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의 공기를 걷는 당신에게
이 도시를 걷다 보면 문득 그런 기분이 든다. 누군가의 자취가 이 거리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느낌.
쏟아지는 햇빛이 오래된 건물 위로 쏟아지고, 어디든 쉬어갈 의자들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의자에 잠시 앉아 누군가가 숨을 고르고 간 것 같은 풍경.
그것은 아마 마리아 루이자의 시간일 것이다.
그녀는 1791년, 오스트리아 황궁에서 태어났다.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왕가의 공주였고, 평화롭지만 철저히 짜인 삶을 살 운명이었다. 그러나 18살이 되던 해, 그녀의 삶은 유럽 전체를 폭풍처럼 휘감으며 등장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의 정략결혼으로 궤도를 틀었다.
전 유럽이 지켜보는 체스판 위에서 이루어진 이 결혼에서 그녀는 그 한복판의 말이 되었다. 화려한 황후의 자리에 앉았지만, 마음은 늘 고요한 창밖의 정원을 그리워 했을까. 몇 년 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빈회의에서 파르마공국을 할당받은 그녀는 파리의 궁전을 떠나 자신만의 작은 왕국, 파르마로 향했다.
파르마에서 다시 태어나다
파르마는 그녀에게 그저 망명지가 아니라, 자신을 찾는 여정으로서의 자유가 시작 된 그런 도시였다.
황실의 그림자를 벗고, 여공작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이 도시에서 그려나갔다.
병원을 세우고, 오페라 극장을 짓고, 공공 정원을 시민들에게 열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도시의 거리는 정갈하게 정비되었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도서관이 들어섰다.
그녀는 화려함보다 질서와 따뜻함, 권위보다 섬세한 손길을 선택했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녀를 ‘통치자’라기보다 ‘도시의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그녀가 무엇보다도 예술과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가 세운 Teatro Regio di Parma는 오늘날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꼽히고 매년 가을 즈음 열리는 베르디 페스티벌은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대한 축제이다.
그녀의 손길은 이 도시의 건축, 정원, 거리 곳곳에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대칭을 중시하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선과 색감. 그것이 곧 파르마 스타일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우아했고, 드레스는 파스텔 톤이 많았다.
단아한 번 헤어에 리본을 묶고, 보석 하나에도 한 시대의 감정을 담았다.
그녀의 미는 화려한 과시가 아닌, 오히려 그것으로서 다가가고 조용히 마음을 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파르마에서 그녀는 또 다른 운명과 마주쳤다.
오스트리아의 장교였고, 그녀의 경호원이자 연인이었던 아담 알베르트 폰 네이페르크와 공식적인 혼인은 아니었지만 두사람은 함께 했고 그 사랑은 진실했고 조용했다. 두 아이를 낳았고, 전보다 훨씬 더 평온한 얼굴로 도시를 걸었다.
사람들은 황후의 과거보다, 그녀의 현재를 더 아름답게 기억했다.
정치가 아닌 온기로, 장식이 아닌 향기로 남은 여인.
마리아 루이자.
황제의 아내였고, 전쟁의 희생자였으며, 무엇보다 이 도시, 파르마의 가장 인간적인 통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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