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꽝스러운 삶, 충실한 의지
미신 迷信
1.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2. 과학적ㆍ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새해 인사가 참 늦었네요! 벌써 2월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다들 이번 새해에도 평안이 가득하길 바랍니다'라는 소망을 전하려니 괜히 민망하네요. 사실 신년에 맞춰 새로운 덕담을 적어놓긴 했지만, 너무나 형식적인 이야기에 '이걸 읽고 누가 기운이나 받을까'라는 생각에 조용히 넘어갔네요. 4화 주제가 사주에 관한 글이다 보니 서두에 간략하게 적어봤어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2024 갑진년 모두들 부디 평안하고 건강한 나날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밤에 휘파람 불면 뱀 나온다", "이름은 빨간색으로 쓰는 거 아니다", "문지방에 앉으면 복 나간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검색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방 안에 있는 선풍기가 우리의 마지막 밤잠을 장식해 준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각각 그럴듯한 나름의 근거들이 있지만 미신이고 이미 비과학적으로 결론이 난 현상이다. 요즘에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현저히 적어진 것 같다는 체감을 한다. 문명이 발달함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비과학적인 믿음에는 설득력이 약해졌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여전히 미신은 존재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는 수능이라는 시험에 엄청나게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입시에 앞서 지켜야 할 수칙들이 존재한다. 마치 몇 년 전 코로나 예방 수칙과 같이 다들 습관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첫째, 시험 당일에 미역국을 먹으면 해당 시험에 미끄러지기 때문에 절대로 미역국을 먹어선 안 된다. 둘째, 수능 합격 기원 선물로 엿을 선물한다. 끈끈한 엿의 성질을 따라 시험에 붙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평소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언정 시험날 당일에 굳이 미역국을 먹진 않을 것이다. 또는 시합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에게도 확인할 수 있다. 축구경기로 예를 들어, 축구 경기장에 들어설 때 처음 딛는 발에 따라 경기 결과가 바뀐다는 징크스를 세우는 선수들이 있다. 일반인 중에서는 중요한 날에 특정 색깔의 팬티를 착용해야 한다는 징크스가 있는 경우도 있다.
징크스도 결국 비과학적인 믿음이고 미신이다. 자세히 파헤쳐보면 인간으로서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감각을 지녔지만 사유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인간은 사유를 지녀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이지만 비과학적인 믿음을 맹신하기도 한다. 미신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비합리적이고 결국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신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온전히 믿는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미신에 속하는 특정 현상에 대해 이성적인 사고로 '허상'임을 인지해도, 그 현상에 대한 실체를 인정하고 행동으로 잇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란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생명체이자, 가장 덜 멍청한 생명체가 아닐까 싶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미신은 아주 먼 옛날부터 풍습으로 전해져 쌓이고 변하고 생겨나며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미신을 믿는 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만큼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근후 교수님의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서적은 매우 인상 깊은 서문으로 시작되는데, 그중 우리의 삶에 대하여 명쾌한 답을 적어놓은 짧은 구절이 있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만큼 합리적이지 못한 곳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은 고달프지만 우연으로 이어진 사소한 것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다시 보니 우리가 미신을 믿고 징크스를 세우는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쩌면 미신을 맹신하는 것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다. 필연만큼 우연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인간이기에 눈으로 '부정'이라 읽고, 입으로는 '인정'이라 말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평소 미신에 대해 사유할 일이 없어 이제껏 호의적이지도 회의적이지도 아닌 모호한 입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정에 더 가까운 관점을 갖고 있다. 주위 누군가가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비과학인데…'라는 생각만 갖고 있던 정도다. 여전히 미신을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일관한 태도이다. 하지만 너무나 어설픈 우리의 인생을 대입해 보면, 미신을 믿고 행하는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비과학을 신뢰하는 그를 바보라고 여기지 않고 '아! 저 사람은 적어도 삶에 대해 충실하고, 이제껏 살아온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며, 한 때 누구보다 찬란한 순간을 보냈을 것이다'라는 사유가 이어진다. 이것은 동정도 아니고 이해도 아니다. 아마 미신과 유사한 행위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러한 사유가 가능한 것은 그만큼 세상은 비합리적인 곳이기에. 우리 모두 다를 바 없는 인간이기에.
제목에는 사주를 보러 간다고 쓰여있지만 사주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없어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 따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주 또한 미신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인지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보잘것없는 인간으로서 누구보다 충실히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의지가 잘 정리된 것도 '미신'이다. 그대의 삶은 누구도 모르기에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함부로 욕할 자는 없지만, 미신을 믿는다고 함부로 욕할 수 있는 자도 없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사주는 보러 갑니다, 우스꽝스럽지만 누구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