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실체
며칠 전 태백에서 열린 눈꽃축제에 다녀왔어요. 워낙 설경이 절경이라 걷기만 해도 눈이 즐겁더라구요. 유명 건축물이나 영화 주인공을 본 따 만든 눈 조각품들도 생각보다 커서 신기했어요.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사실 볼거리보다 사람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진 찍는 데 복잡했어요. 이럴 때면 맘 편하게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가고 싶어 져요.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데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운 그곳, 당신에게는 당신만 아는 숨겨진 공간이 있나요?
사진은 19세기에 발명되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술이 발전되고 있다. 2000년대만 해도 제대로 된 촬영을 위해선 '카메라'라는 별도의 사진을 찍는 기계가 필요했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핸드폰이라는 소형 전화기를 통해 고화질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집까지도 한 번에 마칠 수 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핸드폰 내의 카메라 기능은 우리를 정말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이상 머릿속으로 현상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었고,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어서 직관적인 도움을 주고, 정보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 핸드폰을 갖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카메라로 사진을 한 번이라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누구나 사진을 찍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원리'보다 '사진을 예쁘게 잘 찍는 법'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진실보다 눈앞에 보이고 펼쳐지는 것에 큰 관심을 두는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강단이 있다. 글자를 알지 못하면서 명언을 따라 익히는 것은 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이는 드물고, 언어와 같이 굳이 촬영 기법과 원리를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보다는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게 어색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등의 이유가 크다.
인정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던 순간이 있었다. 멋모르고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는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특이한 포즈도 취하고 다양한 표정을 하며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나름 좋아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이 쏠려 대체적으로 경직된 사진들이 많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사진을 찍는 횟수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진 찍는 스팟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거나 발랄한 포즈를 취하라고 하면 여전히 사진 촬영을 거부한다. 거기까지는 나의 정신이 타인을 의식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금에 와서야 사진 찍는 게 못할 일도 아니고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게 부럽지 않지만 이전에는 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늘 카메라 앞에서 굳어버리니까 사진 찍는 걸 즐겨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신기해했다. 신기하지 않은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내가 부끄럽다고 여겼지만, 다시 또 카메라 앞에 나서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내가 못나보였기에 친구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기에 나 자신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한 비극이지 않았을까. 여기까지는 자기반성이고 나와 달리 아직까지도 카메라 앞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사정을 알 순 없지만 그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를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촬영이지만 그 순간은 오직 나와 관련된 것이다. 나만의 시간에 타인이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아닌, 내가 직접 타인을 끌어들여와 불편한 시간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바보 같은 짓임에 틀림없다. 물론 소극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사진 스팟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나 자신한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지금 이 공간과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지, 만약 아니라면 그 이유가 타인 때문은 아닌지 말이다. 타인에 의해 자신이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놓친다면 역시 미련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묻는 편이 후회도 덜하고 '의지와 행동'에도 올바른 사고이다. 물론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곳에서 이러한 사유가 이루어지는 것은 사유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타인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해도 비난해선 안 된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린아이 보다 못한 사고방식이다. 강요도 해선 안 된다. 억지로 요구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초등학생과 견줄만할 사고방식이다. 이연 작가님이 집필한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책 제목과 같이 두려움을 깨부수어야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깨달음은 스스로가 깨우쳐야 한다. 타인에 의해 떨쳐낸 두려움은 결코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타인으로서 누군가의 두려움을 깨부수어주는 것 또한 진정 가르침이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는 사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 찍는 행위는 권유한다. 감명을 느낀 장소와 현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의 나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면 사유는 깊이 있게 이뤄질 수 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때의 옷차림은 어땠는지, 누구와 함께 왔는지 등과 더불어 보다 나에게 집중된 사유를 할 수 있게 된다. 독후감은 줄거리 요약본이 아니라 책을 읽고 들었던 나의 생각을 남기는 곳이고, 일기는 몇 시 몇 분에 기상하고 밥을 먹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는 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기보다 사진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 더 쉬워진 오늘에 사진과 함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