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e to my family
최근에 본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란 드라마가 참 좋았다.
한 장면 장면 모두 소중했지만 특히 속을 후벼 팠던 scene이 있었다.
아슬아슬 서로가 그어온 선을 비집고 난폭하게 딸의 삶으로 침투해온 엄마 난희에게 완이가 덤비던 scene.
나, 엄마 꺼 아니라고 (나이 사십이 돼서 나, 엄마 꺼 아니라고. 아이고 너도 참) 근데 엄마 때문에 망했으니 책임지라고. 잔뜩 취한 완이가 날이 퍼렇게 선 눈을 치켜뜨고 자해까지 해가면서 지랄해대는데,
나는 부엌에서 갈치에 소금 뿌리고 있다가 느닷없이 어억- 울음 터졌다. 맨살 드러난 마음에 소금 뿌려진 듯 따끔따끔 아팠다.
스무 해쯤 전, 똑같은 모습으로 아버지께 덤볐던 내가 화면에 있었다.
다 아빠 때문이라고 바락바락 도끼눈을 뜨고 빳빳해진 나. 내가 아프니 기어코 당신도 아프게 하겠다고 패악을 떨던 나. 당신이 제일 아픈 건 내가 아픈 거니까, 내가 나를 아프게 하겠다고 미친 짐승이 되어 날뛰었던, 어리고 슬픈 나.
그리고 난희가 완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내 아버지도 그냥 나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아빠가 미안해. 그러니까 이러지 마. 이러지 마. 아빠가 대신 유리에 베일께. 그러니까 울지 마.
내일 새벽 비행기로 부모님은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나신다.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시며 두고 오신 꿈- 사랑하는 아내와 이 곳을 다시 오겠다는 소망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으러 가신다.
건강히 잘 다녀오시란 전화를 드리고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스무 해가 지나자 독기는 흐물거리고 슬픔은 날이 무뎌졌다.
상처받은 짐승 같던 불완전한 당신을 나는 벌써 아홉 살에 알아챘는데, 당신의 등만 봐도 이미 열여섯에 눈물이 났었는데,
느닷없이 스무 살, 왜 나는 스스로 상처받은 짐승이 되어서까지 당신이란 산을 꾸역꾸역 오르려 했을까.
그때의 열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다로 첫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 첫 관문이 아버지였던 이유는 아마도,
아빠가 거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도 아빠가 거기 있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새가 깨고 나오는 첫 알은 항상 부모여야 할까.
그건 뒤뚱뒤뚱 첫걸음을 떼는 아이를 가장 지척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항상 자식의 가장 서툰 발걸음에 가장 무참히 밟힌다. 그도 모자라 호~해달라 우는 자식에게 정신없이 달려가 바싹 당겨 안고,
아빠가 미안해.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촉수가 하나 더 달려있는 것 같은 아들을 본다. 다시 스무 해가 지나면 걔도 나 같이 짐승의 시간을 지나겠지. 생각한다. 그때 그 아이가 독이 바짝바짝 오른 눈과 혀로,
난 엄마 꺼가 아니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책임져요, 엄마가 싫어요, 내가 싫어요, 아파요, 무서워요, 모르겠어요, 엄마, 나는 누구예요, 물어볼 때,
나는 내 아버지가 그러셨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태산같이 그 애를 억세게 안고,
온 세상이 무너지듯, 엄마가 미안해.
용기 내어 말해줄 수 있을까.
근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을까.
아빠는 닻이다.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고모들께도 삼촌께도 돌아가신 할머니께도 아버지는, 늘 요동하지 않고 답답하고 당연하고 그래서 의지하는,
긴 여행 끝난 밤 결국 돌아와 별을 올려다보는 자리, 닻이다.
근데 아버지의 닻은 무엇이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여쭤 봐야겠다 생각하다가.... 불현듯 답을 알 것만 같다.
- 우리 수진이가 태어났을 때 딱 아빠 팔뚝만 했는데,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따뜻한 물을 세숫대야에 뎁혀와 방에서 조심조심 목욕을 시켰지. 혹시라도 요 조그만 게 떨어질까. 미끄러질까 조마조마했지. 근데 그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어깨 툭툭)
- 자식은 항상 새로워. 아빠는 아직도 너희가 매번 새롭고, 또 예쁘고. (손 조물조물)
아빠의 닻은 나다.
짐승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멋쩍은 아침이 돌아온다.
쭈뼛쭈뼛 어색하다가, -차 마실래? 아니 늦었어. 빨리 인생에 가봐야지. 하다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지난밤, 짐승이 되어 뒹군 상처에 서로 반창고를 붙여준다.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모르는 척 튕겨도 좋다. 못 이기는 척 씨익- 한번 웃으며
고마워요. 말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