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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Feb 16. 2024

듣기 싫은 말, 내뱉기 싫은 말

누군가의 한숨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 내쉬는 한숨이 다르다는 것을요. 아무래도 곁에 누가 있다면 깊은 한숨을 맘 편히 내쉴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한숨이 다 같은 한숨이지 깊은 한숨은 뭘까요. 가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습관적으로 한숨을 내뱉는 사람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생각보다 한숨 소리는 주변에서 잘 들리는 거 같아요. 그만큼 세상 살기가 어렵다는 얘기겠죠. 여러분은 반복되고 지겨운 출근길과 정신없이 시달리고 난 퇴근길 중 언제의 한숨이 더 깊으신가요?



   곳곳에서 여러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첫 출근을 앞둔 누군가의 긴장일 수 있고, 주식 차트를 보고 나오는 누군가의 분노일 수 있고,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상대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짜증일 수 있다. 그리고 살면서 제일 많이 듣게 될 나의 한숨 소리일 수 있다. 공간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 소리는 작든 크든 어디서나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다. 사람들이 크게 문제 삼지 않아서이지 만약 실험을 해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 높은 순위에 선정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소리는 매우 날카롭다. 일반적으로 밖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외부에서 한숨을 내쉰다는 것은 나의 한숨 소리를 누군가가 시청할 가능성이 높고, 또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롯된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타인 곁에서 내쉬는 한숨은 불평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에 그 소리는 꽤나 큼직하고 거칠다. 어쩔 땐 몇 마디의 말보다 이 짧은 한숨이 더 강력한 의사 표현으로 쓰일 수 있다. 그만큼 듣는 입장에서는 흠칫하고 거북하다. 원인 제공이 나와 관련되었다면 안절부절못할 것이고, 나 또한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면 그 소리는 거슬리게 들릴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한숨도 있다. 습관적인 한숨과 참다 끝내 내뱉는 한숨. 우리는 전자의 경우를 곁에 있기 싫은 사람의 특성 중 하나로 꼽는다. 이들은 비관적인 것을 넘어서 삶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일반적인 한숨과 달리 큰 논쟁뿐만 아니라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한숨을 내뱉는다. 자기 뜻대로 조금이라도 흘러가지 않는 경향이 보인다면 즉시 한숨을 내뱉음으로써 대화를 단절한다. 이 소리도 꽤나 거북한 편인데 '힘 빠지는 소리'라고 정의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비교하자면 전자에 해당하는 이는 교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세상과의 대화를 차단함으로써 사유하기를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는 아무런 눈치조차 보지 않는다.

   참다 끝내 내뱉은 한숨은 생각보다 소리가 크다. 여기서 생각은 내뱉는 사람의 입장으로 오히려 본인이 더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자와 달리 듣는 이의 눈치를 굉장히 살피는 편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절보다 진보에 가깝고, 상황을 정돈하거나 바로잡는 데 의의가 있다. 앞서 말한 "몇 마디의 말보다 이 짧은 한숨이 더 강력한 의사 표현으로 쓰일 수 있다"에 유관한 상황으로 듣는 입장에서는 꽤나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듣는 이의 경우, 성격이 고집스럽고 포악한 경향이 있기에 이 한숨이 지닌 여러 함축적인 의미를 듣지 못하고 일종의 반란으로 받아들인다. 이것마저 감수하고 내뱉은 한숨에는 무엇보다 절실한 떨림이 살아있다. 이렇게나 절실한 떨림을 받았다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차분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이다.

   소리 없는 한숨을 들어본 적 있는가. 분명 우리는 그 소리를 알고 있다. 고요하면서 묵직한 소리. 이 한숨은 조금 다르다. 이전까지는 대화의 연장선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이지만, 이것은 나의 불편함을 알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고독한 자기반성이, 말 못 할 처절한 비극이, 죽음이 느껴지는 듯한 몸의 고통만이 한적한 한숨을 이끈다. 생각보다 느릿하고 간결하다. 마치 누군가가 한숨이라는 한 편의 곡조를 길게 늘어놓다가 중간 어딘가에서 끊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숨인지 한숨인지 모호한 경계선에서 출발한 공기는 곧 사그라들지만 그 상태로 쭉 이어진다. 곡이 끝남으로써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불행히도 그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한다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하고 나를 잃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숨은 자기방어이자 간절한 도움 요청이고, 비극을 억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다만 오해의 소지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결함이 우선이다. 몇 마디 말 대신 내뱉은 한숨인데 축 늘어져서는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 또한 한숨은 눈물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눈물은 그 자체로 진정성과 고결함을 띠지만, 잦은 눈물은 되려 가식과 미련함을 띤다. 한숨을 언어로 여겨 일상 속 대화에 녹여내는 습관이 있다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중해야 한다. 자주 한숨을 내쉬다 보면 그 소리에 맞춰 어느새 부정적인 사람으로 둔갑해 있을 것이다.

   물론 듣는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사람은 모두 같지 않기에 누군가의 한숨은 꽤나 공격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지 않는 대화는 말 그대로 '대화'가 아니기에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 의도를 알아차리는 데 수월하다. 상대가 대화를 원하는지 단절을 원하는지 판단하고 난 뒤에 그 한숨을 언급해도 늦지 않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한숨의 불쾌한 소리가 아니라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떨림이다. 어쩌면 그 순간은 평생 돌이키고 싶은 골든타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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