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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Feb 20. 2021

“Music of The Spheres”

‘떨림과 울림’ 김상욱 作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화엄경)


“ 이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
“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 (떨림과 울림, 본문 중)



떨림과 울림이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화엄경의 인다라 망 예화를 떠올리며 이 책이 범상치 않은 과학책일 것이라 기대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고 유시민 교수님의 추천사처럼 ‘다정하게’ 물리를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울렸다.


우주와 존재를 연구하면서 저자가 받은 감명과 떨림. 그 개인적 떨림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 그곳이 깊은 울림이 시작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 울림은 너무 시끄럽지도 뜨겁지도 않고, 다정하다.

텅 빈 시공간을 넘어 문과 감성의 ‘과알못’에게까지 그 다정한 울림이 전해진 이유는, 아마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의 진정성이 서로에게 닿아 공명했기 때문 아닐까.

‘알쓸신잡’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대중에게 알려진 김상욱 교수는 양자물리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떨림과 울림’이란 책을 통해서 김상욱 교수님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리학이라는 딱딱한 학문의 전체적인 개요를 ‘다정하게’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결국 이 학문을 통하여 여러 물리학자가 알고자 했던 것이 결국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것은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던,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에 잘 드러난다.

“이 찰나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 존재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그것의 대답을 우리가 만약 알아낸다면 그건 신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신학과 과학의 간극을 넘어, 인문학과 과학의 교차점을 지나, 양자역학과 동양철학이 만나는 곳까지 저자의 감성적인 과학 설명을 들으며 함께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우주의 대서사와 존재의 반짝임이 만나는 곳에 시(詩)가 피어난다. 어려운 공식을 외워내느라 머리 터지면서 물리에서 멀어진 나는 어느새 과학동아와 4차원의 미스테리를 신나게 읽으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다.

책의 1부에서는 혼돈에서 태어난 빅뱅, 빛, 원자, 전자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탄생을 다루고, 2부에서는 그 생명의 터,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다룬다.  칸트가 말한 선험적인 틀로서의 시공간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로 이해되는 움직이고 팽창하는 시공간으로 어떻게 우리의 인식이 바뀌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피어오른다.  

3부에서는 그러한 생명이, 시공간에서 서로 어떻게 관계하고 경합하며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고 공간으로 진행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4부에서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것이 함께 떨리고 울리는 우주, 그 경이로운 에너지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학적인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한 책에 다루고 있느라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아쉬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리와 친하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종종 책을 덮고, 공상과 상상에 잠겼다. 그 공상이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는 걸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고, 나른한 상상이 철학적 사색으로 이어지는 것도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인 ‘Arrival’ (컨택트)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의 내용이 언급되는 장이 반가웠다. 나아갈 미래를 알지만, 그 미래를 ‘현현’ 하기 위해 현실을 살 때, 그 존재의 이유로 남는 것은 과정의 충실함과 진정성이 담긴 태도이다.
깜깜한 무지의 어둠을 뚫고 울림으로 빛으로 전해지는 마음. 과학은 태도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 태도란 마음이고 시선일 것이라는 속삭임을 듣는다. 굳이 과학뿐일까. 문학에서, 역사에서, 건축에서, 정치에서, 관계에서, 결국엔 태도가 남는다. 그 태도는 결국 나인 것, 내가 아닌 것에 대한, 모든 것이 혼재하고 함께 움직이는 이 거대한 우주에 대한 사랑이다.



(제목으로 쓰인 “Music of The Spheres”는 필립 스파크 Philip Sparke가 피타고라스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명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수성 · 금성 · 지구 · 달 · 화성 · 목성과 태양이 일정한 간격에 있으며 각각 고유의 소리를 내며 화음을 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것을 'Music of the Spheres'(우주의 음악)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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