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뭘 한 게 있다고 벌써 8월 중순. 작년 같았으면, 다가오는 해외로의 출국 날만 기다리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어디를 갈지 계획을 세우느라 승모근이 잔뜩 위로 솟은 채로 즐거워하고 있었을 텐데. 직장인에게 있어서 2주간의 해외여행만큼 일 년 간 기다려지는 것이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런 소소한 행복마저 앗아가 버렸다.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우리나라 지방 곳곳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 때문에 자꾸만 예전 휴가 사진들을 뒤적여 보지만, 더욱 아련하고 아쉬워지기만 할 뿐이다. 됐다. 나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거다. 금세 코로나 19가 종식이라도 될 것처럼(현실은 암울하지만)! 희망을 안고! 미래지향적으로! 나는 휴가 계획을 써보겠다(계획이라 쓰고 소설이라 읽는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와 하이파이브! 저 세상 텐션!
약 30시간의 비행을 지나 도착한 킬리만자로. 나와 남편은 찌뿌둥하고 안 씻은 것 같은 얼굴로 호텔로 향했다. 어언 32시간 만에 누워보는 호텔 침대. 뽀송한 이불의 감촉에 취해 둘은 밀린 잠을 연달아 잘 것이다. 이튿날, 이른 아침 조식을 챙겨 먹고 사파리 투어를 위해 호텔을 나선다. 오늘의 내 코디 콘셉트는 호피 여사님! 드넓은 초원 아래 표범과 하나가 되고자 고른 호피 무늬의 블라우스는 위기 상황 시 보호색이 되어 나를 보호해 주겠지! 남편은 초원에서 나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이다. ‘누가 표범이고 누가 부인인지 모르겠어’
눈 앞에 펼쳐진 세렝게티 초원의 석양을 바라보며, 로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남아공 와인을 한 잔씩 마신다. 남아공의 피노타쥬 와인에서 아프리카의 공기와 타오를 듯 하늘을 집어삼키는 석양이 느껴진다. 가이드가 말했다. 저녁에는 밖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들의 희번덕하는 눈만 보일 거라고. 새카만 세렝게티의 밤. 이곳저곳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는 남편을 꼬옥 안고 물어본다.
‘오빠, 세렝게티 뜻이 뭔지 알아?'
- '모르겠는데'
‘사랑, 같이(새랭, 개티)’야. 그러니까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야’
- '...'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사파리 투어 2일 차를 맞이한다. 훤히 보이는 세렝게티의 아침은 어젯밤의 그것만큼 무섭지는 않다. 저 멀리 사자가 보인다. 괜히 내 옷이랑 비슷해서 친근감이 느껴지려던 찰나에, 그가 사냥을 시작한다. <킹덤> 속 좀비가 사람을 물어뜯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오싹해진다. <킹덤>을 볼 때처럼 남편 팔을 붙잡고 얘기한다. ‘라이온 킹덤’
괴발새발 온라인 포토샵으로
9박 10일의 일정을 끝내고 서울 땅을 밟았다. 뭐지?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다.
아, 꿈이었구나. 개꿈. 왈왈.
현실은 신혼여행으로 준비했던 사파리 투어 선불금은 아직도 환불이 가능할지 확인 조차 안되고 있으며, 탄자니아 인 앤 아웃 비행기는 2년 내 쓸 수 있는 케냐 항공의 바우처로 환불을 받은 상태. 게다가 탄자니아 내 국내선 비행기는 씨트립에서 환불 요청을 하였으나, 아직도 환불금이 여행사로 넘어오지조차 못한 상황이다. 모두가 힘드니 진상을 부릴 수도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