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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나도록 매운 떡볶이 그리고 나

by 오리세상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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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르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 떡볶이를 찾는다. 혀 끝에 닿는 순간부터 화끈하게 퍼지는 매운맛. 처음엔 그저 알싸하다 싶더니, 점점 입안이 타오르기 시작하며 혀가 저릿저릿해지고, 이내 숨이 가빠진다. 입을 벌려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릿속까지 뜨거운 열기가 휘감는다. 그때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직 이 매운맛, 이 불타는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남은 건 얼얼한 혀와 땀방울뿐이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매운 떡볶이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원래 나는 학교 앞에서 팔던 달달한 떡볶이를 더 좋아했다. 방과 후 친구들과 분식집에 들러 꾸덕꾸덕한 양념이 밴 떡볶이를 먹는 게 일상이었다. 단골 가게도 있었고, 그곳이 사라졌을 땐 친구들과 메신저 대화창에서 한참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매운맛에 길들여지다

하지만 떡볶이의 매운맛도 나이를 먹는 것처럼 내게 익숙해진 걸까? 학창시절에는 달달한 양념이 가득한 떡볶이를 지겹도록 찾아 먹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매운 떡볶이만을 찾았다. 그리고 그 짜릿한 매운맛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먹을 때마다 고통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그 묘한 감각. 혀가 얼얼하고, 땀이 흐르고, 속이 뜨거워지는데도 이상하게 멈출 수 없다. 마치 고통과 해방이 한데 뒤섞인 기묘한 의식처럼. 어느새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자연스럽게 매운 떡볶이를 찾고 있었다.


나만의 떡볶이, 나만의 의식

특히 여러 매운 떡볶이 중에서도 나는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그냥 맛있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나만의 의식과도 같은 과정이다. 쌓인 스트레스와 답답한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떡국떡을 꺼내고, 청양고춧가루와 베트남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눈을 찌르는 매운 향이 퍼지면, 마치 내 안의 울분까지 함께 끓어오르는 기분이 든다. 토핑도 중요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깻잎과 소시지만큼은 절대 빠뜨릴 수 없다. 깻잎이 뜨거운 국물 위에서 사르르 숨이 죽어가고, 소시지의 기름이 퍼져 국물에 스며들 때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내 안의 불안과 짜증도 함께 끓어올랐다가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리고 마지막 한입까지 매운 국물을 떠먹고 나면, 땀과 함께 모든 답답함이 흘러내린다. 떡볶이는 그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나에게 쌓인 불행과 스트레스를 태워버리는 강렬한 의식이다.


나의 스트레스와 함께 끓어오른 떡볶이

나의 이 떡볶이는 언제나 내 스트레스와 함께했다. 취업에 실패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던 날에도,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싸우고 등을 돌렸던 날에도, 이 떡볶이는 내 곁에 있었다. 뜨거운 국물을 한입 삼킬 때마다 눈물이 나올 만큼 매웠지만, 오히려 그 매운맛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쩌면 이러한 스트레스들을 핑계 삼아 이 떡볶이를 끓여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떤가. 이 떡볶이를 먹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확실한 위로를 받으니깐 말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떡볶이는 나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과 함께했고, 나의 감정을 불태우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부정한 기운을 씻어내듯 뜨거운 국물을 떠먹고, 매운맛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이면, 복잡한 생각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떡볶이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매운맛이 내 안의 답답함을 밀어내고,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속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나는 이러한 피곤한 감정들을 핑계로 이 떡볶이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거라고.. 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기쁜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떡볶이를 끓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더 이상 짜증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뜨겁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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