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의 불가촉천민 (2)

산재 같은 거 너한테 불리할 뿐인데, 이걸로 조용히 퉁칩시다 우리.

by 아나스타시아

그렇게 불가촉천민이었던 나는 나날이 병들어감에도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윗분 말씀대로 나의 "페미니즘"의 부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갖고 있는 "정신병"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유별나게 심한 PMS와 생리통을 달고 사는 나는 그렇게 마음을 두들겨 맞은 뒤, 가끔 며칠 불규칙하긴 했어도 꼬박꼬박 잘하던 생리가 6개월을 멈춰버렸다. 하지만 연이은 국가행사와 해외출장으로 사고 후 6개월 뒤인 11월이나 되어서야 산부인과를 찾았을 땐 왜 이제야 왔냐고, 없던 근종은 왜 세 개나 만들어 왔냐고 의사 선생님께 잔뜩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경 찾은 정신과에서는 불면증, 경도 우울성 에피소드, 강박, 공황장애를 판정받았다.


남자 상사에게 저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입 싼 조직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문이 서울·세종 할 것 없이 파다하게 퍼지는 게 싫었다. 가뜩이나 무능력으로 매주 나를 해고하라고 지시하는 청와대 비서관실에서 나를 감싸고 돌아와 주시는 과장님께는 몸 관리마저 못하는 뭐 하나 못하는 직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텅 빈 사무실에서 네 명의 전화를 착신으로 돌려놓고 양손으로 전화를 받아대며 겨우 숨만 쉬며 잔뜩 풀이 죽은 나를 옆팀 여자 사무관님께서 불러 상태를 말해 그분의 입을 빌려 과장님의 양해로 한 달의 병가를 얻어 그나마 나를 돌보다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벼랑 끝에서 떨어져 용량이 떨어진 나는 한 달의 충전으로는 반도 충전이 되지 않았고 앞서 말했듯 8달 만에 끔찍한 퇴사를 맞았다.


공허한 시간 동안 근종 때문에 수시로 쇼크성 생리통이 찾아왔고, 공황발작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정신병동 입원의 권유라는 그래도 참기가 주특기인 나에게도 너무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일단은 혼자 있는 게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고, 잠시만이라도 쉬고 매일 상담을 하다 오면 좀 나아질 거라고.


이 소식을 들은 근로공단에 다니는 친구는 억울하지도 않냐고 언니 녹음 자료나 그런 거 하나도 없냐고, 동료 증언이 필요한데 증언해줄 사람은 없냐고. '불가촉천민'인 내 편에 누가 서줄까? 아니 서줄 사람이 있다고 해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달간 국가 기관을 상대로 그렇게 싸울 힘도, 이길 자신도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난 벌써 퇴사를 했는데, 아직 퇴사를 했다고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는데. 내가 이렇다는 것도 모르시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다시 한번 옆팀 사무관님의 연락으로 그분을 만나 뵙게 됐다.


조금만 참지 왜 그랬어~,
사실 자기네 팀장님 지금 본인 퇴직에 문제 있을까 걱정이 많으셔


연락할까 말까 하다 본가에 내려가기 전에 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해봤다는 사무관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팀장님. 저 정신병원에 들어가래요. 제가 저희 팀장님 하고만 힘들었을까요? 새로 들어온 동료며, 믿어왔던 선배며 모두 제가 나쁜 사람이래요. 솔직히 사무관님은 제가 자살만 안 하면 퇴직에 문제없으신 거 아닌가요? 저는 죽기 직전까지 참아가면서 일한 게 그렇게 큰 죄인가요? 저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요. 이제 일도 없는데 퇴직금을 그런데 쓸 순 없잖아요. 부모님도 모르셔요. 부모님의 기도는 저 먼 땅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만 명이 넘어가는 스페인 땅에 있는 동생을 위한 기도 하나면 되지 저까지 이렇게 망가져서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네 저 소리 질렀어요 어른한테. 하지만 절규였어요 팀장님. 저 그렇게 안 하면 죽을 것 같았어요.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 제가 힘들다는 걸 윗분들은 들어주셨을까요? 이상태에서 제가 산재 신청을 하고 그 과정을 이겨 나갈 수 있을까요? 저 좀 살려주세요 팀장님."


사무관님의 손을 잡고 그렇게 한 시간을 대성통곡을 했다.


사무관님은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에 본인도 너무 당황스러워하시며 말씀하셨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면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줄 테니 기다려봐. 나쁜 생각 하지 말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일주일 뒤 온 연락은 나를 더 바보로 만들었다.


"국장님이 그래도 자기가 이때까지 고생 많이 한 거 알고 안타까워하시고, 자기네 팀장님도 자기를 "딸"처럼 여겨서 이번 일을 많이 마음 아파하신대. 자기도 알다시피 산재 처리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아. 그래서 자기네 팀장님이 마침 사직서에 날짜를 안 받아뒀다며? 자기 배려해서 그러신 것 같아. 국장님이 5월 중순이 아니고 말일로 퇴사일을 처리하자고, 그러면 보름치 급여라도 받으니까 우리 그렇게 하자. 괜찮아?"


그렇게 돌려 돌려 산재 같은 걸로 일 크게 만들 생각 말고 "큰" 배려를 받아 2주 치 급여나 받을 수 있으니 성은에 망극하라는 말씀에 알겠다는 짧은 대답으로 통화를 끝냈다.


그렇게 버려진 나는 정말 "입원", "감금"까지 되어야 하는 정신 병자로 나에 대한 동정심을 팔아 2주 치의 돈을 더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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