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아니 요 몇 주, 아니 요 몇 달은 자주 우울했다가 자주 기뻤다 했다. 기쁨의 원천은 나의 가정, 나의 남편이었고, 우울의 근원은 다름 아닌 일과 코로나였다.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코로나 블루 환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 우울해하다가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떠올리다 보니 조금 전 겪었던 우울감이 우습게도 금세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잔뜩 좁아졌던 미간과 축 쳐졌던 입꼬리가 단숨에 펴지고 올라갔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차근히 살펴보니, 크게 자극적이지는 않아도, 소소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코로나 블루’ 시대에 이보다 더한 치료제는 없을 것 같아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파리의 풍경이 주는 마음의 안식, <줄리 앤 줄리아>와 <미드나잇 인 파리>
하나, 이국적인 풍경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못 나가다 보니,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져만 간다. 이럴 때 이국적인 풍경이 담긴 낭만적인 영화들을 보면 마음을 달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미드 나잇 인 파리>. 시대별로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그야말로 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생동감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거기에다가 재즈 느낌 가득한 음악들은 나를 파리로 단숨에 데려가 준다. 음악에서 갓 구운 바게트 빵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시지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이전 시대를 동경하여 우연히 그 시대로 타임 리프 한 사람들을 통해, 현재에 불만스럽겠지만 결국은 현재가 제일 아름다운 때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 정말 아름답지 않은 해였지만, 혹시 또 모른다. 훗날, 베란다 바깥으로 바라본 미세먼지 0을 자랑했던 파아란 가을 하늘이 아름다웠다고 회상할지도.
<미드 나잇 인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얼마 전에 보았던 <줄리 앤 줄리아>다.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야말로 행복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줄리아 차일드는 이전의 모든 연기를 다 잊게 해 줄 만큼 강력하게 사랑스럽다. 줄리와 줄리아를 통해,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또 생기가 돈다는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임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이고, 찬란한 힘이 느껴진다. 요즘 같이 쉽게 지치고 동기를 찾기 힘든 때에 보면 뭔지 모를 에너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50년 대의 파리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 어서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져 파리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미드 나잇 인 파리>와 <줄리 앤 줄리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셰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어바웃 타임>을 함께 권하고 싶다. 이국적인 풍경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영화들은, 코로나로 지친 당신의 마음에 큰 위안과 소소한 행복을 줄 것이다.
소소한 우리만의 홈스토랑과 홈캠핑바
둘, 퇴근 후 남편과 소소하게 즐기는 홈스토랑
결혼하기 전에는 요리를 단 하나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요즘 큰 기쁨 중 하나는 남편과 소소하게 즐기는 집 요리와, 그에 맞추어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이다. 우리만의 소소하지만 알찬 홈스토랑이라고나 할까.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치 뷰가 좋은 유럽의 레스토랑처럼 꾸며두고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위에서 언급한 <미드 나잇 인 파리> OST를 틀고, 베란다 창문, 티브이 등 곳곳에 앙리 마티스와 반 고흐, 마르크 샤갈의 그림들을 붙여 놓으면 마치 유럽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얼마 전, 재택근무를 한 날에는 남편이 오기 전 그럴싸하게 홈스토랑을 차리고 싶었다. 그래서 현관문에 내 성을 따서 ‘Welcome to Oh-bar’라는 팻말까지 써붙이고, 버거와 함께 프랑스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레드 와인 한 병을 준비해 두었다. 재택 근무지만 밖에 나온 기분을 내기 위해 빠알간 립스틱까지 바른 것은 나의 소소한 기쁨 중에 하나이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즐거워했다.
요즘 우리는 베란다에 캠핑 바를 꾸미고 있다. 우리 집의 큰 장점은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나무에 있다. 그 나무들은 도심 한가운데의 우리 집을 숲세권으로 탈바꿈해 주었다. 베란다가 꽤 넓은데 확장이 되어있지 않은 터라, 늘 그 좋은 풍경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남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요즘 베란다에는 우리만의 캠핑 바가 만들어지고 있다. 조립식 나무 바닥을 깔고, 그 위에 캠핑 의자와 캠핑 테이블을 두고, 또 그 위에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작은 수경 식물들을 올려두었다. 낮에는 나 혼자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기도 하고, 저녁에는 퇴근한 남편과 가볍게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보낸다. 다음 주에는 이곳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생각이다.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 곳이 진정한 천국이 아닐까.
최근에 읽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책, <자기 앞의 생>과 <수영하는 여자들>
셋, 마음이 따스해지고 자꾸만 미소가 지어지는 책
나의 책 취향은 앞서 언급한 영화 취향보다도 범주가 더 넓다. 작가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정말 좋아하고, 장르는 소설 혹은 마케팅 서적, 혹은 와인 관련 책, 그리고 고전 소설을 특히나 좋아한다. 한마디로 대중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마음이 따땃-해지는 소설 두 권을 읽게 되었는데, 힘든 마음에 소소하게 미소를 준 책들이라 소개를 하고 싶어 졌다.
하나는 친구가 추천해주어 읽게 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이다. 사실 이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와 같은 인물인데, 로맹 가리가 본인의 고착화된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가상의 인물로 에밀 아자르를 내세웠다. 이 책을 읽고 과연 삶을 삶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돈, 명예, 직업? 물론 그런 것들은 우리의 삶을 더없이 풍족하고 또 편리하게 해 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그것들과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창녀, 여장 남자 창녀, 프랑스에서의 아랍인과 유태인, 아프리카인, 완전히 나이 들어 앞도 안 보이는 노인 등. 그들은 소위 사회에서 소외당한 인물들이다. 만약에 삶을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이 돈과 명예, 직업이라면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가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우정으로, 또 인류애로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소설 속 이들보다 훨씬 가진 게 많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전부가 삐까뻔쩍한 세상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정말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고 따스한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누가 진짜 이 사회에서 소외가 된 사람인 걸까. 가진 것을 논외로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중에 말이다. 냉소적인 나 자신을 반성했다. 이 소설을 덮고 나서 특히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사랑해야 한다”. 정말 소외되고 싶지 않다면, 내 삶을 더 삶답게 만들고 싶다면, 사랑하자. 더 너그러워지고, 더 포용하자. 이런 마음이 들며 마음이 정말 더없이 슬프고 따뜻해졌던 소설이었다.
두 번째는 지금 읽고 있는 리비 페이지의 <수영하는 여자들>이라는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알라딘 이북에서 우연찮게 고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수영을 좋아하는 내게 욕구를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있는 두 여성을 그린 귀여운 표지도 한몫했다. 처음 몇 페이지는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수영하는 얘기는 안 나오고, 젊은 여자 주인공 케이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든지(그녀는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 얼마나 그녀의 삶이 무미건조한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수영이랑 무슨 상관이지, 할 때 즈음 ‘리도’라는 영국 브릭스턴에 위치한 야외 수영장을 중심으로 나이 든 여자 주인공 로즈메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미있어진다. 결국에는 도시의 자본주의 원리 때문에 부피만 차지하고 돈벌이가 안 되는 야외 수영장 ‘리도’가 대기업과 곳간이 빈 시청의 콜라보로 없어질 위기에 처하고, 리도에 추억을 갖고 있는 로즈메리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담당 기자인 케이트가 그런 변화와 흐름을 막아보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케이트에게, 80대 할머니 로즈메리는 케이트가 수영을 한 번이라도 하면 인터뷰를 해주겠다고 답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되고, 공황장애가 있는 케이트는 로즈메리의 제안에 의해 수영을 하게 되고, 종국에 이는 그녀를 치유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대단한 요소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로즈메리와 남편 조지의 어렸을 때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마치 어렸을 적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다들 힘들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좀이 쑤셔 힘들 것이고, 아이들을 유치원으로 보내지 못해 집에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실랑이를 해야 하는 나의 수많은 친구들도 힘들어한다. 왕성한 혈기를 집에서만 풀어내야 하는 아이들도 말은 못 하지만 힘들 것이고, 하다 못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우리 집 강아지들조차 힘들 것이다. 이런 때, 우울해지고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1분이라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행복해진다면 일단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