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형성

by 아나스타시아

모두들 내가 "욱" 하는 마음에 일을 관두었다고 생각한다.


"욱" 해서 애비뻘 되는 중간관리자한테 악을 쓰고 고함을 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생각한다.


세 달만 참으면 눈 앞에서 사라질 상사와의 마찰로 그만두었다고 아깝다고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긴 넋두리를 풀자면 욱을 한 순간은 내가 사표를 내던진 순간이 아니다.


정말 "욱"했을 땐 나의 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바로 그날 2018년 6월 5일이 기점이었을 거다.


내가 무너졌던 날. 내 모든 노력과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왔다는 나의 버팀목이 부러졌던 그날.


아침 일곱 시 반부터 과장님으로부터 "야! 너 내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어? 지금 이거 어떡할 거야? 이렇게 하면 청와대 지시 거부인 거밖에 더 돼? 카톡 다시 봐.(뚝)"


청와대 모 비서관실 국장님으로부터 "뭐, 술 한 잔 빨고 일했나? 본인이 무슨 짓은 벌인 줄은 알고는 있죠? 뭐 잘못했는지 반성문 자필로 써서 스캔해서 보내고, 공직자 메일 공인인증서랑 비밀번호 전부 내놓으세요.(뚝)"


모두 해외출장을 떠나 그들의 일을 모두 떠맡아 하면서, 메일을 보내기 전날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정장구두를 신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앉지 못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다 밤 아홉 시 겨우 사무실로 복귀해 보낸 메일 한 통이 내 과정이 되었고, 내 능력이 되었고, 내 결과가 되었다.


북미회담에 로우키로 일관하자던 대한민국을 내 메일 한통에 북치고 꽹과리치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것도 온갖 오타를 섞어 음악도 아닌 소음으로 자진모리 장단을 치는 나라로 내가 만들었다. 어쩔거냐고 왜 아무말도 못하냐고 다그치는 과장님 앞에서 할말이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역사적으로 이루어낸 남북화합과 북미의 온화한 기운을 내가 다 깨뜨리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청와대 비서관, 국장(선임행정관), 과장, 과 내 모든 사무관들이 나 때문에 비상 회의를 열고 대책회의를 하고 결국 1,000여명의 사람들에게 사과 메일을 발송했다.


이 메일을 보내기 직전 주말까지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2주동안 준비하고 진행하고 돌아와 바로 청와대 행사를 챙기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최선을 다한 것. 뾰족구두로 뛰어다니는 와중에 카톡으로 받은 업무지시를 잊지 않으려고 계속 되뇌이며 집이 아닌 사무실로 들어와 컴퓨터를 켠것. 그것은 수고도, 노력도, 과정도 아니었다. 헛짓이었다. "힘들면 못하겠다고 연락이나 했어야지!". 힘들다는 말을 못한것도 내 잘못이었다. 능력도 없는게 열심히 한다고 설친 것도 내 잘못이었다. 모든게, 내 탓이었다. 설령 누군가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았다.


내 탓을 하는게 가장 쉬운 방법 이었으니까


모든게 그 모든게 내 탓이었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더 이상 무언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내적 자신감은 붕괴되었다. 조그만한 일에도 침습적 공포가 나를 뒤덮었다. '또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쩌려그래?', '쪽팔리지도 않아?', '네가 여기 가당키나 해?'


축복이었고, 내 삶을 살아나가고 채워 나가던 직장은 이제 나에게 공포가 되었다. 어디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내 앞가림만 할 수 있으면 싶어 '사고'를 친 주말 바로 토익시험 접수를 하고, 틈만 나면 낼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단 한 곳도 날 찾아주지 않았다. 나의 효용가치는 0이구나. 벼랑 끝까지 나를 밀었다.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 해야만 했다. 나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다른 직원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하루하루를 공포속에 살다 결국 출근 지하철 안에서 공황발작이 왔다. 숨은 쉬어지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고, 손발의 감각이 모두 상실된 채 기어나오다시피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그저 '내가 이대로 죽겠구나.' 라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손끝의 감각이 이미 없어 문자는 커녕 사무실로 전화도 걸 수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에 늦는다고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했다.


그 친구는 고맙게도 전화는 물론 한 걸음에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지하철 역 안에서 숨쉬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119를 불러주었다. 친구는 따뜻했고, 다정했다. 너무 놀라 그렇다며 나를 안심 시켜주려했다.


2018.6.14 첫 공황발작이 있던 그 날.


그런데도 사람은 참 무섭더라. 응급실에서 링겔을 꽂은채 나도 모르게 "오늘 야근 있는 날인데..." 라는 말에 "그럼 집에가서 좀 쉬고 저녁에 다시 출근하세요."라고 말하는게 내 직속 상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상사는 장 샤를르 부슈가 말하는 '악성 자기애자'였다.

악성 자기애자는 고통 받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 주위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내면은 사실 매우 허약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통 받아야 마땅함에도 "너 때문에……"와 같은 투사, 특히 투사 동일시 기제를 통해 자신은 면죄부를 받는다.(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 95p, <바다출판사>)

'나만 아니면 돼!'는 퇴직이 코 앞인 만년 공무원.


다른 직원들이 돌아와도 달라질 것은 하나 없었다. 수치심만 늘어났을뿐.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면, 내가 모든 업무를 하진 않으니 불안감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더블체크, 트리플체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몇 달 후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던 추석, 다시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곳에서 또 다시 나는 폭행을 당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대체 무얼 한거냐며 빨리 뛰라고 밀치다 못해 분을 못이긴 청와대 행정관은 내가 제출했던 취재 계획서를 구겨 가슴팍에 던지며 말했다.


"넌 한국에 돌아가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책임지게 될거니까 그렇게 알아."

"저 새끼는 왜 안뛰어? 빨리 무전 쳐 뛰라고", "너 지금 경찰이랑 노가리 깔 때야? 상황 파악이 안 돼?"


눈물을 머금고 EU건물을 뛰어다니고 있던 그 때, 지나가던 한 EU직원이 날 붙들었다.


"봐. 지금 너희 양자 정상회담은 30분이나 남았어. 지금 당장 너에게 화내고 있는 저 사람에게 말해.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제발 날 먼저 데려다 줄 수 없을까요? 저들은 내 동료도 아니고 내 상사예요. 제발. 저들이 그 곳에 가야 진정을 할 수 있어요. 그 전까지 난 당신과 한 마디라도 더 이어갔다간 난 '죽을지도'몰라요."


그렇게 양자회담 사전 집합지에 도착해 감사의 인사를 건내려는 순간 "너 지금 웃고 떠들때야? 진짜 정신 안차릴래?" 라는 행정관의 말에 그렁그렁한 눈물로 그 직원에게 고개를 숙이는것 빼곤 할 수 없었다.


누가 거기서 날 죽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난 2년 전부터 매 순간 죽을 고비를 넘겨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갑 청와대. 그들의 한 마디, 가끔은 그냥 차가운 표정에도 나는 숨이 멎는것 같았다. 퇴사를 결심하던 그 순간까지 나의 가장 두려운 존재라면 청와대, 나를 가장 괴롭게한 존재라면내 상사를 꼽을듯 하다.


이런 긴긴 이야기들 위에 켜켜이 쌓여가는 수 많은 사건들이 내 목을 조여가고 있었다.


도무지 나의 공포와 괴로움과 불면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 입소문 빠른 공무원 조직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다닌다는 것까지 밝혔다. 그나마 복귀했던 모든 직원들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금방 이 곳을 떠나버렸기에 동정표라도 얻어서 나를 지켜야 했다. 이제 나를 위에서 지켜주고 곁에서 위로해줄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떠난 사람들의 일까지 모두 내 몫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겁게 이어나갔다.


'오늘 하루도 저에게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바치던 기도는 하루에 스무 알도 넘는 약을 삼켜가며, 애써 무너진 나를 몰아세우며 '내가 잘하든 못하든 지금은 해야할때야. 못하면 또 밟히고 또 맞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래야 할때야.' 라고 채찍질을 하고있다고. 내적신뢰감이 무너지는 사고를 겪은 사람이 그 트라우마를 안고 일하고 있다고. 제발. 제발 저 좀 도와달라고 바뀌어가고 있었다.


또 현실적으로 너무 힘드니 어떤 조치든 취해달라는비는 나에게 상사는"고생 많으시네요, 얼른 퇴근하세요." 한 마디로 모든것을 '퉁'치고는 나를 외면했다.


그래도 새 직원이 하나라도 들어올때까지 버텨볼 요량이었던 나는 과장님의 배려로 한 달의 병가를 얻었다. 직속상사도, 나 때문에 졸지에 다른 팀일을 떠 안게된 팀까지도 너무 미안했지만, 지금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그대로 나는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부모님께는 1년치 휴가를 모두 소진했다고 거짓말을 한 채 스페인에 있는 동생에게로 바로 떠났다. 주치의는 쉬는건 좋지만 상태를 계속 지켜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두 염려를 표했지만 그땐 그것만이 살 방법이었다.


짧은 한 달이 끝나고, 공교롭게도 생일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맞았던 생일 중에 유일하게 죽고싶다는 생각이 든 생일이었다. 오자마자 하나도 처리되지 않은 일들과 아무일도 모르니 OJT조차 받지 못한 두 신입은 내가 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후 그 둘 중에 한 자리 마저도 한 명은 한 달, 다른 한 명은 열흘만에 이 일을 관두고 12월이 다 되갈때까지 생신입과 일을 했다. 초과근무 시간이 100시간이 넘어갔다. 처음으로 세후 월급이 300만원을 돌파했다. 밤이고 주말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해야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바보같은 성취감이 또 들긴 했지만, 결국 내가 모든 키를 쥐고 우리 팀을 이끌어 갔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더 이상 이렇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완벽히 충원된 구성원들로 조직이 새로 꾸려졌으니 업무 분장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는 2년 반 전과 다를게 없었다. '일 안하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셋이 알아서 할 것. 정말 무능력, 귀찮음, 고집이 결합된 최고의 제시였다.


더 이상 나는 이를 견딜 수 없었다. 내 몸과 영혼이 망가지는건 이걸로 충분했다. 흔히 말하는 '계급장'을 떼고 대들었다. 이렇게는 못한다고. 지금 갑질하시는거라고.


그는 중간관리자로서의 고통은 받지 않았다. 2년 반을 버티다 발악을 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나는 이 일 모르고 실질적으로 당신이 팀장 역할을 하는거예요. 일 많다 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하세요. 정신병은 당신만 걸립니까? 나도 정신병원 가면 당신 때문에 정신병 소리 들을 수 있어요!"


내가 실질적으로 30년차 사무관이라. 연금이랑 월급이랑 그만큼이 됐던가. 아니 그 무엇보다. 정신병이라니.

도대체 당신이 그렇게 쉽게 내뱉는 그 '정신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당신은 알기나 하는가?


그 순간 내가 용기만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고싶었다. 하지만 죽을 순 없으니 "전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나머지 얘기는 노동부 통해서 들으시죠." 라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 즉시 사직서를 쓰고 스캔본을 팀원에게 돌리고 그의 자리에 올려두고 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사표 던지기를 내가 해내다니



'욱'이 아니었다. 3년에 걸친 살고자 하는 '발악'이었고 '절규'였다.

하지만 훗날 나는 '욱'이 되고 '조직 질서를 해친 사람'이되고 '상사를 겁박'하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PS. 요즘 직장인 버킷리스트에 '유튜버', '상사한테 사표던지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내 경험으로 작은 대리만족을 느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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