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성을 나타내는 언어
다들 안녕하신가요, 설날엔떡국입니다. 어느덧 이번 화로⎡사유의 사유⎦기획의 반을 연재했네요. 웹툰과 같이 작가가 되어 요일마다 연재를 한다는 것에 '설렘 반' 그리고 한두 명쯤 "사유의 사유"를 기대하시는 독자분이 있을 거라는 믿음에 '걱정 반'으로 꽤나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간 거 같습니다. 시작은 '철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의지로 힘차게 출발했는데, 그보다는 모두가 철학에 친근함을 느끼고 우리 삶에 밀접한 일상을 사유하는 시간으로 방향을 이끌어 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도전은 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이곳을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유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어쩔 땐 잘못된 글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괴롭기도 합니다. 철학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과는 결이 다르기에 오답을 말해도 그것이 쉽게 티 나지 않기에 그런가 봅니다. 발행 끝에 수십 번의 교정을 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가끔은 그 후에도 문득문득 아쉬움이 생기곤 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사유의 사유"를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기에 부끄럼을 시인하고 더욱 정진하겠다는 자아 성찰에 속하겠지요. 이런, 서두가 참 길었네요. 오늘도 모두 무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날엔떡국-
세상은 셋으로 나뉜다. 유행을 좇는 자, 유행을 거부하는 자, 유행을 앞서는 자. 그대는 여기 중에 어디에 속하는가. 혹은 어디에 속하길 원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좇는 자"에 속할 것이고, "유행에 앞서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만일 그대는 둘 다 속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다. 유행은 돌고 돌기에 원치 않아도 언젠가 유행이 그대를 뒤좇을 수도 있고, 또 그 물결에 휩쓸려 다수에 뒤섞일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유행이 빨라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새로운 것이 짠하고 나타나고 또 금방 잊힌다. 새로 생겨나는 것을 '변화'라고 하고 그것이 유행하는 것을 '적응'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잊히는 것 또한 '변화'이다. 유행은 새로운 유행으로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이 빨라졌다는 말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기술, 예술, 음식, 취미와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빈번한 변화가 일고 있다. 몇 가지는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분명 살아가는데 직접 체감을 해봤을 것이다.
먼저 살펴볼 유행은 우리의 일상에 가장 크게 와닿을 식문화의 유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꽤나 핫한 키워드였던 '오마카세'를 생각해 보자. 본래의 뜻과는 조금 다르게 한국식으로 문화가 정착되었는데 정의해 보자면 "한 끼 식사를 하기엔 비싼 가격이지만 높은 퀄리티와 서비스를 기대하여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대접받는 코스요리"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주 고객층은 2-30대 성인으로 형편이 여의찮은 젊은 사람들도 한 번쯤 체험해 본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소비에 응한다. 오죽하면 오마카세 예약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스강신청"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이다. 이뿐 아니라 "로제"와 "마라"의 지배, "탕후루"와 "베이글"의 열풍도 있다. 한국 식문화의 유행은 폭이 좁지만 그 상품성은 굉장히 깊다. 그래도 식문화의 유행은 새로 생겨나고 유행하는 것이 어렵지 한 번 유행한 문화는 인기가 사그라들어도 그 대중성을 쉽게 잃지 않는다.
다음은 취미이다. 앞서 언급한 "오마카세"와 매우 관련된 취미가 마찬가지로 작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건 바로 부자들의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다. SNS를 보면 한때 골프장에서 인증샷을 남겨 게시글이나 스토리로 올리는 것까지 하나의 유행으로 흥했던 시기가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점이 있는데 '골프의 대중화'와 'SNS 업로드'이다. 우선 골프라는 스포츠는 2-30대가 즐기기엔 여러 장벽이 있었는데, 취미 비용이 비싸다는 점과 정서에 맞지 않다는 점이 있다. 운 좋게도 골프는 SNS를 통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는데 거기엔 과시와 허세 문화가 있었다. 골프의 취미 비용이 비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SNS에서 자신을 자랑할 직관적인 취미로 골프를 세웠고, 골프는 SNS의 흐름을 타고 금세 유행한 것이다. 취미의 유행은 폭이 넓으면서도 깊이가 깊은 편이다. 이전에는 '요리', '맛집', '힐링'이 있었고 최근에는 '여행'이 있다. 각각의 테마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핫한 키워드가 아니라도 그들만의 세계에는 다채로움이 있다. 음악을 예로 들면 '힙합', '트로트', '인디 밴드' 등 이에 따른 대중적인 흐름이 있지만 유행에 벗어났다고 해도 잔잔하게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패션은 나같이 트렌드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계이다. 패션도 옷에만 국한되지 않고 헤어스타일, 신발, 향수, 액세서리, 아이템 등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사실 옷에서 상의만 해도 벌써 셔츠, 티셔츠, 맨투맨 티, 니트, 조끼, 목 폴라 정도가 생각나는데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여기서 겉옷, 하의, 양말, 내의를 더하고 각각의 소재, 색깔, 스타일, 기장을 구분하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선택지가 쌓이는데 이런 곳에서도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을 볼 때면 정말 감각이 있다고 느껴진다. 유행에 나뉘는 세 명의 특성이 잘 나타는 분야가 바로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감각적이면서 깔끔한 패션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어디서 몇 번 봤던 패션으로 '어! 저 옷...'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오로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사하여 '개성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안타까운 건 한국에서는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 칭찬도 자주 하지만 참견도 서슴없기에 마치 패션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새로운 변화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개성 있는 패션보다는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가고 심지어는 유행을 따르는 것조차 큰 변화로 여겨 무난하고 평범한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최근에 'Y2K 패션'이라는 과감하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재유행하면서 패션을 비롯하여 자신을 어필하고 표현하는 것에 자신감을 갖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패션의 유행은 민감하면서도 유연하기에 흐름이 굉장히 빠른 편이지만 그만큼 유행에 대한 관심도는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아무리 한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도 유행을 쥐락펴락할 수는 없다. 유행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앞서는 식견과 함께 운 적인 요소도 갖춰져야 한다. 예를 들면 꽤 오랜 시간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COVID-19가 잦아들 때쯤 사람들은 이미 지쳤고 자연스럽게 '힐링'이라는 테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코로나가 거의 종식될 때쯤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어찌 보면 유행에는 필연보다 우연이 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짚어야 할 건 그 우연이 무엇일지 추측하는 것보다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언제 흐름이 바뀌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유행에 뒤처진다고 해서 인생을 헛되게 산다고 할 수 없지만, 만약 그대가 유행을 앞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것이 그대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행을 선도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건 그것이 남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선두로 따르는 일이 될 것이다.
누구는 유행이라는 단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유행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좋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아쉽게도 유행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이라고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주관적인 가치 판단과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이라는 복잡한 관점이 존재하기에 따로 다루지는 않겠다. 어찌 됐든 좋은 유행과 나쁜 유행은 분명 구분된다.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뉴스와 기사 곳곳에서 '마약'이 유행한다는 소식을 이따금 접했다. 특히나 청소년 사이에서 마약이 성행한다는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 나쁜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가수로 활동하며 최근 유튜브를 통해 인기가 급상승한 브라이언 님의 청결 전파는 사회적으로 청소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물론 유행이라고 하기엔 파장이 옅지만 유튜브와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에게 청결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심어준다는 점에서 과정도 의미 있는 좋은 유행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유행은 흐름에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유행이 되는 것이고, 그 말은 유행을 선도하는 자는 결국엔 내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유행은 곧 시대의 지성을 나타내는 언어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지성인인 것을 망각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