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기- 일상을 새롭게 느끼는 첫 단추
처음 방문한 압구정 엘리제레 갤러리.
색채 & 표현방식에서 눈을 사로잡는 유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제임스 고스(James Goss)라는 작가로, 자연 속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함께 놓아둔 형형색색의 꽃이 예뻤던 갤러리 입구
예약제로 진행되어 다음 전시 때에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본격 시작되는 고스의 자연 속 메들리
실제로 꽃을 들여다보면 꽃잎 하나하나에 섬세한 결이 있다. 고스는 그 결을 놓치지 않고 선명한 붓질로 표현했다. 문득, 맞아 꽃잎을 볼 때 그 결이 참 예뻤는데. 하고 회상했다.
부록의 설명이 큰 도움이 되기에 옮겨 적어본다.
제임스 고스(James Goss)는 어린 시절부터 잔디 한 올, 꽃 한 송이, 그림 한 점까지 유난히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꽃의 중심을 처음으로 응시하며 그 안에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거나, 잎사귀 뒷면에 얽힌 정교한 능선과 골짜기의 지도를 찾아내는 느낌은 흔하진 않아도 익숙한 경험이다. 아마도 고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그가 결코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았고, 자연이 일상 속에서 펼쳐 보이는 기적 같은 풍경들을 향한 경이와 놀라움을 결코 무디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Gates of Paradise에 전시된 여덟 점의 그림이 다루는 주제, 범위, 그리고 규모가 모두 증명해 준다. “제가 충분히 집중하고 마음을 열면, 자연과 제 사이에 대화가 시작됩니다.”라고 고스는 말한다. “그러면 저는 마치 어떤 통로처럼 되어버려요.”
호수에 비친 아침해? 가 예쁘다. 달빛인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꽃들을 공통적으로 저 비정형 시리얼(?) 같은 모양으로 그린 게 참 귀엽다.
나무가 마치 고구마 같다.
작품에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코드가 명확하다.
긴 점을 찍어 생동감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
저 노란 불 켜진 집에서 조용히 일출 일몰을 바라보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부록의 설명을 더하자면,
지난 40년간 애디론댁(Adirondacks) 지역에서 거주하고 작업해 온 고스에게, 인근 챔플레인 호(Lake Champlain)에서 보트를 띄우거나 집 앞 정원을 가꾸는 일은 캔버스 위에 오일을 바르는 과정 못지않게 중요한 예술적 실천이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야외를 관찰하고 그 풍경을 온전히 흡수한 후에야, 비로소 머릿속에 형상과 감정, 색채가 나타나고 그것을 물감으로 옮겨 담는다. 주변 초원에 피어 있는 백일홍(zinnia)의 꽃잎 하나하나나, 풀잎 한 가닥 한 가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그는 ‘자세히 들여다본 경험’을 그릴뿐이지, ‘자세히 들여다본 대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본 경험’을 그린다는 것이 인상 깊다. 대상을 자세히 보며 자신의 방식으로 흡수한 뒤 재해석해내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예술이 탄생한다.
주황색-코발트파란색의 조화가 압권
꽃술 부분의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도 예쁘다.
자작나무들은 유화물감으로 마치 조각하듯 거칠게
표현되어 그림 속에서 나와있는 것 같은 입체감을 띤다.
꽃, 산, 나무, 풀 각각에 기하학적 도형의 모습을 부여한 제임스 고스.
그는 산이든 나무든, 그 복잡함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면서도 동시에 놀랍도록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거듭 나타나는 기본 기하학적 도형들—유기적 곡선의 원, 타원, 삼각형, 줄무늬, 별 등—을 섬, 호수, 꽃, 나무를 묘사하는 데 활용하여 표현된다. 낮이든 밤이든, 어느 시간대나 계절이 바뀌어도 이 영속적인 형태들은 각 장면에서 변함없이 유지된다.
고스는 이것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결국 지평선도 선 하나일 뿐.
물감을 사용한 방식도 개성 있다.
마치 유화물감을 거칠게 조각하듯 밀어내고 긁어 발라, 대상의 테두리와 표현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사진처럼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유화 자체의 물질성으로 디테일을 구현한다.
고스는 두껍게 짜낸 많은 양의 유화를 조각하고, 쌓고, 깎고, 겹쳐 바르고, 변형함으로써 꽃잎의 물결무늬나 풀밭의 풍성함, 모래사장의 거친 질감을 재현한다.
느릅나무줄기에 새겨진 마디와 홈을 들여다보면, 마치 손바닥 아래 비늘처럼 갈라진 나무껍질을 실제로 느끼는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준다.
눈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듯한 입체감 또한.
언밸런스한 듯 완벽한 밸런스의 구도가 편안함을 준다.
일상을 들여다보면 새롭게 느끼는 아름다움이 많다는 것을 느낀 전시.
디지털에 익숙해지면서 핸드폰 화면밖의 무언가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대상의 고유한 아름다움도 놓치기 쉬워진 세상이다.
나날이 더 빠르게, 간단하게 를 외치는 세상이지만 멈춤-들여다보기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이 있기에 잔잔하고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되새길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