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신병원이란 어떤 곳일까?
정신과 치료도 이제 2년에 가까운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 정도가 심각한 분들보다 길진 않지만, 나름 짧지만은 않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그 어떤 분야보다 정신과는 선생님과 나의 케미스트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첫 선생님부터 오늘 눈물을 흘리며 작별한 주치의 선생님까지 겪었던 선생님들과의 경험을 토대로 했을 때.
주치의와 나의 합은 내가 낫고자 하는 의지, 즉 살고자 하는 의지에 생각보다 지대한 영향을 준다.
나의 경우 그 합의 기준점은 바로 주치의의 공감 능력과 그 감정의 표출 정도인 듯하다.
물론 진료 만족도를 개인적으로 측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외부적 요인'이다. 루틴한 일상 속에서, 즉 안정적 환경이 조성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투약을 했을 때 심리적, 육체적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에 맞게 의사의 진찰이 이루어지면 가장 완벽한 치료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매일매일 미친 세상을 살아 나가야 된다. (아. 맨날 내가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세상에 미친것들 밖에 없는데, 그거에 비하면 이 세상은 미친만큼 정상이야.") 예상치 못한 전쟁을 매일 치르고, 마음은 진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온다. 그 마음에 정수물과 약을 넣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첫 번째 선생님을 만났던 시점은 스트레스보다는 불안이 높았던 시기였던 듯하다. 기질 자체가 강박이 높은 편이라 선생님께서는 강박에 좀 더 초점을 두셨고 불안보다는 공황, 우울, 강박, 수면 네 부분에 집중을 하셨었었는데 너무 테스트 결과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런 진료가 이루어진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선생님의 방식을 비판할 마음은 전혀 없다. 개개인별 차이는 있기 마련이니.)
진료는 5~7분이면 끝났다. 이번 주의 몸 상태는 어떠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의 체크만 끝나면 투약 종류와 투약량을 결정하고 진료가 끝났다. '정신과 진료는 상담과는 다르구나, 일부러 환자에게 본인의 감정은 절제하면서 질환에 집중을 하는구나.'라고 그러려니 하며 치료를 이어갔다.
하지만 치료 전 보다도 더 상황은 악화되었다. 공황발작은 물론, 눈으로 확인 가능한 수전증에 이명이 이어졌고, 잠을 청할 수 없어 먹은 수면제는 그 유명한 '졸피뎀'까지 먹어야 겨우 잠에 들었다.
이런 나에게 내 친구는 본인의 주치의 선생님을 권해주었다. 현상유지를 좋아하는 나는 그 친구의 의견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냥 변화가 무섭고 싫어서 두 달을 버티다 예상치 못한 사고 아닌 사고를 겪고서야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잔업이 많아 집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졸피뎀을 먹고 잠에 든 나는 내 동생의 모닝콜에 눈을 떴다. (고맙게도 동생은 내가 수면제를 버거워하는 걸 알기에 모닝콜을 자처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나는 "회사. 일어나야 돼. 회사. 준비. 회사."라는 영혼이 빠져나간 말을 반복하고는 전화를 끊고, 아침대용으로 마실 아보카도바나나 셰이크를 그 날카로운 부엌칼과 믹서기를 들고 갈아 챙겨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회사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부분도 기억하지 못했다. 옆자리 직원에게 내가 몇 시에 왔냐 물으니 9시 정각에 도착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본 시간은 9시 7분.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만일 내가 내 의지가 아닌 무의식 상태에서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면...?
가뜩이나 죽은 내 모습, 죽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치는 그 시기를 더 이상은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변화를 싫어하는 나는 두 번째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또다시 테스트지를 받아 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어떤 답을 체크하면 내가 "불쌍해"보일지 또 "아파"보일지 너무나 뻔했다. 지난 병원에서도 이미 했던 테스트. 내가 솔직하게 대답을 해나갈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며 답을 체크해갔다.
그리고 첫 면담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달랐던 점은 선생님이 나의 에피소드들에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것. 전에 없던 '마음이 많이 힘드셨겠어요.'라는 리액션이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아... 이 사람이라면 내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알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매주 선생님을 뵐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은 병원 문턱 앞에서 늘 무너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함께 우셨다. 내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다. 그 순간부터였을까? 선생님께서 권하는 혹은 권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처방은 곧 바뀌었다, 우울성 에피소드는 경도에서 중등도로, 공황발작과 수면장애로.
퇴사를 코앞에 둔 순간에도 본인의 소견서는 산재에 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지금 혼자 있으면 너무 위험하다고 병동 입원을 권하시던 순간에도 쓰여있던 단어 하나하나에 선생님의 걱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살려고 찾아간 대학병원 정신의학과에서는 대기 시간 내내 왠지는 모르지만 잔뜩 화가 난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저런 사람들과 같이 입원해 있는다고 내가 안전할 수 있을까? 정말 쉴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중 수련의의 10분 정도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후, 3분 만에 담당 교수님과의 상담이 끝이 났다.
그러니까... 지금 병원은 다니고 있고. 본인이 입원을 원하시는 거죠?
그런데 지금 우리 병원엔 병상이 없으니까 OO병원으로 가세요.
'내 트라우마는 평생 이렇게 안고 가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계속 아파야 하는 걸까?'라는 실망감을 안고 다시 본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곳에 가면 더 아플 것 같아요."
그런 나를 주치의 선생님은 따뜻한 말로 안아주셨다.
제가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힘들면 일주일에 몇 번이든 예약 잡고 저 찾아오세요.
그렇게 안아주시던 선생님 덕택에 퇴사의 순간도, 퇴사 후 상처의 순간도 조심조심 미끄러지지 않고 잘 걸어왔다고 믿고 있다.
좋은 병원, 좋은 선생님이라는 기준이 과연 뇌과학, 정신의학에서 구분이 지어질 수 있을까?
재미있는 기사를 공유하며 이 글을 이만 줄인다.
정신상담의 능력은 꼭 '스펙'이 보장해주지 않아요 (2020.9.27 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전문의)
PS. 10월 26일 오늘로써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 진료를 진행해주신 Y 선생님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인도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더 좋은 선생님이 자신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실 거라 말씀 주셨지만, 아무것도 아닌 저 조차 미워하는 저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주신 선생님은 제 인생에 정말 소중한 분으로 남으실 거예요. 그 어떤 곳에서든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선생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랐던 한 사람이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