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랑에 빠졌죠

사랑은 이렇게 날 바꾸네요, 그대만 생각하게

by 아나스타시아

혼기 꽉 찬 큰 딸이 개혼도 하지 않은 채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 우리 어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실까 봐 걱정이 되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 5년을 만난 첫사랑과의 연애가 마감되었다. 오래된 공간 구석구석 남겨져 있는 그 친구의 흔적들을 치워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은 참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무슨 이 코딱지만한 방에 흔적이 그렇게나 많은지. 가뜩이나 잠수 이별을 당한 터라 끝난 지 안 끝난지도 모른 채 매주 나도 모르게 기다렸던 몇 주간의 빈 주말은 꽤나 공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쯤부터였던 듯하다. 대학교 때부터 (사실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었던 반려 룸메이트를 한 번 찾아볼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게. 하지만 나의 철칙 '책임지지 못할 거면 시작도 말자.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이든.'에, 출근하면 돌보아주지 못할 외로울 친구에게 할 짓이 못되는것 같아 들이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퇴사 이후 공허한 시간 동안 다시금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금살금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백수니까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도 있고, 집순이인 나를 그나마 집 밖으로 끌어내 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나를 죽지 못하게 잡아줄 친구.' 그렇게 유기견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찹쌀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마음에 쏘든 유기견을 발견했다. 찹쌀 이를 임보하고 있는 지점의 연락처가 없어 대표번호로 연락을 하자 '그때그때 입양 현황이 바뀌니 직접 방문을 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라는 대답을 받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대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했던가. 찹쌀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마치 찹쌀이는 이미 내 반려견이 된 느낌이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대답에 다시 나는 내가 끝까지 그 친구를 '잘' 키워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우연찮게 찹쌀이라는 유기견을 알게 됐는데 고민이 된다.'는 수다에 "일단 가보고 결정은 그다음에 해."라는 말로 얼떨결에 해당 지점에 갔다. (정말 이 친구는 10년째 알고 지내지만 추진력 하나는 대단한 친구다.) 하지만 슬프게도 찹쌀이는 이미 다른 식구를 만나 떠나 있었다.


아직도 이 첫 만남의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그때 케이지 속 병약하디 병약한 찹쌀이와 같은 치와와가 보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친구를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뒤통수에 큰 땜통이 있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친구라 "분양가"가 저렴하게(해당 센터의 평균가의 반 값도 안됐다.) 나온 아이였다. 그 친구도 내가 좋았는지 쉬야를 뿌려대며 나에게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거구나.'라는 것을 연애 공백 6년 만에 강아지와 해버렸다.


그 자리에서 반쯤 통보하듯 전화를 걸어 "엄마! 나 너무 예쁜 아기를 봤는데 데리고 가도 돼요?"라는 말에 너무나 의외로 흔쾌히 OK를 받고 급작스레 다음날 강아지를 데리러 오기 위해 급한 대로 배변패드를 사서 집에 오는 차 안, 강아지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아부지를 제외하고 난상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름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나는 이 아이의 엄마인가? 누나인가? (그럼 우리 박 여사님은 졸지에 딸내미는 시집도 못 보냈는데 할머니가 되는 게 죄송하여 누나로 결정되었다.)' 별별 이야기를 다 하며. 돌아와 새벽 두 시가 되도록 그 친구가 편히 지낼 수 있게 온 집을 쓸고 닦았다.


그리고 드디어 당일 이 친구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머리 땜빵은 많이 나아지고 있는 편이라며, 서비스로 약욕 샴푸로 땜통 케어를 일주일에 한 번 씩 2주 동안 진행해주겠다고 선심 쓰듯 매니저는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오는 길이 힘들었겠지만, 그 길이 누나만 행복한건 아니었길.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어제 오줌을 뿌려대던 때와는 달리, 기운이 없는 이 친구를 알아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들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백수생활 겸 텅 빈 원룸의 룸메이트가 생겼다. 그리고 내 생활의 모든 것은 콩이를 위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 09화A sound body in a sound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