해 보았다. 2012 빈티지라 그런지 오래된 장독대향이 느껴지며, 초콜릿향, 삼나무향, 흙향, 초록 피망의 스파이시향 등 풍부하게 향이 올라왔다. 초콜릿 하나 가지고 울창한 나무 숲을 등산하는 느낌이랄까.
풀바디로 분류가 되어있던데, 풀바디까지는 아니고 미디엄 바디의 굉장히 목 넘김이 좋은 탄닌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입문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소갈빗살과 페어링해 보았는데 잘 어울린다. 고기의 꼬시꼬시한 향이 풍요롭게 살아나면서 동시에 까베르네 쇼비뇽의 스파이시향은 줄어드는 느낌.
컬러는 빛 투과가 안될 정도의 짙은 검보라 색이다.

코스트코에서 34,990원에 구입했다.



가자! 보르도 와인의 세계로!


입문자가 마시기에 맛도,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총 3가지의 보르도 와인을 마셔보았다. 모두 3만 5천 원 미만의 가격으로 데일리 와인을 삼아도 부담스럽지 않, 세 와인 모두 탄닌감이 높지 않은 미디엄 바디로 과하게 어렵지 않아, 셋 다 추천하지만 그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과실 향이 풍부한 걸 좋아하고, 흙향이나 스파이시함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샤또 테이시에 2016 빈티지를 추천하고, 반면에 삼나무나 흙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샤또 도작 오로르 드 도작 마고 2014와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를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여성적인 풍미와 산미를 원한다면 샤또 도작 오로르 드 도작 마고 2014를, 산미보다는 조금 더 중후하고 강건한 맛을 원한다면 도멘 드 생 귀홍 뽀이약 2012를 선택하면 될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당분간 샤또 테이시에를 마실 예정!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보르도 와인.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엔트리 급부터 차근차근 마을의 특성을 생각하며 마셔본다면 언젠가 5대 샤또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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