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정신 위에 건강한 몸이 설 수 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클리셰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진짜 지겹다 못해 짜증이 날 법도 한 말이다. "누가 몰라서 그 스트레스 받습니까?!"라고 되묻고 싶은 말이다. 이제 나는 저 말을 들으면 공감지수와 함께 분노지수가 함께 치솟는다.
Q. 다음은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께서 환자들에게 가장 자주 많이 하는 말입니다.
성격이 다른 한 가지를 고르세요.
①술, 담배 하지 마세요 ②기름진 음식 드시지 마세요 ③운동하세요 ④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너무 당연한 문제이지만 정답은 역시 ④번이다. ①~③과는 다르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게 ④ 아닌가?
특히나 그 스트레스가 타인과 엮여있다면 내 노력으로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은 5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상대방의 몫이 된다.
장황하게 앞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정신의학과를 빼고도 지금부터 내가 겪었던 몸의 아픔들을 주우욱 나열해보기 위해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는 괴물에게서 나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아직 나는 알아내지 못했다. 해소하는 방법도 아직은 모른다. 그저 "참아"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참는 것, 묵히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리고 그 케케묵은 마음이 나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어 얼른 그 방법을 알아내고 싶어 조금함이 생기기도 한다.
가장 크게 탈이 났던 부분은 바로 부인과 질환이었다.
원래도 PMS (생리 전 증후군)이 심했고, 자궁벽 자체가 일반인들보다 두꺼운 편이라 생리통이 심할 수밖에 없는 편이긴 했었다. 하지만 2018년 그 날, 사고를 쳤던 그 순간부터 아프긴 해도 주기에 큰 문제가 없었던 생리가 반년 동안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3cm, 2cm, 1.7cm의 자궁 근종이 생겼다. 그리고 그 그 근종 때문에 매달 쇼크성 생리통이 찾아왔다. '나는 몇째 날이 제일 아프고, 끝날 때쯤이면 날아갈 듯하고...'라는 루틴 한(?) 생리통을 앓는 사람이 이젠 부러울 지경이다.
요즘 젊은 여성에게 근종쯤이야 큰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전혀 없던 병이 누군가의 공격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생겼다는 것. 그것부터가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생리 유도제를 맞아 다시 생리를 시작하고, 1년마다 근종 추적 검사를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도 의사 선생님이 신신당부했던 말씀이 바로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였다. 내가 위협을 받고 있기때문에, 갯수의 한계가 있는 난자를 몸이 내보내는 걸 멈춘거라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생리주기가 일주일 이상 맞지 않으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더군다나 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루어진 추적 검사 결과는 가관이었다. 자궁 가장 한가운데 깊게 박힌 3cm짜리 근종이 7cm 나머지가 각각 방광 옆 4cm, 자궁 입구에 3cm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로 커있었다. 먹고 '살려고' 이 악물고 버틴 일이 나를 '못살게' 굴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제 근종은 개복수술밖엔 답이 없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일단은 지내보기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했다.)
그것 외에도 이명이 심해 이비인후과를 찾고, 두통과 에 더불어 코피가 코로 터지지 않고 입으로 나와 사약을 마신듯 피를 뱉으며 (별일은 아니라고 결론 났지만) 신경외과를 가고, 특히 조그마한 긴장이나 신경을 쓰면 바로 위장염이 찾아와 끊임없는 복통과 설사에 시달려 내과 선생님과는 절친이 되었다.
외래 진료를 받아 보진 못했지만 수전증이 온 적도 있고, 안압이 높아졌는지 눈알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날들도 있었다. 특히 퇴사가 가까워오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시점에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몸살에 시달리고 그냥 몸을 일으킬 힘이 전혀 나질 않아 이유 없이 출근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훗날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을 추천해줬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이 친구도 휴직 직전 나와 똑같은 무기력증을 겪고 있었다.)
우리가 커오면서 많이 듣는 말 "정신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정신이 건강하면 몸도 덜 아프다. 또 반대로 아픈 몸은 내 마음과 정신을 "나약하게"만들기도 한다. 유기체를 부분 부분 떼어서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저렇게 많은 병을 얻고 나서야 깨달은 결과다. 이젠 몸을 위해서 입맛이 없어도 꾹 참고 먹는다. 룸메이트 콩이와 함께 매일 조금이나마 산책을 한다. 물론 반대로 마음이 아플 때, 즉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특히 공황발작이 들이닥칠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 시간을 봐가며 친구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살려달라고 숨을 헐떡이며 전화를 걸기도 하고, 그 조차 여의치 않을 땐 약을 먹고 그냥 누워버린다.
스트레스는 만병까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많은 병의 근원인 것은 나의 체험으로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만성 스트레스를 달고 있는 나에게는 특히 시도 때도 없이 예상치 못한 고통이 밀려든다.
긴긴 엄살 이야기. 하지만 한 번쯤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는 것들이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
지금 직장 스트레스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있다면. 티 내라. 말해라. 드러누워라. 내가 못해서 결과가 엉망이 돼도 좋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라. 참는 건 지는 거다. 집에 와서 '이럴걸, 저럴걸' 이가 벅벅 갈린다면 이미 당신은 진 것이다. 버티는 건 살아남는 게 아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일뿐이다.
정말 내 몸이 앓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병자요"라고 당당히 말해라.
당신 능력의 최저 하한선과 최고 상한선만 중요한 게 아니다, 당신의 인내와 건강, 마음의 탄성 한계점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좌절과 분노로 부풀어 오르는 당신 마음속의 풍선의 바람을 빼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 중에 절대로 '건강'만큼은 포함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적어도 이 못난 글을 읽어주는 당신은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기에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