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왜 자꾸 찾아와 날 괴롭히는 건지, 지울만하면

by 아나스타시아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장 고마웠던 건 나의 클라이언트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인가 싶어 인사도 없이 (또 그럴 정신도 없이) 떠나온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들, 문자들. T 모 매체의 J기자님, B기자, E 모 매체의 A, S매체의 C, 타 부처 사무관님, 팀장님, 서기관님... 나열할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수고했다고 해주시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지금도 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너무나 많지만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이제 와서 괜히?'라는 마음에 망설여진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어차피 못 믿을 사람들. 어차피 그저 스쳐갈 인연들.


한땐 믿었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면 그 사람이 설령 나를 싫어하는 마음도, 아니면 좋아하는 마음도 진심으로 나에게 답해준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가슴이 찢어지도록, 뼈가 부서지도록 내 몸에 새겨진 것을 이젠 더 이상 되돌릴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진심은 여전히 '감사하고, 그립다.'


그런 추억 되새김질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조직은 내가 나오고 나서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죄송한데, 처리를 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퇴직금이 정산이 안돼서.... 다음 달 초에나 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하필이면 다른 일에 대해 조금씩 나아가 보려 하던 그 찰나 다시 나를 망치는 연락이 전 회사에서 왔다.

마음속으로는 대답했다. '공무원이면 잘 아시지 않나요? 2주 안에 지급 안되면 이거 법적으로 문제 생기는 거.'


하지만 이번에도 내 대답은 yes였다. 1호선 서울역 퇴근시간. 바글바글한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내게 이러쿵저러쿵 떠들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더 웃긴 것은 그 시기에 함께 퇴사 처리가 된 두 사람 (일명 내가 '가려던'팀으로 옮기게 된 사람)들은 전혀 그런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것. 결국 잊고 살던 유기인 문제가 남았다는 것을 부랴부랴 알아챈 것.


If라는 가정법이 참 쓸모없다는 걸 알지만, 만일 내가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돈이 통장에 단 한 푼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매주 가는 병원비며 솔찬히 나가는 생활비. 어쩌면 '퇴사 후 생활고의 압박으로 뉴스에 날 수도 있었겠는데?'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초 여름 나와 그곳의 인연은 완전히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며칠 전, 다시 한번 잿가루로 변해버린 내 마음에 기름을 부어 다시 타들어가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nana.jpg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날아든 문자. 7개월 전 일을 왜 퇴사자에게 연락해서 물으시는지? 같은 팀에 아직 계신 것 같은데 3월엔 뭐하고 계셨는지?


나는 당신 때문에 하극상을 한 나쁜 사람이 되었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면서 업무가 과중되어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가 '시키는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나가는 그 날까지 인사 한 마디 없다가 반년 뒤에 왜 뜬금없이 내가 처리해놓은 일을 감시하는 건가? 왜?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문서대장에서 내가 작성해놓은걸 복사 붙여 넣기라도 하려고?


반년 전 퇴사한 사람한테 저따위 연락에 대답이라도 받았으면 '고맙다'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 패스인가?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분노가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날 어김없이 공황발작이 왔다.


'왜 이들은 잊을만하면 나를 찾아와 괴롭히는 것인가? 대체 얼마나 더해야 속이 후련할까?


"당신들은 내가 사직서를 던지던 날, 벼랑 끝에서 내 몸을 던진 기분이었다는 걸 알기는 하나? 퇴직하신 부모님께는 제대로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건강보험료가 날아왔다는 소식으로 못난 제가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버렸습니다."라고 울어야 했던 심정을 알까?


오리온, 20대 직원 극단적 선택에 "회사와 직접 연관성 없어" (2020.5.21 연합뉴스)
오리온 여직원의 극단선택…유명무실한 ‘직장 괴롭힘 금지법’ (2020.5.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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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접한 오리온 직원은 갑질로 인한 자살사건을 보면서, 그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아는 하찮은 나의 기도라도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화살기도를 바쳤다.

'수고 많았어 어린 친구야. 오죽했으면 그 어린 게 그랬을까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 와중에 겁이 많아 죽지 못하는 나는, 자살이 죄악이라 죽지 못하는 나는 계속 눈 앞에 생생히 나의 죽음이 보였다.


'내 몸에 날 괴롭게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세종청사 앞에서 손목이라도 잘라야 내가 괴롭다는 걸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라는 상세 하면서도, 구체적이고 끔찍한 상상을 애써 약으로 눌러달래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리고 너무 죽고 싶은데, 내가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이상한 마음을 반복하며 지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죽는다고 눈 하나 깜짝하냐고, 청와대든, 그곳이든. 왜 언니가 죽어 아깝게 시리."


그렇다. 내가 죽는다고 그 조직이 달라질 것은 하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건 뭘까? 보상? 사과? 복수?

아직도 그에 대한 대답은 내리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더더욱 아까운 일이 될 듯하다. 명분 없는 불가촉천민의 죽음에 애도의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질까?


원래 그 사람은 심리적 질환을 오랜 기간 앓고 있었고,
우리는 유급 병가와 15일 치의 급여를 더 지급하며 위로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며, 이미 반년 전 퇴사한 직원으로 우리와는 무관하다…


안 봐도 뻔한 레퍼토리로 오리온처럼 우리 부와는 상관없는 죽음이라며 선을 긋겠지. 그러면 내 강아지는 보호자를 잃고, 우리 부모님은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자식을 잃고, 어떻게든 힘내라며 응원을 해주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배신하는 일만 되는 거겠지. 그러니 나는 살아야겠지.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나쁜 짓까지 하면 안 되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살을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성당을 찾긴커녕 하느님이 무서워 기도조차 못 드리던 나는 마침내 저 짧은 문자에 맞게, 짧은 기도를 바쳤다.


더 이상은 제발. 그들 만큼은 제발... 잊으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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