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행 티켓, 미래행 티켓 판매 중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혹은 미래로 떠날 수 있다면 언제가 좋을까?' 혹은 '과거로 가서 어떤 걸 겪어볼까?' 하는 그런 쓸데없는 상상. 그것을 쓸모없다고 말하지만 과연 진짜 아무런 가치가 없을지는 생각해 본 바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가볍고 우스운 상상이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한 번쯤은 하는 상상인만큼 샅샅이 어지럽히고 싶은 마음이다.
딸랑딸랑.
열차 두 대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새카맣게 어두운 검은색 열차와 새하얗게 밝은 하얀색 열차. 두 열차는 내가 서있는 좁은 길목을 사이에 두고 공기의 흐름을 뒤틀었다. 이곳은 이른 새벽의 꿈속도 아니고, 영화 속 9와 4분의 3 승강장도 아니다. 주머니 속 손을 빼보니 손에는 두 장의 티켓이 들려있다.
BLACK: past ticket.
WHITE: future ticket.
길목은 금세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붐벼 나의 어깨가 이리저리 부닥친다. 사람들의 재빠른 발걸음 사이로 울려 퍼지는 열차의 굉음이 귓속을 때려 박는다. 이곳은 마치 시계 안 세계처럼 흘러간다. 승객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초침 소리가 되고, 정각이 되자 이곳에선 열차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초침에 이리저리 치여 발걸음을 잃은 내가 어색하게 분침 위에 올라타있다.
나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곳은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얼마나 비슷할까. 떨리는 시선을 주어 담아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곧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발꿈치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 긴 '시간 여행'이 될 것 같다. 아니, 과거도 미래도 그곳에선 오직 현재뿐이니 머나먼 '공간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 어딘가에서-
단편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뭐 한 짧은 이야기를 지어봤다. 잠깐이나마 시간 여행을 상상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대가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어떤 티켓을 골랐을 것인가. 그곳에 얼마나 있을 수 있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없는지 이러한 세세한 조건은 필요 없다. 상상 속 이야기이니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고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러도 좋다.
어쩌면 시간 여행이라는 것은 마법에 더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마법 또한 현실에 입각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니. 과학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끌지 모르지만 만약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가능해진 현실이라면 이와 같은 상상은 지금만큼의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머릿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땐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언젠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참이라고 여긴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부정 없이 한껏 집중하는 나의 모습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쓸데없다고 생각한 시간 여행은 다시 나에게 가치를 부여받는다.
누구는 로또 번호와 주식 정보로 일확천금을 얻고자 과거를 택했을 수 있다. 또 누구는 맺히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아니면 더 먼 과거로 떠나 존경하는 인물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과거는 존재하기에 과거 여행은 이와 같이 경험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반대로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로 미래 여행은 비교적 덜 구체적인 편이다. 누구는 훗날 오를 주식을 미리 사고 싶어 하고, 누구는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누구와 결혼했는지 궁금해하고, 누구는 나의 죽음에 누가 찾아왔을지 상상한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손쉽게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간다. 기억과 추억과 기록으로 과거를 방문하고 꿈과 공상과 희망으로 미래를 그리면서 말이다.
물론 그대는 시간 여행을 거부할 자격이 있다. 현재의 삶에 온전히 만족해서, 힘겨웠던 과거를 회상하고 싶지 않아서, 미래를 앞서 알고 싶지 않아서 일 수 있다. 혹은 너무 바쁜 나머지 차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지닌 현재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 과거를 이어 남길 수도 있고 새로운 미래를 가꿔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성실히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시간 여행'이라는 공상보다 고차원적인 여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침대에 일어나면서 그 값진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시간을 여행한다면 우리가 여행하는 건 시간일지 공간일지 모르겠다. 만약 현재 2024년에 살고 있는 내가 천 년 전 과거로 돌아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다면, 그것이 꿈이 아닌 이상 그 현실은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된다. 시간을 거슬러 도달한 1024년은 내 기억 속에선 과거이지만 나의 시계는 현재라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시제의 개념으로 여긴 발상이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여행하고 싶은 건 과거와 미래이기에. 그렇게 시간 여행은 현재에서 현재로 떠나는 순간이동이 된다. 그렇게 시간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된다.
가끔은 신이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장난감에게 행복을 줬다가 금세 다시 빼앗아 가 반응을 살피는 놀이. 거기에는 분명 시간도 속해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직하지만 그 모습에 속아 시간을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큰코다친다. 세상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듯이 시간도 내 곁에 남아 영원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에겐 시간을 뒤틀어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초능력도 없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영원히 풀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에 가까울 수도.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시간을 의식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의식하는 도움 없이는 시공간을 독립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라. 그곳의 시간과 공간이 느껴지는가. 눈을 뜨는 순간 나의 밭밑엔 공간이 존재하고 등뒤에선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어쩌면 오늘도 맞이한 아침에 가까울 수도. "그래서 나는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