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일상을 할퀴는 중이다. 제발 여름이 오기 전에만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봄의 바람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워터파크는 개장한다고 하지만 아직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고 해수욕장은 예약제 운영이라는 사상초유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못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물놀이가 하고 싶다. 속절없이 지나가 버릴 이번 여름이 벌써부터 아쉽다.
어린 시절 YMCA 수영교실에서 일찌감치 수영을 배웠던 나는 여름만 되면 그렇게 물놀이를 가자고 부모님을 졸랐다. 내 키를 훌쩍 넘기는 수영장에서도 내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 감각이 좋았다. 아직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이 좋았다.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좋았고,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역시 물놀이 중간에 수영복을 입은 채로 앉아서 먹는 음식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세상에 수영장이라곤 ‘부곡하와이’뿐인 줄 알았던 대구 촌놈에게 집에서 십 분만 걸어가면 있는 한강 고수부지의 수영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침 일찍 출발해 천원도 안 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자리를 잡으면 해가 질 때까지 실컷 놀 수 있었다. 천막으로 만들어 놓은 시원한 그늘막에 자리를 잡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았다. 물에만 던져놓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신나게 놀았다. 음주와 취사도 가능했던 그 시절의 한강 수영장은 어른들에게도 신나는 곳임에 분명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 아침마다 분주하게 바리바리 한 짐 싸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짐을 펼치자마자 아이들은 옷을 벗어던지고 집에서부터 입고 온 수영복의 자태를 뽐낸다. 그리곤 수모를 꺼내 슥슥 물에 적셔 머리에 뒤집어쓴다.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모를 쓰지 않은 채 물에 뛰어든 아이들에겐 어김없이 무서운 안전요원 형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근엄한 표정을 한 채 수영장을 주시하는 그들의 주요 임무는 수모를 쓰지 않은 아이들을 잡아내거나 오십 분마다 십 분씩 주어지는 쉬는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다. 십 분도 쉬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 밖으로 나오면 각 자리의 엄마들은 솜씨 좋은 복싱 트레이너처럼 바빠진다.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커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몸에 담요를 둘러준다. 미리 준비해뒀던 음식을 아이의 입으로 넣어주며 물놀이로 인해 소진된 체력을 보충해준다. 오십 분간의 물놀이와 십 분간의 식사는 수영장에서의 한 시간이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이유였다.
그 십 분간의 짧은 식사를 위한 메뉴는 대체로 맨밥에 김을 돌돌 말아 만든 충무식 김밥이었다. 배 위에서 빠르게 식사해야 했던 뱃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고안된 충무김밥은 오랜 세월이 지난 서울 잠실 고수부지의 한 수영장에서 아이들의 빠른 식사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담요를 두르고 수영복을 입은 채 쪼그려 앉아 그 김밥을 오물오물 받아먹었다. 다시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신호를 기다리며 대 여섯 개쯤 김밥을 먹다 보면 다시 호루라기 신호가 울린다. 나와 같은 포즈로 김밥을 받아먹던 그 수영장의 모든 아이들은 일제히 일어서고 그 뒤를 따라 엄마들은 마지막 한 개의 김밥을 입에 넣어주고서야 아이를 놓아준다. 아이들은 다시 오십 분을 신나게 놀고 두 번쯤 더 김밥을 먹으러 물에서 나온다. 수영장에서의 김밥은 빨리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어가면서 날씨는 조금 쌀쌀해진다. 아침부터 온 힘을 다해 놀았던 나는 더 이상 휴식시간이 끝났다는 호루라기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젖은 수영복을 벗어두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수영장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발면을 받아 든 나는 뜨거운 국물을 목구멍으로 흘려보내고, 기침을 하며 면을 한가득 입에 밀어 넣는다. 물에서 나와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던 몸은 사발면의 온기로 따뜻해졌다. 어른들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고 시끌벅적했던 수영장은 어느새 한산해져 있다. 오늘이 끝나는 게 아쉬워 사발면을 천천히 느리게 먹었다. 덕분에 그 따뜻함을 오래 느낄 수 있었다. 한 개라도 더 먹이려 나를 따라다니던 엄마는 이제 그만 먹고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날의 물놀이가 그제야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맨밥을 김에 말았을 뿐인 김밥을 먹었고, 수프를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부었을 뿐인 사발면을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 두 가지 음식은 여름이 되면 생각난다. 지나가는 이 순간이 아쉬워 김밥은 빨리 먹어야 했고, 같은 이유로 사발면은 천천히 먹어야 했다. 그로 인해 그 풍경은 이렇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렷하게 기억된다. 지나가는 이 순간을 아쉬워하며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올해 여름은 더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을 여름이라 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