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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Feb 09. 2024

그때가 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겠지요

What do you live for?

누구는 오늘 죽었다 좀 전에 그리고 방금도. 그 옆에선 누가 태어났다 좀 전에 그리고 방금도. 이곳은 전쟁터도 병원도 아니다. 내 옆엔 장의사도 의원도 없다. 이곳은 어디인가. 세상 끝 언저리일까, 아니면 이제 막 입구를 지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중간한 어디에 쓸려가고 있는 낙엽인가. 어제와 내일이 마구 뒤섞여 오늘을 헝클어뜨린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죽음을 맞이할까. 그 옆에 태어난 아이에게 잊지 않고 말을 전해야겠다. 그러한데 왜 나의 탄생에는 그의 죽음이 외면했는가. 어째서 내겐 일러주지 않은 것인가. 세상은 보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다만 네 눈은 무엇보다 아름다우니 꼭 간직하라고, 그것이 곧 너의 세상이 될 테니.

-시인 백강민-



   머릿속에 떠오르는 철학자 한 명이 있는가. 쇼펜하우어 또는 니체, 칸트 아무든 좋다. 당신은 당대를 넘어선 그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당신은 현재로부터 몇 백 년이 흐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 21세기보다 아름다운 세상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름답다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도 좋다. 한 명의 철학자로서 나 하나 굶주려도 세상을 세상답게 일궈내자는 사명 하에, 몇 백 년이 흐른 그 시대는 좀 더 나아진 세상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문명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이 이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누구는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지만 고작 몇십 년 전만 해도 인류는 전쟁에 휩싸여 더 큰 혼돈을 겪었고, 그들이 겪었을 고립과 상처는 지금보다 심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되묻는다. 뭐 언젠 살기 좋은 세상이었냐고.

   내가 보는 세상은 이렇다. 약자가 다수이고 강자가 소수인 세상, 동시에 그 소수가 세상을 지배하는 구조. 약자는 서로를 시기하고 강자를 우러러본다, 입에 발린 소리와 함께. 강자는 서로를 돕고 약자를 짓밟는다, 자그마한 당근과 함께. 세상을 그렇게 이용하는 것도 약았지만, 그런 세상에 이용당하는 것도 미련하다. 지금 세상이라고 하면 약자는 서민이고 강자는 부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것은 돈이다. 돈이 곧 세상이라는 헛된 믿음과 그것을 부채질해 주는 지독한 채찍질이 지금에서야 온 세상을 뒤덮었다.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하늘은 오직 '돈'이라는 구름으로 가득 채워진 세상이 되었다.


   돈은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정한 규범 중 하나에 속하므로 돈은 중요하다. 여기서 중요하다는 것은 '돈'이 아니다. 중요한 건 '돈의 가치'이다. 돈의 가치를 알고 배우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깨달음을 얻는 중요한 일이지만, 돈만을 중요하게 여겨 '돈을 많이 갖는 것'에 초점을 놓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분명 이 글에는 개인적인 비난이 일 수 있다. 글쓴이인 나보다 하루가 더 급박한 개인의 경우 '저것이 뭘 안다고 지껄이냐'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은 돈을 많이 벌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그 상황에 최선을 다 해 살아라. 여기까진 누구도 돈의 가치를 배우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돈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준다고 여기는 순간 '부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결코 돈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한다. 돈은 생각보다 싱겁다. 아무리 큰돈을 가졌대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되돌릴 수도 없고, 아팠던 순간을 지울 수 없고, 타인의 진심 어린 존경도 얻을 수도 없다. 나의 하루를 보듬아주는 것은 돈보다도 누군가의 정이다. 누군가의 정을 위해 많은 돈을 가져야겠다는 당신은, 반대로 그 돈이면 그 사람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그 사람은 돈으로 저울질이 되는 정도의 가치인가.


좋다, 알겠다. 실은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좀 더 세상답게 이끌어낼 거라는 인정도 있다. 하지만 나만 그렇다.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세상엔 그렇게 살아가려는 사람과 그 마음을 단념한 사람뿐인 것을. 기개, 낭만, 지조라는 단어는 객기, 허세, 고집이라 불리는 세상이니.


   사람들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유치하게 여긴다. 어떨 땐 장난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가뜩이나 서점, 뉴스, 기사에는 부에 대한 정보가 들끓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삶에도 우리에게 한 번쯤은 낭만이 드리울 때가 있다. 놓친 줄 알았던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나를 기다려주고, 연인이 몰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들고 와서 깜짝 반겨주고,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는 그런 순간. 정말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르다. 저 멀리 뛰어오는 나를 위해 임박한 출근 시간에도 닫히는 문을 기꺼이 열어주는 배려. 유독 일이 안 풀리는 날에 고단했지만 그보다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었을 거라는 공감.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어도 악으로 보답하는 세상에 그럼에도 지나치지 않고 지갑을 주워주는 선행. 이렇게 보면 쉽게 일어날 일이 아닐 것 같지만 앞서 보았듯이 이미 사소한 일이다. 다만 그 대상이 타인이 되었을 때 나는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세상엔 기개와 낭만 그리고 지조를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만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다. 자신의 행동은 모두 힘겹고 대단해 보이지만 타인의 행동은 쉬워 보이기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손주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을 때 한창 어리고 팔팔한 손주에게 세상은 절망이고 어두운 곳이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너의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 될 거라고 일러주고 싶지 않은가. 내가 틀렸기에 지금에서야 미리 너에게 말해주는 것이 아닌, 나의 세상이 정말 그랬기에 그리 말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다. 돈도 좋지만 그보다 너에게 가치 있는 일을 돌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것이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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