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예술가
SNS를 하던 중 흥미로운 주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어느 한 게시물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솔비 님께서 그림을 그리는 부분이 일부분 편집되어 올라온 영상이었습니다. 워낙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결과물을 보고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림이 제 취향과는 다르다고 느꼈지만, 오히려 그림에 열중하던 솔비 님의 모습에 사람 그 자체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댓글에는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주로 비난에 속했습니다.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것은 예술이 아니고 솔비 님은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의견은 참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분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그림을 그리면 그릴 것이지 왜 방송에 나오는 것인지"였습니다. 저는 예술하는 것과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 부분까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예인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현재는 화가로서 예술을 하는 솔비 님, 이분은 정말로 예술을 할 자격이 없을까요?
예술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번식과 감각을 넘어서 사유하는 능력을 지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사유, 어떠한 현상에 대하여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는 해석의 사유, 기존 창조에 대한 영감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재창조의 사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들을 표현이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이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로서 인간의 삶은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표현에 대해서 깊이 살펴보자면 "표현하다"에는 '표현하는 자'와 '표현'과 '표현받는 대상'이 필요하다. 만약 '표현하는 자'가 기억과 기록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현'이 일어날 수 없다. '표현하는 자' 역시 '표현' 없이는 어떠한 것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면 여기서 어려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표현하는 자'가 존재하는 '표현'은 '표현받는 대상' 없이도 표현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 표현은 번식과 감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사유로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사유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간은 독립적인 사유를 할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태어날 수 없으며 죽을 때까지 공동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사유가 존재하기 위해선 어떠한 타 사유와도 닿아선 안된다. 타인과의 대화∙책∙음악을 포함한 인간의 산물이 나에게 닿지 않고, 나 또한 그들에게 닿지 않는 그곳은 현시대에서 구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독립적인 사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는 사유로서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누군가의 사유가 나에게 미치고, 나의 사유가 누군가를 스쳐감으로써 모든 사유가 서로 통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표현은 사유의 형태로서 타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표현받는 대상'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예술은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구는 표현과 예술을 다른 것이라고 구분하지만, 저자는 두 영역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의미를 지녔는데, 그 활동을 예술이라고 규정짓는 데에는 합리적인 틀이 없다. 그렇기에 자연 그 자체를 예술로 보는 사람이 있고, 인간의 일상 대화를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예술로 칭하는 사람이 있다. 예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그것이 예술인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건 그것을 예술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다. 예술을 표현하는 자와 그것을 예술로서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분명 예술적인 가치가 생긴다. 반대로 예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예술의 정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아름다움의 교본을 제작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을 특정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은 정의할 때가 아닌 바라볼 때 빛나기 마련이다.
간혹 예술에서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는 예술 작품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는지, 공신력이 있는 수상 기록이 있는지, 경력이 얼마나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또한 그들의 입장은 비난적인 성향을 띤다.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의 정체성을 들먹이며 상대의 행동을 무례하고 무식한 것으로 취급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도 화나게 했는가. 누구는 예술에 들인 시간과 돈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 여겨,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로 비전공자를 거부하고 질투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대학교 졸업장이, 전문적인 대회 수상 기록이, 단순히 오래 하는 것만이 예술의 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졸업장을 취득했기에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칭한다면 이것은 오만이고 정말 큰 착각이다. 전문적인 배움이 있다는 것은 작품을 기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그것도 작품을 기대한다는 것이지 대중이 그들을 예술가로 여긴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 자격을 따지기 전에 먼저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된다. 작품에는 직관적으로 보이는 걸 넘어서서 누군가의 삶, 작품이 전시되기까지의 배경 등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충분히 헤아렸다고 예술의 정의를 판단해선 안된다. 그것을 예술로서 표현하고 전시한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말로 인해 예술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그대는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다양한 모든 예술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그대는 예술이 어렵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예술은 정말 본능적이고 단순한 영역이다. 그곳은 내가 예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이 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낀 바가 없다면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조차 할 필요 없는 예술은 오히려 쉬운 세계이지 속하지 않은가.
예술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어가는 것에 속상한가. 설마 그대는 예술가로서 작품의 가치를 정해놓고 예술을 시작하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전시할 가치도 없는 하나의 물체에 족하고, 그대가 하는 행위는 예술을 넘지 못한 돈벌이일 뿐이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예술의 경제적인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듯 보이는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고 싶다면 열심히 돈을 벌고 명예를 거둬라. 하지만 그대가 예술을 하고 싶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결코 예술을 채워주지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