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인입니다.
이상한 나날들이었다. 처음 마주한 누구는 나를 작가로 알고 있었고, 또 누구는 나를 대표라고 칭했으며, 어떤 이는 나를 시인이라 불렀다. 불과 서너 달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나는 여지없이 소박하고 모자란 청년이었지만, 그래도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진 않았던 것 같다. 마치 내가 힘들게 겪어온 시간이 그만큼 나에게 영광의 상처를 새겨준 듯했다.
책을 출간하게 된 기간은 짧게 보면 서너 달이지만, 모든 소설과 영화엔 극적인 서사가 펼쳐지듯이 여섯 해라는 세월이 없었다면 불불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동안 묵묵히 달려와 준 내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영감을 찾는다고 멀고 먼 여정을 떠났지 않았을까 싶다. 나한테는 책 출간이 막연한 도전이었고 꽤 고생을 치뤘지만, 넓고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을 땐 결코 대단한 일을 일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상 해보니까 말 그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책을 내기 쉬워진 요즘 시대에서 나의 역할이 한참 부족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에는 뭐….'라는 마음을 갖고, 또 부족했던 만큼 더 이룰 역량이 많다고 느낀 터라 이번 도전은 내 인생에 큰 거름으로 남을 것 같다.
시집의 원고는 시들의 모임이라고 해야 하나. 영어로 시집을 부를 때, 작품집이라는 의미로 collection을 붙여쓰기도 하니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한 편 한 편의 시를 짓고 그것들을 모으는 과정들은 다른 작업에 비해 정말 수월했다. 물론 창작의 고통과 그 산물은 시인으로서 무엇보다 고되고 값지다는 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인디자인을 사용하며 앞‑뒷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하던 시간. 그리고 홍보를 위한 소개 사진과 그에 따른 컨셉 및 전략을 구성하던 시간. 인쇄소와 배본사 여러 군데를 연락하며 미팅을 잡고 이견을 조율하던 시간. 이러한 부가적이지만 필수 요소인 작업이 나에겐 창작보다 어렵고 힘들게 다가왔다. 만약 주변에서 "나는 글 쓰는 게 좋아서, 직접 책을 낼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아…… 그대여' 그 긍정은 책을 펴낼 때 이미 다 소진해 버릴 거고 아마 그보다 부족할 거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해줄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출간이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번 도전도 상당히 뜻깊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나와 같이 첫 출간을 앞둔 분들을 위해 소소한 출간 팁들을 남길 예정이다.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한 번쯤 쳐다볼 선택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편집부터 제본 그리고 서점 계약 등 낯설지만 재밌던 순간들을 천천히 남겨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