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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Oct 07. 2020

지구와의 상생, 포도의 본연에 집중하는 내추럴 와인

Vino Bellotti Bianco, AD Vinum Bim


작년부터 한국에는 내추럴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여, 올해는 거의 절정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년만 해도 내추럴 와인만 취급하는 와인바를 찾기 어려웠으나, 올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신용산 역 근처에서도 당장 최소 3곳은 찾아볼 수 있고, 아마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합치면 5곳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내추럴 와인은 각 와이너리마다 범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인공적인 무언가를 최소화하여 포도나 포도주 자체의 본연의 맛에 집중한 와인이라 할 수 있다. 포도를 기를 때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와인에서 보존을 위해 쓰는 이산화황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포도의 본연에 집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포도즙을 필터링도 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들이 예측 불가능한 편차와 뿌연 컬러, 톡 쏘는 듯한 탄산감, 구수한 맛 같은 내추럴 와인의 특성을 만들어 낸다.


나는 그동안 내추럴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포도 본연에 집중, 또 지속 가능함, 상생이라는 큰 취지에는 깊게 공감하는 바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큰 대의에 함께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인스타그래머블한 핫한 아이템으로 주로 소비가 되는 것 같아 괜스레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 데에 이유가 있다. 또한 '내추럴'이란 글자만 들어가면 일반 와인보다 훨씬 마진을 붙여 비싸게 받는 와인바들이 많아, 더더욱 멀리하게 됐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작년에 내추럴 와인이 핫해질 무렵 여러 내추럴 와인들을 마셔보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일반 와인보다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소똥 냄새 같은 마구간 향기, 파마 중화제 향 같은 것이 주를 이루었고, 내겐 그다지 돈 주고 마셔야 하는 이유를 못 찾겠던 것이 바로 내추럴 와인이었다.


하지만 요새 핫한 와인바들은 전부 내추럴 와인 기반인지라, 약속 장소가 거의 내추럴 와인바였고 그 덕에 거의 1년 만에 내추럴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와인 리스트

1. Vino Bellotti Bianco / 비노 벨로티 비앙코

2. AD Vinum Bim / 아드 비늄 빔

3. Montesissa Emilio Bonissima Frizzante Bianco / 몬테시싸 에밀로 보니씨마 프리잔테 비앙코

4. Le Temps Retrouve Macabeu 2017 / 르 땅 르트루베 마카베오 2017

5. Angiolino Maule Masieri 2018 / 안지오리노 마울레 마시에리 2018





Vino Bellotti Bianco

비노 벨로티 비앙코

White Wine from Piemonte, Italy

Pairing with 생선찜, 가츠 산도 @ Venez

가츠산도, 생선찜과 페어링해본 VINO BELLOTTI BIANCO


벨로티는 내추럴 와인 중에서도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것으로, 일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벨로티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많이 봐왔었다. 내추럴 와인의 입문용이라고나 할까.


비노 벨로티는 내추럴 와인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스테파노 벨로티가 생산하는 와인으로, 와이너리 카시나 델리 울리비(Cascina Degli Ulivi)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 위치해 있다. 이 와이너리는 바이오 다이내믹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래서 농장에 심는 식물이나 기르는 동물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준다고 한다. 비노 벨로티 비앙코는 역시나 내추럴 와인답게 보존제로 쓰이는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고, 필터링을 하지 않았다. 포도 품종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토착 청포도 품종인 코르테제(Cortese) 100%로 이탈리안 가비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이는 품종이다.


노랗고 탁한 컬러가 내추럴 와인임을 직감하게 한다. 발효된 사과초 느낌. 산미가 있고 중간중간 누룽지 사탕 같은 구수한 단 뉘앙스가 감돈다. 시간이 갈수록 내추럴 와인의 쿰쿰한 향과 사과초 같이 톡 쏘는 느낌이 무뎌지면서 더 맛있어진다. 내추럴 와인이지만, 앞서 얘기했던 마구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마시기 좋았다. 레몬즙을 뿌린 라구 파스타와 특히 잘 어울렸다.


건대 어린이대공원 쪽에 있는 와인바 브네(Venez)에서 7만 원 대에 마셨다.





AD Vinum Bim

아드 비늄 빔

Red Wine from Languedoc, France

Paring with 브당누아 @ Venez

프랑스식 순대요리 부당 누아와 페어링해 본 내추럴 와인 BIM


통통 튀는 레이블을 가진 내추럴 와인 빔. 프랑스식 순대 요리인 부당 누아와 함께 마실 와인으로 추천받은 와인이다. 'BIM'이라는 단어의 뜻은 슬랭으로 'Dope', 'Bet'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빔'이라고 불리던 내추럴 와인 페스티벌을 기념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생산자는 세바스티옹 샤티옹(Sébastien Chatillon)으로 루아르 밸리의 유명 내추럴 와인 생산자인 René Mosse와 일하며 내추럴 와인의 지평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내추럴 와인을 가리켜 '프레쉬하고, 색다르고, 아침에 두통이 없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꿈같은 와인'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오히려 내추럴 와인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가 있어서 개인차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포도 품종은 그르나슈, 까리냥, 무르베르드, 쌩쏘가 블렌딩 되었으며, 올가닉 와인인 동시에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다.


제비꽃 같은 보랏빛 컬러. 된장찌개 맛이 나는 건 아니지만, 마치 된장찌개를 먹을 때와 같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검은 베리류의 과실 향과 그로부터 나오는 산미, 흑후추의 스파이시함이 느껴진다. 탄닌감은 아주 살짝 있어서 라이트하고 목 넘김이 좋다. 부당 누아와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한국 순대랑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건대 어린이대공원 쪽에 있는 와인바 브네(Venez)에서 7~8만 원 대에 마셨다.






Montesissa Emilio Bonissima Frizzante Bianco

몬테시싸 에밀로 보니씨마 프리잔테 비앙코

Orange Wine from Emilia Romagna, Italy

Paring with 본 메로우, 양젖 치즈가 뿌려진 고구마 크로켓 @ Fav

프랑스 우족 요리 같은 본 메로우와 양젖 치즈를 올린 고구마 고로케와 페어링한 보니씨마 프리잔테 비앙코 


몬테시싸 에밀로 보니씨마 프리잔테 비앙코는 껍질을 함께 침용하여 만든 오렌지 와인이다. 백포도를 사용하지만, 껍질을 함께 발효하기 때문에 특유의 오렌지 빛이 난다. 몬테시싸 에밀로는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와인 메이커로, 에밀리아 로마냐 주에는 이탈리아 미식의 고장 볼로냐가 위치해 있다. 이 와인은 껍질과 함께 15일간 발효한 뒤, 병에서 필터링 없이 자연적으로 12개월 동안 2차 발효를 한다고 한다. 포도 품종은 말바시아 디 칸디아, 오르투르고가 블렌딩 되었는데, 두 품종 모두 이탈리안 토착 품종이다. 보통 두 가지 품종이 함께 블렌딩 된다고 한다. 


오렌지 와인답게 오렌지 컬러가 눈에 띈다. 향에서도 역시 오렌지 껍질 같은 향과 함께 내추럴 와인에서 자주 맡을 수 있는 파마 중화제 같은 향이 난다. Frizzante(프리잔테)는 반발포성 와인을 의미하는데, 스푸만테 보다는 발포성이 약하다고 한다. 이 와인 역시 프리잔테로 마치 씨그램 탄산수 같을 정도로 센 탄산감과 맹맹한 미네랄리티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탄산수 같은 맹맹한 탄산감은 나의 기호와는 맞지 않았지만, 오렌지 와인다운 내추럴 와인이었다.


삼각지 역 앞에 있는 와인바 파브(Fav)에서 7~8만 원 대에 마셨다.





Le Temps Retrouve Macabeu 2017

르 땅 르트루베 마카베오 2017

White Wine from Roussillon, France

Paring with 치즈, 라구 파스타 @ Fav

치즈와 함께 페어링 한 르 땅 르투루베 마카베우


르 땅 르투루베는 프랑스어로 '되찾은 시간'이라는 의미다. 생산자 Michaël Georget은 스페인 접경 부근에서 20년간 버려진 포도밭을 발견하여 와이너리를 일구기 시작했다. 그곳에 버려져 있던 옛 가구들이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르땅 르투루베라고 부르는 것들이어서 와이너리 이름을 르 땅 르투루베라고 지었다. 버려져있던 포도밭을 다시 일구는 모습에서 과연 '되찾은 시간'이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와인은 마카베우라는 루씨옹 지방의 토착 품종 100%으로 만들어졌으며, 30년 된 나무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했다고 한다. 오래된 오크 배럴 통에서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며,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사용했고, 또한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옅은 레몬빛 뿌연 컬러. 어디서 많이 맡아본 향이라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매니큐어 향과 잘 익은 한국 배 향이었다. 와인에서 맡아보기 굉장히 생소한 향들의 향연. 산미는 적당했다. 치즈와 잘 어울리긴 했지만, 역시나 매니큐어 향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삼각지역에 위치한 와인바 파브에서 마셨다. 






Angiolino Maule Masieri 2018

안지오리노 마울레 마시에리 2018

White Wine from Gambellara, Italy

Paring with 애플 고르곤졸라 피자, 애호박 바질 페스토 파스타 @ Polveri


안지오리노 마울레 와이너리는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감벨라라에 위치해 있다. 감벨라라 DOC는 가르가네가 품종을 80% 이상 사용해야 한다고 그러는데, 이 와인도 가르가네가 90%에 다른 품종 10%가 블렌딩 되어 있다.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고, 필터링도 하지 않는다. 발효할 때도 판매하는 인위적인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효모를 사용한다. 


옅은 밀집의 뿌연 컬러. 처음에 마실 때는 포도 품종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달큼한 뉘앙스가 뮈스까 같기도 하고 청량한 것이 피노 그리지오 같기도 하고, 레몬 느낌이 샤도네이 같기도 했는데, 이탈리안 토착 품종인 가르가네 90%였다. 처음에는 레몬이나 오렌지 사탕 같은 향에 약간 박스 냄새 같은 느낌도 나고, 레몬 그라스 같은 허브 향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에서 채취한 꿀 향, 밀향, 그리고 잣이나 브라질너트 같은 견과류 향이 나기 시작했다. 산미는 중간 정도로, 아주 이지하게 마실 수 있는 내추럴 와인이었다. 내추럴 와인 특유의 쿰쿰한 소똥 냄새는 나지 않아서 좋았다. 이탈리안 음식들과 굉장히 무난하게 어울리는 내추럴 와인이었다.


합정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폴베리에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3~4만 원 대에 구매했던 것 같다. 






확실히 일 년 전에 경험했던 내추럴 와인들보다 최근에 마셨던 것들이 품질이 좋다고 느껴졌다. 그 사이에 내가 맛봤던 당황스러울 정도로 맛없는 내추럴 와인들은 시장에서 도태되었을 수도 있고, 내추럴 와인 전체적으로 품질이 더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추럴 와인을 정말 진정성 있게 만드는 와인 메이커들의 생각과 노력에는 크게 동의하지만, 역시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값에 더 맛있는 일반 와인을 마실 수 있다면, 굳이 내추럴 와인을 마실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이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더 좋은 먹거리를 위해, 그리고 환경을 위해서도 더 맛있는 내추럴 와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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