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이 연애 상담을 많이 해온다. 남편을 만나기 전, 나의 연애 등급은 후하게 쳐줘야 중간 정도였기 때문에 누가 누굴 가르치겠냐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결혼을 한 내가 연애라는 과업을 졸업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친구들의 연애 고민을 듣다 보면, 나의 과거의 연애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는 연애라는 것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썸’ 같은 상황에는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연애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사귀긴 했지만 내가 별 마음이 가지 않거나, 상대가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바로 ‘온도’와 ‘속도’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던 때, 나의 온도는 마치 끓는 물이었다. 나의 온도에 놀란 상대가 점점 온도를 낮추어갈 때, 나는 그것을 못 참고 안달복달하며 110도, 120도로 온도를 높여갔다. 게다가 나의 마음의 속도는 천리를 달리고 있었으니 상대가 왜 빠르게 멀어져 갔는지 답이 나온다. 뜨겁고 빠른 물체가 나를 향해 달려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제 막 기포를 조금씩 뿜으며 찬찬히 온도를 높이는 중이었는데, 상대는 나에게 섭씨 100도의 끓는 물을 원했다. 이런 경우 대개 온도가 높은 사람이 서운한 일이 많아지고, 온도가 낮은 사람은 미안한 일이 많아진다. 결국 그 미안한 마음과 부담스러움에 사귀기도 전에 마음이 무거워져 그만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 친구들의 연애 상담을 들어보면, 대개 문제는 ‘온도’와 ‘속도’에서 생기는 것 같다. 내 마음만큼 상대가 따라와 주지 않아서 속상하고, 그 속상한 마음을 티를 내려고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티가 나고, 그러면 상대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의 무한반복. <하트 시그널> 시즌 3에서 정의동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그때 박지현이 정의동에게 해준 조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연애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둘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의 온도에 맞춰주는 것이 크게 봤을 때 배려라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본인 마음이 중요한 건 맞는 말인데,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그 사람의 마음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예측할 수는 있으니 그 사람 마음의 온도를 맞춰줄 수도 있어야 할 것 같아"
- <하트 시그널> 시즌 3 12회, 박지현이 정의동에게
그런데 불행히도 이미 마음이 커져버린 사람은 온도와 속도를 상대에게 맞춰줄 여유가 없다. 그리고 한번 부담을 느낀 상대는 부담을 느끼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거기에서 문제는 비롯된다. 사실 누구도 잘못한 게 아닌데, 누군가는 미안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자책해야 하는 이 상황은 모두가 괴롭다.
이런 괴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다소 운명론적이지만, 굳이 일부러 맞추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온도’와 ‘속도’가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사귈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친해지고 싶어서 억지로 맞춰야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냥 딱히 맞추려 노력하지 않아도 맞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연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애쓰지 않아도 잘 맞는 사람, 서로 천천히 스며들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는 순조롭게 연애가 흘러간다.
너무 운명론처럼 들린다면, 다른 한 가지의 방법은 내가 누군가의 온도와 속도를 맞춰줄 여유와 경험치, 그리고 자존감을 확보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 건, 내 감정과 자아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을 때 가능하다.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내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다면, 그 관계는 몹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다면, 계속해서 남으로 하여금 내 자존감을 채우려고 갈증 내고 허덕이거나, 혹은 나조차 나에게 확신이 없어 상대를 회피하게 된다.
나는 결혼 전에는 남편과 나의 사이는 그냥 태초부터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의 기복이 있는 나와는 달리 늘 마음이 단단하고 평온한 남편 덕분에 나의 온도도 덩달아 평균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내가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더 표현을 하고 싶어도 일부러 속으로 삭혔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어떻게 행동했건 지금의 나로선 그래도 우린 만났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연애 열등생이자 일희일비의 대가였던 내가, 남편의 표현에 기고만장해 관계를 그르쳤을지도.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감정의 뿌리를 단단히 하자. 그러면 온도도 속도도 자연스레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