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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라제 Jul 04. 2020

(역사 속 잔혹동화) 푸른 수염 질드레

오브라제의 예쁜공포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역사 속 잔혹 공포> 특집, 자세히 보시고 싶으시면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그동안 올린 괴담 중에서도 잔혹한 내용이 있었는데, 지난번 히무로 저택 이야기는 해당 그림도 있고 해서 그런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이런 고어 같은 내용을 그만할까... 하였지만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주신 분들도 계시고, 요즘같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스산한 공포를 느낄 겸 다시 한번 더 써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이 그저 괴담이 아닌 실제 인물이 모티브가 된 이야기이자, 잔혹동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푸른 수염”입니다.


과연, 푸른 수염에게는 무슨 잔혹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 시작하기 전에 알려드립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나 어린이 분들께서는  읽기를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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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은 여행을 떠나기 전, 열쇠 꾸러미를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내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지, 다른 방의 문들은 모두 열어도 상관이 없지만 절대 저 쪽의 작은 방은 열면 안 돼, 알겠지?”



그 말을 남기고 푸른 수염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홀로 텅 빈 성에 남은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절대 열지 말라는 방이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그러다 결국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아내는 열쇠를 들고 작은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까아아아악...!!!!!!!”



문을 열어보니, 바닥과 벽은 피로 흥건했으며, 천장에는 푸른 수염의 전 부인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놀란 아내는 열쇠를 떨어트렸고, 그것을 바로 줍고는 방에서 뛰쳐나와 열쇠에 묻은 피를 닦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때, 푸른 수염은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열쇠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내는 우물쭈물하며 피가 묻은 열쇠를 건네며 용서를 구했는데...



알고 보니, 푸른 수염의 전부 인 들 모두 열지 말라고 했던 방을 열었다는 이유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푸른 수염은 약속을 어긴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전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죽이려고 했지만, 아내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고, 푸른 수염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허락을 합니다.


그 사이 아내의 오빠와 남동생이 와서 푸른 수염을 죽이고 자신의 누이를 구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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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입니다.


그런데, 푸른 수염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존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그 인물은 프랑스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끔찍한 살인마로 유명한 “질더래”입니다.


그는 세계 최악의 연쇄살인마 중 하나라는 불명예도 얻게되었는데, 과연 그에게 무슨일이 있었고,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1404년 프랑스 샹토세에서 태어난 그는, 막대한 부를 가진 집안의 장남이자, 한 번만 보아도 인상이 남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는 물론, 라틴어와 예술에 능했고 특히 무예에 특출이나 귀족사회에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모든 걸 가진 금수저 이군요.)


결혼을 한 후, 16살의 나이로 전쟁에 참여를 하게 되는데 브레통 전투, 뤼드 성 전투에서 그의 활약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죠,


그리고 바로 *백년전쟁에 참여를 하여, 프랑스의 성녀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잔다르크를 만나게 됩니다.



(*백년전쟁 : 영국 왕가와 프랑스 왕가의 계승권 싸움을 시작으로 (1337~1453년) 116년 동안 벌어진 전쟁. / 샤를 4세가 아들 없이 사망을 하자, 그의 유언대로 필리프 6세가 즉위를 하지만, 영국으로 시집을 갔던 샤를 4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가 자신의 아들이자 영국의 왕인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두 개의 파가 싸우고 있었는데, 첫 번째 파는 왕세자였던 샤를 7세를 왕위에 올리는 것이고, 두 번째 파는 왕세자의 출생 문제를 핑계 삼아 자리에서 쫓아내고 공주였던 카트린(훗날 헨리 5세의 왕비)을 영국으로 시집보내 영국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파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왕권 싸움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거의 100년간 피 터지게 싸워 죄 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본 것이죠.


왕비와 파리 법원까지 왕세자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자, 왕세자는 점점 코너로 몰리게 되고 영국의 왕위 계승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을 때,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듯이, 잔다르크가 나타나게 됩니다.


어린 소녀였던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고 왔다며 왕세자에게 충성과 승리를 약속했고, 영국군에게 계속 포위되어있던 오를레앙 (당시 왕세자기 머무르고 있던 지역)에 선두를 서서 병사들을 지휘한 결과, 영국군을 격파해 승리로 이끌었고 이덕에 왕세자는 무사히 왕위에 오릅니다.


잔다르크의 부하로서 옆에서 계속 지켜보던 질드레는 어린 소녀에게 나올 수 없는 위엄 있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고, 그녀에게 존경심과 연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이후에도 계속 승승장구를 하게 되는데, 원래부터 막대한 재산과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25세의 나이에 프랑스 원수 (군 계급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꺼번에 삽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왕이 된 샤를 7세와 그를 따르던 귀족들은 백성들이 잔다르크를 성녀, 승리의 여신으로 떠받들자 자신들의 은인임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했고, 점점 전쟁에 대한 의견 충돌이 심해지자 왕은 그녀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했죠,


후에 영국이 다시 프랑스를 쳐들어왔을 때, 잔다르크가 나서게 되지만 부족한 지원과 도움으로 인해 결국 패배를 합니다.


그리고 영국과 동맹관계였던 *부르고뉴 군사들이 잔다르크를 붙잡아 영국에게 팔아버렸고, 샤를 7세는 이를 외면해 버립니다. (완전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죠.)


(*부르고뉴 : 프랑스의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보르도와 마찬가지로 와인 생산지로 유명.)


잔다르크는 7번의 재판을 받지만, 이단과 마녀로 몰려 화형을 집행받습니다.

아무래도 신분 낮은 어린 계집이 나댔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그때,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19살이었습니다.

 


질드레는 프랑스를 위해 싸운 그녀가 추앙받기는 커녕, 화형을 선고받고 조국에게 외면당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합니다.


당연히 그의 분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죠,


그녀에게 품은 연심은 그 이상이었는지, 잔다르크를 구해주지 않은 신을 증오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평생 가지고 있던 신앙조차 버립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흑마술에 빠지게 되는데, (어디에서는 잔다르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라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완전히 미쳐버린 질드레의 악행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데요.


흑마술로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귀여운 정도이고, 어린 소년들을 시종을 시켜 몰래 데려와 목욕을 시킨 후 화장과 가발을 씌우고, 비싼 드레스와 장신구로 여장을 하게 한 다음,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법한 호화로운 음식들을 먹인 후, 지하실로 데려갑니다.


지하실로 데려올 수 있는 선택 기준이 오로지 어린 소년들이었다고 해요.


그곳에서 소년들의 배를 갈라 심장, 내장, 남자의 중요부위 등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을 하면서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즐겼고, 숨이 겨우 붙어있는 너덜너덜한 상태의 어린 소년들을 강간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게 되면,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체들의 목을 잘라 걸어두고 누가 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고르거나, 사지를 토막 내는 것은 물론, 기분에 따라 목을 조르던가, 강목 같은 것으로 신체를 부러트리거나 도끼로 자르고는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들로 악마에게 바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즈음에 질 드레가 사는 성에서 괴물이 산다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성당에 군사를 이끌고 성직자를 납치해 갔다는 명목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성 내부를 확인한 결과, 지하실에서 40여 구의 시체가 발견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남색, 아동 강간, 이단, 신성모독 등의 죄명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승자들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정말 신빙성이 있을까?라는 의문과 카더라 ~라는 여러 소문에 의해 질드레는 누명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잔다르크가 죽고 몇 년 후, 질드레는 은퇴를 하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왕족 보다도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던 질드레의 재산이 탐 이난 브리타니 공작이 그와 적대적이었던 주교와 힘을 합쳐질 드레를 서서히 조여갔고,


결국 질드레는 브리 공작의 동생이 신부로 있던 성당에 군사를 이끌고 가서 “ 땅에 브리타니 공작이 함부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니, 당장 취소하게 하라!”라고 하자,


그들은 증인을 모아, 흑마술, 아동 강간, 신성 모욕 등으로 고발을 하였습니다.


질드레는 수하들과 함께 잡혀가게 되는데,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결국 거짓자백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그럼 그의 몰수된 재산은 누구에게 갔을까?

악독한 범죄자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억울한 죄든 거짓으로라도 자백과 참회를 하고 죽으면 자손들에게 넘겨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질드레는 전자인지 후자인지 모르겠지만, 자백과 참회를 하고 화형을 당했기 때문에 무사히 자손들에게 상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질드레는 잔다르크를 외쳤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내용이 갈리는 것이 옛날 자료에서는 화형을 당했다고 나오지만 최근 자료에서는 교수형을 먼저 집행한 후, 시체를 토막을 내서 불태웠다고 나옵니다.)


후에, 샤를 7세는 영국과 평화 협정을 맺어 전쟁을 완전히 끝내게 되고, 프랑스에서 영국을 몰아내면서 백성들에게 승리의 왕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1456 잔다르크의 명예를 회복을 시키죠. (전쟁 당시 샤를 7세는 평화를 지향했고, 잔다르크는 영국군을 완전히 무찔러야 한다는 생각 차이로 갈등이 심했어서 (질투뿐만 아니라 여러 갈등이 겹쳐) 결국은 그녀를 버렸지만, 잔다르크가 죽은 , 영국이 또다시 쳐들어 오자,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엇갈린 운명이죠.)


하지만 반대로 질드레의 명예는 영원히 회복을 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까지도 그의 행적에는 많은 의구심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질드레가 누명을 쓴 것이라면 샤를 7세 때, 왕과 나라를 지킨 영웅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간 것이었겠네요,


그 시대에 살았어도 본인들 외에는 몰랐을 진실들, 여러분들은 질드레가 극악무도한 살인마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래 내려보시면, 쿠키영상이 아닌 쿠키 글이 남아있습니다.)













여담으로, 샤를 7세는 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14명의 자식들과 여러 첩들을 두어 행복하게 살았는데, 후에 왕권강화와 군사력을 키우고 나라의 재정을 튼튼하게 만드는 성군의 모습도 보여주어, 그렇게 행복한 삶을 마무리했을 것 같지만...


아들이었던 루이 11세(당시 왕세자)는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이죠, (아빠의 정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키고 결혼도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등)



샤를 7세가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에, 온몸에 세균이 감염이 되어 나중에는 입이 헐어버리는 상태까지 되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결국 굶어 죽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 11세는 아버지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는 정말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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