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천민, 사람이지만 짐승의 취급을 받는 자
사실 중앙정부 소속기관이니 청와대니 화려한 이름은 많이 등장했지만, 나는 흔히 손가락질받는 '무기계약직' 직원이었다. 공무원만큼 대접받고 싶으면 공무원 시험을 봐서 정정당당하게 노력도 하지 않고 공무원 대접을 받길 바란다고 욕먹는 사람.
하지만 그 실상을 알면 '무기계약직'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없으면 공무원 사회가 아예 마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실제로 외국인을 상대하는 기관을 운영하는 우리 팀 팀장이자 사무관이자 '센터장'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해 영어로 전화가 오자마자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나에게 전화를 돌려버렸다.)
취업준비생이라면 한 번쯤 (혹은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도 되겠다.) "나라일터"라는 사이트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리크루트 공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이거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 왠지 모를 사명감과 뿌듯함을 기대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파한 공고들이 판을 치고 있다.
토익 900점 이상, 제2 외국어 (필수/혹은 가산점), 경력 O년 이상
이런 사람들의 급여는 세후 200만 원 안팎.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만 해도 나 홀로 유일한 국내파였다.
심지어 학사 출신도 드물었다. 보통은 석사 출신, 심지어 해외대 박사 출신까지 있었다.
"공무직"이라는 애매한 별칭으로 공무원의 마인드로 공무원처럼 행동하고, 공무원처럼 일하고, 공무원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메꾸어갔다. 연금도 없고, 수당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자기들이 어디 가서 공무원 7급 대접을 받으면서 180~190만 원을 받아 보겠어.
해주면 해줄수록 더한 게 계약직들이야!
지들이 못마땅하면 우리도 아웃소싱 준다 그래! 자기 위치를 몰라!
(실제로 내가 있었던 조직의 기획과 [사기업으로 치면 인사+재무+회계 등이 합쳐진 과 정도 되겠다] 장이 뱉은 실제 대사다)
취권을 발휘하는 나 같은 수준의 인간에게는 감사하면서 받을 월급. 5개 국어 중 모국어로 할 수 있는 외국어는 단 하나도 없는 무능력자. 받아만 주시니 감사하다고 합격했던 대학원 입학을 취소하고 들어갈 자리. 그런 자리가 대단한 무기계약직의 자리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무기계약직이 조금이라도 공무원인 양 행동하면 그 순간 바로 선을 긋는다. 대한민국 행정부의 무명 유실한 카스트 제도가 아닐까 싶다.
* 어공: 어쩌다 공무원 (외부에서 유입된 공무원을 일컫는 말로, 전문경력관, 전문임기제 등이 되시겠다.)
늘공: 폐지된 외시, 사시, 행시, 공시에 합격하신 진골·성골 공무원을 말한다.
내가 사고를 쳤던 그날도, 프랑스어로 '난 죽을지도 몰라'라고 한 그날도, 매일매일 "원래" 일 안 하는 공무원의 일을 대신하는 나날들도, 나는 계약직이었다. 한낱 계약직인 나는 도움을 청할 노조도 없었고, 노무사를 찾아갈 수도 없었다. 그저 의미 없는 계약직이니까.
무기계약직들은 감히 공무원님들의 권력을 넘보지 않는다. 그걸 감안하고 시작한 일이니까. 인천공항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뉴스가 연일 터졌을 때 그 기사를 조금이나마 신경 써서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무기계약직들도 그런 식으로 정규직이 되는걸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부릴 땐 공무원, 잣대도 공무원, 하지만 짐승 계급에게 노동인권은 없다. 그게 무기계약직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무기계약직을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즐겁게 했다. '내가 이것도 해냈구나. 내가 이 순간에 함께 할 수 있구나.'라는 감사함으로.
하지만 유기인(遺棄人)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공무원들님께 나는 유기인조차 되지 못함을, 불가촉천민인 나는 유기 짐승이었다는 것을.
혹시나 어디 가서 헛소리는 하지 않을까, 본인들 귀찮을 일은 만들지 않을까.
'마치 내버린 반려동물이 집으로 찾아오는 길을 기억하지는 않을까?'라며 내다 버리는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나는 유기동물이었다.
감히 그런 내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