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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라제 May 19. 2021

프랑스오라두르쉬르글란,잊어서는안 되는역사의 기록

오브라제의예쁜공포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브라제 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사건”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시절과 많이 닮아 있어서 많은 분들께 분노와 울림이 함께 느껴지실 것이라 생각이 되네요.


듣기 전에, 먼저 마음을 가다듬어주시고, 준비가 되셨다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944년 6월 10일, 프랑스 중부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오라두르쉬르글란’에 독일군이 들이닥치기 시작합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중이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였지만... 그래도... 전쟁이란 두 글자로 인해 죄 없는 많은 민간인들이 이유 없이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곳, 오라두르쉬르글란도 마찬가지였죠.


마을을 포위한 독일군들은, 남자들은 헛간에 가두어 무자비하게 총살을 한 후, 그곳에 수류탄을 터트렸고, 여자와 아이들은 성당에 가둔 후, 불태워 죽였습니다. 끔찍한 것은,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다리를 일부러 쏴서 도망을 못 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죽였다고 합니다. (다리를 맞았어도 팔로 기어서라도 그곳을 나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독일군들이 놔둘 리 만무했죠.)


그곳에는 오라두르쉬르글란 사람뿐만 아니라, 잠시 들린 다른 마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예외가 없었습니다. 모든 학살이 끝난 후에는 다이너마이트로 마을 전체를 폭파시키고는 유유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독일군들이 오라두르쉬르글란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죠. 이 사건으로 인해 약 642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남자 190명, 여자 245명, 어린아이들 207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당시 생존자 6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훗날, 끔찍했던 그 날을 회상하면서, ‘독일군들은 우리를 가둔 후, 웃고 떠들고 있었다.’, ‘독일군이 사격을 할 때, 사람들은 모두 울부짖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너무 끔찍했다.’, ‘시체들 사이에 묻혀, 죽은 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하였죠. (당시 독일군이 마을을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 미리 도망친 사람들이 20명가량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는 부모들이 마을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자녀들을 몰래 마을에서 나가게 하는 등의 이유로 도망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귀환을 하고 있었던 레이몬드 머피 중위는 폭파된 직후의 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처참한 마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바로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갓난아이의 시체가 십자가에 못이 박혀 있었을 정도로 그곳의 상황은 매우 처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오라두르쉬르글란 근처에서 주둔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프랑스 *레지스탕스(제2차 세계대전 점령국에 맞서 저항하는 조직&단체)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장교가 납치되는 일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에 난입해서 사람들을 학살했던 것이죠.



1953년, 전쟁이 모두 끝나고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전범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당시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잔혹한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이 약 200명이나 되었지만, 대부분 전쟁 중에 사망을 하거나, 실종이 되었고,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들은 동독에 사는 사람들이라 (당시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눠진 분단국가였기 때문에) 처벌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거르고 걸러, 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중 다수가 알자스 지방 출신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독일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서 (강제징집을 당해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어쩔 수 없이 학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11년 형을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재판 결과에 대해 알자스 지방이 거센 비판을 하자, 결국 그들은 모두 사면이 되었고 나머지 소수의 독일인들만 10년 정도 징역을 살게 됩니다. (훗날에 동독에서도 재판을 열어 죄의 대가를 받게 하지만... 이들 중에서 평생 잘 먹고 잘 산 사람도 있습니다....)


[*전범재판 : 전쟁을 하나의 범죄로 규정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 ~ 1948년 사이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거행된 재판이다. - 지식백과 참고]


프랑스는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당시 폭파되고 불태워진 모습을 건들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두었고, 대신 그 근처에 똑같은 이름의 마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마을에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존된 마을 앞에는 “기억하라!”라는 문구의 간판이 붙여져 있는데, 이 글귀는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유명 관광지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을 하고 있지만 어두워지면 왠지 모를 형체가 떠돌아다닌다는 목격담과 소문으로 인해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로도 유명해서, 세계 3대 유령도시 중 하나로 불립니다. ( 1.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티(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피해를 받은 곳으로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 됨), 2. 군함도 (일본명으로는 하시마섬으로 불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장소 중 하나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라두르쉬르글란 입니다. )


하지만 이곳은 또 다른 이유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독일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때문이었습니다. 2013년 9월 4일, 프랑스와 독일이 맺은 *엘리제 조약이 5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위해 방문을 하였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 그리고 학살 생존자였던 로베르 에브라와 함께 오라두르쉬르글란에 들러 추모를 한 뒤, ‘이 마을에서 자행된 범죄는 독일이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독일인들은 이곳에 오기가 힘들다.’, ‘나치가 저지른 범죄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살인자들이 심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통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라며 생존자분께 직접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과, 나치 잔재를 완전히 도려내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엘리제 조약 : 옛날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프랑스와 독일이 1963년 맺은 우호조약, 두 나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을 통해 새 시대를 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리의 엘리제 궁에서 맺어졌기 때문에 ‘엘리제 조약’이라고 부른다. - 지식백과 참고]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은 프랑스 오라두르쉬르글란 뿐만 아니라 체코와 이탈리아, 칠레, 콜로니아 등에 직접 방문을 하여 사과를 하였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하이코 마스 외교부 장관 또한 나치 학살이 된 장소를 직접 찾아가 각각, ‘야만적인 범죄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치에 대한 독일의 책임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깊은 사죄를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자행했던 ‘제암리 학살사건’을 떠올립니다. 프랑스의 오라두르쉬르글란 사건과 매우 비슷하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을 하자면, 경기도 화성시 항남면에서 일어났던 집단학살 사건으로, 일본군들이 만세 운동이 있었던 제암리에 와서, 우리가 만세운동에 대한 대처가 너무 과했다며 이 일을 사과를 하러 왔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모두 차단한 뒤, 밖에서 창문을 통해 무자비하게 사격을 한 후, 불을 질렀고, 탈출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칼로 베거나 총살을 하였던 정말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유튜브를 검색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에 대한 영상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과거의 행동은 비슷했으나, 현재의 행동은 전혀 다른 두 나라의 모습이 너무 씁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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