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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날엔떡국 Feb 14. 2024

봄을 준비하는 태도

사랑이라는 약

화요일이 다 지나가는데도 글이 올라오지 않아 기다리신 분이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어느 누가 제 연재글을 기다리겠냐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혼자서라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어땠나요. 오늘은 겨울임에도 날씨가 참 따뜻했습니다. 사실 봄에 더 가까운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오늘은 참 바빴습니다. 덧붙이자면 바쁘게 놀았습니다. 중간중간 어떻게 써보자라는 결심은 결국 실패로 남아 이렇게 늦은 시간이 돼서야 글을 올립니다. 글을 연재하는 분들 모두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어쩌면 '봄을 준비하는 태도'의 본문과 얽혀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봄을 단단히 준비해야겠습니다. 7화 연재에 있어 늦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어느덧 이월의 중순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은 2월 초라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을 만큼 아직 세상의 옷차림은 그리 가볍지 않다. 그래도 봄은 찾아온다. 삼월에도 겨울이 있듯이 오늘은 추운 나날 중 가장 따뜻한 날이지 않을까 싶다. 봄은 생각보다 요란하다. 한동안 추위에 움츠려든 세상을 확 깨어 놀라게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티를 내며 봄이 찾아왔음을 각인시킨다. 햇살이 따스해지고, 땅이 푸릇해지고, 하늘이 경쾌해진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꽃들은 하나하나 단장을 하고, 동물들은 나른한 오후를 즐긴다. 봄과 함께 모두가 바삐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보통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을 보러 밖을 나선다. 여기에는 꽃구경이라는 단어가 찰떡이다. 이름도 모를 꽃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피어나는지 그 꽃에 대해 탐구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어떤 꽃들이 예쁘게 잘 폈는지 한번 둘러보는 것이다. 꽃이라는 한 생명보다 꽃이 풍기는 그 향기에 더 매료되는 계절. 그래서 사람들은 봄에 쉽게 사랑에 빠지나 보다. 길거리엔 새로운 사람들이 피어나고, 스쳐 지나간 찰나는 굉장히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함부로 기만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할 준비가 된 사람에 한해서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은 거리로 나갈 명분이 넘쳐나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약이다. 약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약은 아무나 제조할 수 없고 함부로 복용해서도 안된다. 사랑을 접해본 경험이 적을수록 그 약은 까다롭다. 약의 복용이 까다롭다는 것은 건강을 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랑을 주는 것도 서툴러 누군가에게 잘못된 약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약에는 정해진 제조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적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사랑을 능숙하게 하는 법"과 비슷한 문구로 마치 사랑에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수많은 이혼 변호사는 진작에 연애 컨설턴트라는 직업으로 갈아타지 않았을까 싶다.

   간혹 누구는 자랑스럽게 여태껏 사랑에 데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가 아닌 그런 슬프고 아픈 사랑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이런 말은 실연으로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연애를 했지만 사랑에 좌절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의심이 따른다. 하다못해 잘생기고 매력적인 걸로 유명한 연예인들도 실연하며 사랑에 아파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세상인데 그런 면에서 1차적으로 사고에 장애가 발생한다. 그리고 사랑은 확률 게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이라는 확률 게임에 유리한 사람인 것 마냥 그로 인한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를 좋아할 거라 여기는 것은 말 그대로 착각이다. 이제껏 모든 상황에 그랬다면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바로 당신은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 모두가 사랑에 좌절을 느끼며 아픔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건 사랑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에 비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이것은 사회 현상에 따른 하나의 유행과 갈등의 결과로 비칠 수 있고, 경험에 의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사유의 잘못된 예인 정치적인 이야기를 빼놓는다면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인해 사랑에 선입견을 세운다. 지인의 실연 소식을 전해 들으며 혹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극적인 사랑을 하며 다시는 사랑 같은 걸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보통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죽을 때까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진심이 아니지만 결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주변에는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이 많이 숨어있다. 그중 누구는 "너는 왜 연애를 안 해?"라는 질문을 쉽게도 던진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을 이미 비정상으로 여기고, '연애를 해야 된다'라는 강제적인 메시지를 순수한 의문으로 포장하여 짐을 짊어준다. 통상 질문을 하기 전에는 생각을 하고 물어보는 게 순서고 예의인데, 과연 물어보기 전에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런 무례한 사람에 대해서는 의도가 무엇인지 되묻는 게 효과적이다. "무슨 답을 듣고 싶은데?" 연애를 안 하는 것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고지식한 사람은 정작 그 입장에 대해서는 고민한 적이 없기에 당황할 것이다. 의도가 그 사람을 위해서 한 말이더라도 "어떠한 연유로 사랑에 벽을 쌓았는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유가 어찌 됐든 "밖에도 나가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며 사랑을 해야 된다"라는 강제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


   누군가를 꼭 사랑해야 할까. 삶에 있어서 사랑은 필수적인가.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나도 모두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순 없다. 누군가는 사랑을 놓치고 좌절하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사랑을 포기하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사랑에 등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 모두를 돌보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그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데 감히 누군가를 꼭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사랑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입장임에도, 이 글은 꽤나 사랑에 비관적인 태도가 담겼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약과 같기에 '효능과 효과'보다는 '복용 시 주의사항'에 대해 유심히 다뤄야 건강한 복용으로 이뤄질 수 있다. 단순히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건강한 사랑을 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봄을 준비하는 태도는 겨울을 대비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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