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마음이 아프면 빨리 오세요. 여기는 정신의학과 병원입니다.

by 아나스타시아

*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과 제시가 많은 것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니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의사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
여기는 소아과 병원입니다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로 글을 시작하자면,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나 상담 클리닉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한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문은 활짝 열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들어서는 마음의 진입장벽은 높기만 하다.


만약 내가 사고를 냈던 6월 바로 트라우마를 치료받았다면 지금의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심리상담과 정신의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글을 보면서 혹시나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장벽을 넘어 어디든 찾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이 모든 감정이 내 정신상태가 나약해 빠졌기 때문에 남들처럼 툭툭 털지도 못하고 징징 짜는 못난 사람이라고 내 가슴에 스스로 못을 박고 있었다. 그리곤 내 나름의 '정신 수행'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요즘 도처에 널린 '힐링 에세이'도 읽어보고,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내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 책들을 읽어댔다. 지독한 불면증에 '수면과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내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유튜브도 보고 팟캐스트도 듣고, 내 종교로 이겨 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통하지 않았다. 나를 고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픈 환자'고, 의사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을 맞아 아픈 사람에게 "네 정신력이 약해서 그것도 하나 못 버티는 거야!"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는가? 나는 트라우마 에피소드로 신경계가 아프고,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흘러나오는 아픈 사람이다.


뇌과학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고 심리의 세계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복잡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의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하나는 나를 잘 알고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나를 도닥여 줄 수 있는 나의 사람들. (가족도 좋고 친구도 좋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제 3자, 위로와 조언도 좋지만 자신의 아픔을 바라보고 대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


나에겐 사고가 있었던 뒤 8개월 뒤에야 찾았던 심리상담사 선생님이 그런 경우였다. 다 나은 줄만 알았던 나는 해외출장 이후 급속도로 다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하지만 대다수의 상담 클리닉은 너무 비싸고, 내가 병원 문을 바로 두드릴 수준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가톨릭 주보 뒷면에 나와있는 심리센터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는 그 순간까지만 해도 혹시나 내가 회사에 아프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때 이렇게 심리상담도 받았다고 증명서나 받을 요량으로, 상담이래 봤자 친구들한테 털어놓는 것처럼 내 얘기나 쏟고 오는 걸 텐데 무슨 큰 효과가 있을까 하며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15주간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10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만, 나의 경우 상태가 썩 좋지 못해 5주를 연장하고 후에는 병원 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권장받았다. (상담 선생님 조차 MMPI* 결과를 보고도 어떻게든 상담으로만 나를 치료하려고 노력을 하셨었다. 하지만 결국 슈퍼바이저 수녀님과의 상의를 통해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고 내원을 제안하셨다.)


제 3자와의 상담은 기대치 않은 효과를 발휘했다. 지금 나의 상태를 듣고 그에 대한 의견을 다시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내 상태를 공유하는 과정. 또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 이리하라, 저리 하라 그 어떤 조언이 아닌 나에게 거울을 비춰주며 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어떨 땐 가까운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약물로만 컨트롤이 안될 때는 '상담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다가 이내 남은 통장 잔고를 보면서 그 마음을 접는다. 그리고 다행히 상담을 어느 정도 병행해주시는 주치의 선생님 덕분에 그 부담이 많이 줄었다.)


10회의 상담이 마무리되고, 5회의 추가 상담을 말씀하시며 상담사 선생님은 정신의학과 방문을 권하셨다. 사실 상담이 2 개월 가량 지속되면서 스스로 많이 나아졌는데 굳이 가야 할까 라는 의구심을 안고 전 굳이 올 필요가 없는데 상담 클리닉에서 내원을 해보라고 했다며 으쓱거리며 병원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오만함은 곧 온몸에서 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 MMPI

미네소타 인성검사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미네소타 대학의 해서웨이(Hathaway)와 맥킨리(Mckinley)가 임상진단용으로 만든 성격검사. 이 성격검사는 임상 척도와 타당성 척도로 구성되어 있다. 임상 척도에는 심기증(心氣症)·우울증·히스테리·정신병질·남, 여 향성·편집증(偏執症)·정신 쇠약증·조현증(정신분열증)·경조증·사회적 내향성이라는 열 개의 하위 검사가 있고, 타당성 척도에는 허구 점수·신뢰점수·수검 태도 점수(受檢態度點數)를 측정할 수 있는 세 개의 하위 검사가 있다. 또한 MMPI는 그것이 갖고 있는 566개의 문항을 이용하여 자아강도·의존성·지배성·공격성 등을 비롯한 300여 개의 성격특성과 태도를 측정할 수 있는 하위 척도가 개발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면적 인성검사 [多面的人性檢査, MMPI] (교육학용어사전, 1995. 6. 29.,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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