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성애자인 나는, 요즘 전자책의 장점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전자책 상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목격했던 ‘아무튼’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총 32권에 달하는 ‘아무튼’ 시리즈에서 내가 고른 것은 총 2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재의 <아무튼 하루키>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떡볶이 소재의 <아무튼 떡볶이>였다.
<아무튼 하루키>를 읽으며,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이지수 작가는 중학생 때 PC 통신에서 H.O.T. 팬인 고등학교 언니들로 인해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하는데, 나의 중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H.O.T.에 빠져있던 것은 맞아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대학생 때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때 <태엽 감는 새>, <댄스 댄스 댄스>, <해변의 카프카> 이런 책이 꽤 유명했던 것 같은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야하다’라는 단편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그저 그런 작가로 생각하고 한 번도 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하루키를 마주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으니, 또래 중에서도 아마 늦게 입덕한 축인 것 같다.
하루키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었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나는 아직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보다는 ‘상실의 시대’가 더 하루키스럽다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공허하고, 허무하면서도 또 소설의 서정적인 느낌을 더 잘 표현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 무렵 <상실의 시대>의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스타일의 남자였다. 지금이야 하루키의 소설은 다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심심찮게 와타나베 같은 주인공들을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때는 초면이었다. 뭔가 자기만의 세계에 골몰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수룩하기도 하고, 쓸쓸해 보여서 보듬어 주고 싶은 사연 있는 남자. 그야말로 여성의 모성애를 한껏 자극하는 주인공이었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여린 짐승, 나의 밝음으로 치유하게 만들겠어!’ 이런 욕구를 한창 자극하는 남자랄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와타나베 캐릭터가 여자인 나에게만 매력적이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와타나베는 우리나라에 수많은 ‘하루키 병’ 환자들을 양산했다. ‘하루키 병’ 환자라 하니, 여러 명의 남자들이 뇌리를 스치고 가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그의 나이가 29살이었던가, 30살이었던가. 그는 그 나이에 처음 하루키 월드에 발을 들였고, 첫 발에 단번에 하루키 병을 득하고야 말았다. 아니, ‘와타나베 병’이 더 옳은 표현이려나. 그는 와타나베에 과몰입하였고, 심지어는 남들이 본인을 ‘X타나베’(본인의 이름 뒷글자에 와타나베를 합성)라고 부르는 것을 아주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못 잊었듯이, 세기의 사랑을 했던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나는 다른 사랑을 할 준비가 안되어 있어’라는 쓸쓸하고 고독하고, 염세적인 그런 분위기를 마구 뿜어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랑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작업이나 걸지를 말든가, 그는 작업은 작업대로 걸어놓고 여자가 떡밥을 물면, 갑자기 ‘세젤고(세계 제일 고독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해 텍스트로 써보니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어이가 없는데, 우습게도 그때는 ‘와타나베 병’에 걸린 그 사람 주위에 있다 보니 그 분위기에 덩달아 심취하여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꼈던 것이 진정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오히려 그에게 ‘오! 정말 와타나베랑 비슷하네!’라고 이야기했던 내 입을 치고 싶고, 이불 발차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미도리에게도 책에 기록되지 않은 훗날, 그러니까 와타나베와 재회한 이후, 그가 기가 막힌 시간이 왔을까. 아니, 다시 만나기는 했을까. 차라리 다시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분명히 이불 발차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불 발차기하는 미도리라,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재미는 있네.
아무튼 하루키는, 하루키라는 상징성은 참 대단하다. 읽기만 하면 금세 그의 캐릭터들에 몰입하고 이입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하루키의 강력한 힘이 아닐까. 에세이를 통해 엿본 하루키는 정말 사람으로서도, 작가로서도, 그리고 남자로서도 참 매력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그의 분신 같은 남자 주인공들도 매력이 철철 넘친다. 하지만, 잊지 말자. 그래도 당신은 하루키가 아니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더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