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도시, 마음을 녹이는 차 한 잔

내가 만난 무형유산

by 진한홍차

12년 전 겨울, 아제르바이잔 출장을 준비하며 마음이 여러모로 추웠다.


우선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가 너무 낯설어서 몇 년 전 방영되었던 ‘걸어서 세계 속으로-아제르바이잔 편’을 부러 찾아보며 그 나라는 어떻게 생겼고 사람들은 무엇을 먹는지 공부를 하였다. (검은 석유로 목욕을 하는 낯선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얼어붙었던 거 같다.)


또한 직항 편이 없어서 튀르키예를 경유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이 점도 새로 오신 기관장을 모시고 출장을 가야 하는 아직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는 긴장의 한 요소였다.


준비 단계부터 빨리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모습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온 옛 소련 국가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었다. 회색의 도시.


신호등 불이 켜지면 신호등에서 도로를 향해 길게 뻗은 구조물에 신호등과 같은 색의 불이 들어오는데, 회색 도시와 그 불빛의 조화가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신호등 모습이라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어째서인지 핸드폰에 이 출장 기간 사진이라고는 신호등 사진밖에 안 남아있다.)


신기한 신호등이 있는 길거리를 지나서는 어서 빨리 숙소에 가서 따뜻한 물에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도착한 숙소에서는 바람소리에 창문이 계속 덜컹거렸다. 과연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피곤함이 귀찮음을 이기리라 생각하고 그냥 지내보겠다고 다짐을 하였으나, 점차 심해지는 소리에 나는 데스크에 연락을 하였다. 수리공 아저씨가 와서 창문을 고쳐주려고 하였으나 결국 잘 되지 않아 방을 바꾸게 되었다. 다행히 바꾼 방은 괜찮았다.




출장 전부터 얼어있던 내 마음은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차 녹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기관장님은 여행 출발 때부터 나의 큰 캐리어를 끌어주시기도 하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려고 하셨고, 모든 행동과 말씀에 배려가 묻어 나왔다. 작은 행동에도 응원을 해주시며 따뜻하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낯선 나라의 문화를 짧게나마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올드타운과 길 모퉁이에서 봤던 아름다운 카펫, 그리고 차 문화.


식사 후마다 마셨던 아제르바이잔의 홍차는 서양의 배(pear)와 같은 모양으로 독특하게 생긴 찻잔에 담겨 나왔다. 독특한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시면서 내 마음도 바쿠에 점차 스며들었다.




2022년에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의 ‘정체성, 환대, 사회적 상호작용의 상징인 차(Çay) 문화(Culture of Çay (tea), a symbol of identity, hospitality and social interaction)’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주로 홍차를 수확하고 소비하는 두 나라에서, 차 문화는 각 계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며 강력한 문화적 정체성을 제공한다. 그리고 전 세계 공통이겠지만 차 문화는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환대와 축하의 의미를 나타낸다.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문화로 지정되었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차 문화의 힘을 경험하고 퍼뜨릴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의 도시에서, 낯선 마음을 안아주고 녹이는 차 한 잔의 힘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따뜻한 배려와 환대로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한 조각

- 유산명: 정체성, 환대, 사회적 상호작용의 상징인 차(Çay) 문화(Culture of Çay (tea), a symbol of identity, hospitality and social interaction)

- 분류: 무형유산

- 국가: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 등재연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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