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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20. 2020

결혼 (부제: ‘편안함’과 ‘편함’의 차이)

인생의 짝 찾기: ‘결혼할 사람은 정말 느낌이 달라요?’


결혼을 한지 어언 두 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 나이 32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평생 결혼을 안 할 줄 알고, 일부러 큰 냉장고를 샀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을 보여 주지 않았으니, 혼자 그렇게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 냉장고를 산 지 일 년 만에 나는 결혼을 했고, 그 냉장고는 신혼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엄마의 착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건, 나는 혼기가 찼다고 해서 대충 알맞은 사람을 골라 결혼하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내가 상대가 가진 돈을 보거나, ‘사’ 자 같은 직업을 봤으면 결혼을 하기는 의외로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종의 낭만주의자다. 사랑 없이 조건만 있는 결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종자인 셈이다.


주변에는 일 년 반 전의 나처럼, 인생의 짝꿍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 종종 받는 질문은, ‘결혼할 사람은 정말 느낌이 달라요?’, ‘어떻게 이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다짐했어요?’ 이런 것들이다. 고백하건대,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고(느낌이 오는 사람들을 못 만나봤기 때문에), 귓가에 종소리가 울리느니 이런 비유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종소리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사람은 정말 달랐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남이 이상적’, ‘우리 집에는 데려다 주지 말기’, ‘갑작스러운 만남은 지양’. 이 세 가지는 남편을 만나기 전, 내가 연애를 할 때 혼자 암묵적으로 정해둔 룰이었다. 나는 평소에 운동을 하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친구들을 만나기 바빴고,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나면 나의 일상이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맥락으로 오늘 갑자기 보자고 하거나, 오늘 갑자기 여행을 가자는 ‘즉흥적인’ 제안은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유쾌하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거절할 때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마찬가지. 나는 데이트를 하고 나서, 집에 가는 지하철 여정은 오롯이 내 시간이었으면 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등 차분히 나를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누군가가 데려다주면 그 시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써놓고 보니,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굉장히 개인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남편을 만나고 나서는 이 모든 규칙이 적용이 되질 않았다. 우리는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났는데 그 두 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한번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기 위해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오히려 갑작스러운 만남을 청하는 것은 내 쪽에 있었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시간을 쪼개 쓰는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만남을 제안하는 법이 없었다. 늘 내가 주도하여 매주 데이트 일정을 미리 정해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늘은 일이 짜증 나서, 오늘은 오픽 시험을 망친 것 같아서, 오늘은 비가 와서, 오늘은 와인이 먹고 싶어서 등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갑작스러운 약속을 잡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이 사람에게는 그렇게나 달랐을까, 왜 내 모든 규칙들이 적용이 안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론은 이 사람과 같이 있는 게 편안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함께 둥글둥글해진 오래된 친구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오래된 관계가 아닐수록 다름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남편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마음이 편안했다. 이 ‘편안하다’는 감정은 우리가 이성적 끌림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들에게 사용하는 그 ‘편하다’와는 다르다. ‘편안하다’는 ‘편하다’의 ‘편’에 安자가 더해진 것으로, 안정감을 내포한다. ‘편하다’가 단순히 무언가를 하기 거리낌이 없고, 신체적으로 편한 것으로 의미한다면, ‘편안하다’는 심리적인 의미까지 내포하는 것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느꼈던 ‘편안하다’의 감정은, 오래오래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오래 같이 있을수록 더 같이 있고 싶어 지는 그 마음이다. 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그 마음이다. 아무리 누군가가 좋더라도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하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연애와 결혼의 상대는 다르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예전에는 저 말에 괜한 거부감이 들었다면 지금은 일부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단, 두 가지의 조건을 달고 싶다. 첫 번째는, 조건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상대와 함께 있을 때 갖는 그 마음에 따른 것이란 전제인 것이고, 두 번째는 결국 이상적인 평생의 짝은 연애 때부터 좋다는 사실. 연애 때는 별로인데, 결혼할 때만 좋은 건 결국 조건에 대한 논의가 아닐까(‘재미는 없는데, 한 눈 안 팔 것 같아’ 이런 것도 결국 성격에 대한 조건인 셈이다). 요약하자면, 연애의 상대는 결혼의 상대와 다를 순 있지만, 결혼의 상대는 연애의 상대와 같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고 있다면, 함께 할 때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찾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줬을 때 떠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느껴지거나,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꾸며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그대로 잘 맞고 편안한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다. 당연히 쉽지는 않다. 인생을 함께 해야 하는데, 쉽게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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