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주민, 회사 상사, 오랜 벗 혹은 나 자신
평상시 누군가 성격을 묻는다면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저 같은 경우 어릴 땐 나를 설명하는 게 쉬웠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어떨 땐 소극적이지만 또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게 함부로 "내가 어떻고 어떠하다"라고 단정 짓는 것 같아 왠지 모를 위기감도 느끼곤 해요. 또 혼자 있을 때와 친구와 있을 때 그리고 남과 있을 때 표현되는 행동이 다 달라서 그중 어떤 성격을 궁금해하는지도 헷갈리곤 하죠. 그래도 타인과의 만남에서 성격을 묻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고 생각해요. 비록 타인의 질문이지만 너무나 바빠진 세상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지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니까요. 그에 대한 답변이 덜 솔직할 순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쌓이다 보면 단단한 자아를 가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성격에 대해 물으면 곧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 이유는 첫째로 여러 성격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말로 서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개인의 성향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경계하고, 성격을 단정 짓는 것을 꺼려하는 특성이 있어 질문을 난처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 착한 것 같다."라는 칭찬을 하면 마치 모욕을 들은 것 마냥 손사래를 치며 세차게 부인한다. 지금 내가 착해 보여도 사실 혼자 있을 땐 그렇지 못할 때가 많고, 누군가 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나를 얽매이게 하기 때문이다.
보통 공적인 공간일수록 더 꾸며지고 정돈된 자아가 표출되기 쉽다. 반대로 사적인 공간에서는 보다 솔직하고 나다운 자아가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여러 자아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크게 나누어 장점과 단점, 선한 성질과 악한 성질로 구분 짓는다. 가끔 누군가가 "선한 성질은 공적인 자리에서, 악한 성질은 사적인 자리에서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적이고 사적인 공간이 인간의 선하고 악한 성질을 이끌어내는 데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마 스스로가 그렇게나 주변에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임에 그런 사고가 가능했을 것이고, 주변 사람에게 친분을 가장한 무례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간의 자아는 하나지만, 그것마저 배움과 깨달음에 변해가는 것처럼 여러 자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틀어 크게 두 가지로 나눴을 때 선한 성질과 대비되는 악한 성질이라는 이면이 있다고 여긴다. 우리 모두의 선한 성질이 특정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정도가 다 다르듯이 이면의 깊이도 다르다. 착한 면이 있어도 나쁜 면이 있을 수 있고, 나쁜 면이 가득해도 착한 면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타인의 이면을 들여다보길 원한다. 인간은 모두 이면이 있고, 그것을 공유해야만 그 사람을 온전히 알고 친해질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근거를 삼는다. 그렇게 타인의 숨겨진 이면을 파헤치고 결국 이면이라는 악한 성질을 드러내게 한다.
앞서 말했듯 선한 성질의 이면은 악한 성질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가 이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악한 성질을 보고 싶어 하고 이끌어내는 것은 참된 벗의 도리인가. 이것 하나로 그 사람에 대해 특정 지을 순 없지만, 추악하고 간사한 사람 중에 더 고도화된 영악한 사람일 경향이 크다. 같은 무리이지만 비교하자면 더 주위에 두어선 안 될 사람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 듯 타인의 숨겨진 이면을 콕콕 찔러 결국엔 타인 스스로 이면을 들추게 하는, 즉 타인의 타락과 불행을 보고 즐거워할 줄 아는 이 시대의 타고난 악마이다. 글로 서술하니 그러한 사람이 벌써 그 자체로 나빠보이지만, 이 정도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같은 사람이다. 단지 뻔뻔한 용기나 친분 또는 명분이 없어서이지 똑같은 추악한 인간이다.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물어 이 시대의 가장 올바르고 본받을만한 유명인 한 명을 꼽자면 '유재석 MC'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이다. 모두가 좋아하고 호감을 느낄 순 없지만 여러 앙케트나 여론을 찾아보면 한국인 대다수가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너무나 비현실적이면서 위험한 가정을 하나 해보겠다. 만일 유재석 님의 이면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과연 사람들은 이것보다 '유재석 님이 새롭게 또 기부했다는 사실'에 더 열광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새로운 기부 소식보다 이면의 소문에 잠잠할 것인가.
우리는 인간 모두에겐 이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막상 타인의 이면이 드러났을 때, 그 사람이 이제껏 수없이 선행을 베풀었어도 이면을 콕 집으며 한순간에 실추시킨다. 마치 그 이면이 드러나길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유명인이고 방송인이고를 떠나서 주위에 누군가의 이면이 드러나면 일단 신나게 씹고 떠들기 바쁘다. 그러한 이면에 대해 생각을 갖고 의견을 나누는 것에는 사람마다 의도와 정도가 다르니 관여할 수 없지만, 적어도 타인의 이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특히 "사람은 모두 이면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 삼아 "그 이면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주위에 이런 인물이 있을 땐 극히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영악하기에 살며시, 아주 조용히 다가온다. 굉장히 무거운 질문을 가벼운 태도로 쉽게 던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