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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Mar 09. 2024

인생이 고달플 때, 소주 한 잔

술의 낭만

사는 게 어떤가요. 가끔은 '사는 게 항상 찬란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요. 나의 내일이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고, 오늘이 유독 그렇지 못한 하루였기에 드는 푸념일까요. 그대는 어떤가요. 사실 저는 누군가의 위로가 마음에 잘 와닿지 않아요. 그대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함부로 위로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 삶을 누구도 헤아릴 수 없기에 그 위로가 마음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대의 오늘은 어땠나요. 따뜻한 위로를 해드리진 못하지만 잠시 눈을 감고 이곳에 푸념을 털어놓고 가세요. 오늘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걸로 모자라 집사가 담배를 피우고 독한 술 냄새가 나는 음료를 따라 마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양이⎦ 中-


   커피를 대낮에 먹는 최고의 음료라고 한다면, 술은 심야에 먹는 최고의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까닭은 명량한 햇살과 고독한 달빛이 말해주고 있다. 커피에는 카페인 그리고 술에는 알코올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둘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각성을 촉진하지만 반대로 알코올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하여 이완과 같은 진정 효과를 야기한다. 이는 분명 다른 효과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두 음료는 어떠한 효과를 불러오는 매개체와 같다. 또한 과다 섭취 시 부작용이 잇따르기에 반드시 주의가 필요한 음료이다.

   그래도 카페인은 알코올에 비하면 중독성이 낮은 물질이다. 물론 섭취하는 주 시간대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아무래도 커피는 각성에 도움을 주고 술은 안정에 도움을 주기에 음주를 절제하는 데 높은 정신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보면 술은 참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음료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변화가 따르는데, 먼저 앞서 말했듯 알코올을 섭취하면 진정 효과로 인하여 불안과 우울증이 해소된다. 쉽게 말하자면 술을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음료라니 어찌 보면 적정량의 술은 약인 것도 같다. 그리고 음주 뒤에 취기를 알려주는 감각 기관의 둔감 효과가 일어난다. 이 변화는 음주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껴봤을 법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가 음주를 하는데 고려하는 주된 사항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술은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음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해 자정이 되자마자 그들은 술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힌다. 그렇게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학과 개강파티, MT, 앞풀이와 뒤풀이, 체육대회 등에 참가하여 쌩쌩한 간에 술을 콸콸 둘이 붓는다. 다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사내 회식, 모임 회식, 송년회 등에 참석하여 술자리를 갖는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밥만 먹고 헤어지는 자리도 있지만, 아직까진 모임이라고 하면 보통 술자리를 떠올리는 세상이다. 그만큼 술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취기는 내향적인 사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해 주고, 평소였으면 꺼내기 꺼려했을 속마음도 선뜻 털어놓게 도와준다. 알코올의 화학 작용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술자리의 밀접한 공간과 술잔을 따라주고 부딪히는 행동들이 사람을 좀 더 친밀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시간대 번화가를 둘러보면, 우리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아직 술자리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싶다.

   그래도 낭만의 시대라 불리는 2000년대를 넘어서는 시끌벅적한 술자리보다 사적인 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혼술을 즐기는 성인의 수도 꽤 증가했다. 그들은 조용한 시간을 원하고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술을 부어라 마신다기 보단 술을 홀짝인다는 표현이 알맞을 거 같다. 술과 함께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보고 자신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는 사유의 조건과 비슷하다. 적절한 취기가 사유를 도와주는 것처럼 고독한 사람은 그 시간 자체를 즐긴다. 고독한 문예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적적한 술자리를 갖는 것도 이에 속한다. 술에는 신나고 역동적인 분위기와 적막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공존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인생이 고달플 땐 왠지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삶에 이리저리 치여 지쳐버린 육신과 정신을 다시 한번 취하게 한다. 재빨리 취해버려 잠을 청하고 내일이 오길 바란다. 아니, 어쩌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깃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술이 달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어릴 땐 붉은 얼굴로 술냄새를 풍기는 어른들이 못마땅했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걸 보면 더욱 그랬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그들이 마신 건 단지 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음주를 장려하고 싶은 마음은 한 치도 없지만 술의 낭만을 아는 건 또 다른 얘기이다. 술은 사람을 뜨겁게 만든다. 그래서 어떨 땐 아주 강렬한 용기와 굳센 결심을 전해주기도 한다. 유치하지만 나는 이것을 '술의 낭만'이라 표현하고 싶다. 술의 낭만은 연인에겐 진실된 사랑으로, 벗에겐 진한 우정으로, 가족에겐 거룩한 존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술에 깨어나면 부끄럼이 밀려오지만 그 진정성에는 거짓이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술의 낭만은 종종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곤 한다. 누구는 술김에 무례한 태도를 일삼고 심지어는 무모한 짓도 저지른다. 여기에는 경범죄는 물론이고 중범죄까지도 범주 안에 속해있다. 그들은 자신의 범죄 행동에 대한 책임을 술에게 떠넘긴다. 모든 범죄자는 그 자체로 규탄받아 마땅하지만,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더욱 강력하게 벌해야 한다. 그들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은 판결에 앞서 음주 후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변명을 일삼는다. 안타깝게도 사례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법은 피해자에겐 최소한의 정의를 주고 가해자에겐 최대한의 관대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집 근처 편의점, 마트, 술집 어디서든 술을 구하고 마실 수 있다. 술을 사고 마시는 것은 온전히 자기 의지에 속하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본인에게 있다. 하지만 국가는 자유로운 그를 딱하게 여긴다. 국가가 음주에 대해서 크게 규제하는 바는 없지만, 그가 술에 취하여 벌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다시 말해, 국가가 나서서 심신 미약 상태에서 저지르는 행위를 인정해 주지만, 그 주된 원인인 음주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는다. 모순된 행동과 결과인데 그 여파는 오로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또한 범법 행위가 아니라도 술에 취해 친구들과 고성방가를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행위를 낭만이라고 칭하긴 어렵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지언정 그것은 분명 민폐고 해악이다. 특정 연령층을 비하하는 발언일 수도 있겠다만, 요즘 세대는 사회성에 대한 개념이 매우 결여된 듯하다. 그로 인한 장단점은 분명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을 잘못이라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영향이 술을 만나면 극대화되는 효과가 일어난다. 술을 마시고 난동 피우는 행위를 난동이라 사고하지 못하고, 술이 깨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변화'라고 한다면 나의 책임이지만 그보단 '퇴행'에 가깝지 싶다.


   무엇이든 과한 건 좋지 않다. 적절한 음주를 즐기는 것은 지성인의 특권이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그의 의무이다. 때로는 과음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숙취는 온전히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인생이 고달플 땐 술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하며 털어버리는 것도 좋은 태도이다. 건강한 사유는 건강한 일상에 깃들고, 건강한 일상에는 반드시 휴식이 따른다. 적당한 음주를 통해 여러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휴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음주 후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다. 다만, 그 시간을 휴식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술자리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즐기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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