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계유산
스물두 살, 미국 동부로 교비연수를 가 있는 동안 그토록 꿈꾸던 맨해튼을 시간 될 때마다 누비며 지냈다. 그리고 미국을 떠나기 얼마 안 남았던 때, 나는 친구와 서부 여행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LA, 라스베이거스로 이어지는 8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아침부터 공항으로 가기 위한 택시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8일간의 여행을 잘 해냈고 즐거운 추억을 푸짐하게도 만들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컴퓨터로만 인터넷이 되던 시절, 20대 초반의 우리가 자유여행을 그렇게나 즐겁게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특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때는 다 그랬고, 칭찬받을 만큼 큰일이라고 당연히 생각 안 했지만.
롬바드 스트리트, 골든게이트 공원, 금문교, 피어 39 등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관광지를 거쳐 우리는 LA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 말리부에 갔다. 한국에서도 가장 친했던 친구와 미국을 함께 갔었고, 왠지 친구와 있을 때면 더 느긋해지는 나와 상대적으로 더 꼼꼼해지는 친구는 환상의 짝꿍이 되어 여기저기 재밌게도 다녔다.
서부여행에서 가장 꿈같았던 시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시간이다. 이유는 너무나도 피곤한 상태로 저녁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지만, 잠들기엔 아까워서 그야말로 졸면서 화려한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새벽 4-5시쯤 깨어나는, 말 그대로 몽롱한 스케줄을 보냈기 때문이다.
화려한 벨라지오 호텔 분수도 꿈에서 본 마냥 흔들흔들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우리가 그렇게 타이트한 스케줄로 라스베이거스로 간 이유는 바로 그랜드캐년을 가기 위함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우리는 며칠 전 전화로 예약한 그랜드캐년 투어를 위해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
처음 보는 경비행기에도 무서움이라고는 없고 설렘과 호기심만 가득했던 20대 초반이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협곡이라 불리는 그랜드캐년을 보면서 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랜드캐년은 ‘그랜드캐년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라는 이름으로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랜드캐년은 깊이가 약 1,500 미터가 되는 협곡이고, 수평 단층은 20억 년 전 과거의 지질학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시공간으로 온전히 전해주는 대자연을 봤다는 사실이 지금도 잘 믿기지가 않는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가혹한 환경에 적응해 온 역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수백, 수십 종의 동식물이 확인되는 곳.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곳이 왜 유네스코 유산이 되었는지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랜드캐년은 그랜드캐년이었고, 우리는 오감으로 그곳을 경험했다.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 중간에 잠시 내려 간단한 점심을 먹는 시간이 있었다. 협곡을 직접 밟으며 점심을 먹는다니, 지금 생각해 봐도 황홀해진다. 딱 점심을 먹으려던 때 친구는 쌍코피가 터졌고, 사실 우리에게 그랜드캐년은 오래도록 그 순간으로 남아있었다. 눈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던 햇살과 무슨 일이 생겨도 계속 깔깔거리던 우리의 모습.
20억 년의 역사를 가진 그랜드캐년에 우리의 청춘 한 층도 진하게 새겨놓고 왔다.
오늘의 한 조각
- 유산명: 그랜드캐년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
- 분류: 세계유산
- 국가: 미국
- 등재연도: 19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