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Dec 16. 2020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삶의 철학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면

흔히들 내게 종교(나의 경우 가톨릭)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리와는 '틀린' 대답을 내놓았다.


나에게 하느님은 현존하는 양심이고 종교는 그것을 지켜주는 도구이다. '구원'을 기반으로 '영원한 삶'을 위함입니다라는 뻔한 답을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신이 정말 사랑을 행하는 조물주라면 정말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자를 지옥에 떨어뜨리고, 영원한 고통을 주는 존재라면 이미 사탄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결국 삶에 철학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사견을 내밀어본다.

철학(Phiilosophy)은 사랑(Philo)과 지혜(Sophia) 다. 종종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철학이 나의 '옹고집'으로 치부될 때가 많으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복잡하지만 진심이라면 심플한 면도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찾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피터 싱어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철학을 지향하는 삶을 칭찬해주고 있다.


한참 일로 인해 부정을 저지르기도 하고, 미움을 하기도 하고 여러 고통을 받을 때 '잘하고 있단다. 착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란다. 착한 게 바보라고 말하는 저들이 바보란다.'라고 용기를 주었던 책이 바로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불의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라고 답했습니다, (중략)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독자 중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저 책을 읽을 시기 즈음 바로 '네이처 리퍼블릭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커다란 이야기를 펼쳐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회장의 변호인단을 두고 동료와 갑론을박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나라면 "더러운 일 할 바에 큰돈 벌어 뭘 하나."라는 게 나의 의견이었고, 다른 이들은 "이래서 종교를 가지면 안 돼. 나라면 몇십 억 받고 일 년 감방 살이 하는 게 낫지."라는 주장을 펼쳤다.


남보다 부자가 되는 것, 전보다 부자가 되는 것 말고 어떤 삶의 목표가 있을까요?

     (본문 중에서)


나의 경우 5년 반 동안 세후 200만 원이 안 되는 월급으로 일을 하면서 그 행복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작가의 말대로 경제적·사회적 기대로 틀 지워진 인생행로를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다시 말해서, 기본 욕구가 일단 충족되면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도 만족감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본문 인용)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빠듯하게 예비자금을 모으고,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옮기고,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나에게 피터 싱어는 글로 속삭이는 듯했다. 잘하고 있다고.


그런 그의 말을 노래 가사로 대신하며 다시 나를 다잡아 본다.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
<두 손, 너에게> 스웨덴 세탁소 (feat. 최백호)
매거진의 이전글 Thank you my pe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