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해볼까?
마지막 글이 언제 끊겼나 보니 벌써 1년이 지났다.
하나하나 다 적어 놓지 못한 1년의 시간 속에는 취업, 결혼, 죽음, 이별, 사직서, 입학, 이 말고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내 기억력을 너무 믿고 있는 탓일까? 게으른 탓일까?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한다고 착각을 했던 걸까?
다시 되짚어보고 싶은 순간도 한가득, 잊지 말아야 할 순간도 한가득. 하지만 그 순간들을 복기해 볼 수 있는 아무것도 나는 남겨 놓지 않았다. 노트 위에 가득히 쓰여진 이야기는 내 눈에만 보이는 투명한 글자일 뿐. 그 누구도 읽을 수 없고, 그래서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위로와, 공감과, 공유를 바라고 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내 욕심임을.
구차한 변명을 둘러대보면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감정에 함몰되었던 지난날에 쓴 글들을 다 없애고 새로이 써 내려가고 싶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표현도, 스토리도 지금에서 되짚어보면 보이질 않는다. 이런 걸 글이라고 공개적인 곳에 올려두었나? 수치심만 올라온다.
그래서 무턱대고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글 쓰고 싶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늘 입에 달고 사는 "살 빼야지. 살 뺄 거야."라는 말처럼.
그렇게 의미 없는 반복과 그 반복으로 인한 후회로 가득 찬 일상 속에서 내 꿈이 사람으로 태어난 마냥 신기한 작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사뿐사뿐 한 없이 가녀린 몸, 당차고 의욕 가득한 마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부지런함, 똑똑하고 깊고 당당한 그런 사람.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다 어울리는 그런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푸념에 "언니 좋은데? 쓰면 되지!"라며 조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용기를 주고 싶어 하는 귀여운 미소를 건네는 나보다 8살이나 어린 작가. 그리고 마치 그 위로를 조금이라도 건네고 싶었다는 마냥 그녀가 보내준 그녀의 신간은 제목부터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기록하는 태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 나의 형편없는 솜씨가 부끄러워 시작하지 못했던 걸 이 작가는 건넸다. 뭐라도 주고 싶어 동료 작가의 글도 함께 건넨다는 짧지만 마음 가득한 메시지와 함께.
"잘 받았어. 고마워."라고 쉽게 고마움을 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내가 조금이라도 다시 한번 써 내려가는 모습을 그녀가 본다면, 작가로서 훨씬 더 뿌듯하지 않을까? 이렇게나마 에둘러 내 마음을 전할 겸. 정리할 겸. 용기를 내 볼 겸. 다시 '기록'을 시작해 본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참 소소한 순간에 스스로를 많이 돌보았구나. 제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들어준 사람이라 내 이야기도 그렇게 잘 들어주었구나. 이 사람은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모든 작은 순간들이 백사장을 이루어 인생을 꽉 채우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이 어린 작가가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얇은 책장 틈으로 흘끗 본 반짝반짝 빛나는 어린 별의 삶은 참 예쁘다.
언젠가 그 언젠가 내 작은 로망이 작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써내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다시 한번 꿈을 꿔보란 듯 나에게 용기를 준다.
흘러가버린, 놓쳐버린 순간을 억지로 멋들어지게 표현치 못하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에 숨지 말고 다시 한번 기록해 보려 한다.
논문과 기사 속에 파묻혀 저 멀리멀리 멀어져 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책에 괜스레 오늘은 감성이 말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