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꼬물꼬물 귀여움만 상상하는 것은 큰 오산

by 아나스타시아

급작스럽게 데리고 온 룸메이트이긴 했지만, 내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많이 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개는 훌륭하다'라던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부터 유튜브의 '뭉땡뭉땡', '소녀의 행성', 강형욱 훈련사가 쓴 책까지 섭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섭렵했다.


하지만 이건 마치 출산을 앞둔 엄마가 육아책과 오은영 선생님의 강의를 보며 '그래! 차근차근 준비 잘해나가고 있다 나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막상 데리고 온 이 작은 생명체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귀여운 것도 잠시 젖먹이도 아닌 이 아기에게 피곤이 몰려온다. 교육과 반복학습을 시킨다는 것. 잔병치레. 예쁜 마음에 챙겨준 것이 때론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


같이 살면서 다정하게 산책을 하며 밖에서 깨 쏟아지게 놀다가 집에 오면 맘마 먹고 잘 자고 그런 솜사탕 같은 상상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웬걸. 접종을 맞추러 갔더니 강아지는 피접 상골 해 600g밖에 나가지 않아 (데리고 올 때만 해도 콩깍지가 씌어서 애가 비정상적으로 말랐다는 건 인지하지도 못했다.) 주사에 쇼크가 올 수도 있으니 1kg이라도 넘기고 올 것. 간식은 금물. 갖고 놀라고 주는 장난감보다는 휴지나 담요 자락을 물어뜯는걸 더 좋아하고, 내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며 집 전체가 화장실화되고, 자꾸 내 손을 물어대는 것이 아닌가. (참고로 강아지들의 유치는 영구치보다 뾰족해서 꽤 아프다.)


글로만 강아지를 배운 나는 이 아이가 물면 '혹시 얘가 말로만 듣던 공격성을...? 입질을 하네?!',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시원하게 일을 보면 '이러다 영영 화장실을 못 가리면 난 얠 어떻게 키우지?', '사료만 먹이라면서 대체 어떻게 얘를 확대시키라는 거야?', '어? 변이 왜 묽지? 어? 얘 변비인가?' 온갖 걱정을 했다.

반려견이 있는 친구들은 내게 이미 극성 보호자의 기미가 보인다고 했지만, 정말 하나하나가 걱정이고 부서질까 잘못될까 겁이 났다.


갓 룸메이트가 되었을 때의 콩이. 지금은 미니핀인지 헷갈릴 정도로 컸지만 새삼 이때 이렇게 작았는지 이제야 보인다.


그저 치와와는 작은 종이라고만 공부를 한 나는 원래 치와와가 작기 때문에 어련히 이 친구도 작은 거라 생각했고, 솔직히 그 작음이 나의 마음속 '귀여워' 불씨를 댕겨 이 아이에게 끌린건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나) "상품성" 때문에 이렇게 아기를 극도로 먹이지 않았을 줄이야. 또 '혹시 내가 귀엽다고 한 마음에 이 친구를 데리고 와서, 더 크면 이 친구를 안 예뻐하면 어쩌나?' 별 시답잖은 걱정을 다했다.


'어미개가 할퀴어서' 생겼다는 상처.


또 이 친구는 커서 이 땜통이 있어도 여전히 웃기고 예쁠 것 같지 않니?라고 말은 했지만 늘 콩이의 뒤통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순진하게 샵의 말만 믿고 도대체 어미개에게 무슨 아픔을 받아서 이런 흉터를 안고 이 친구는 살아가야 하나. 싶었다.


또 그 와중에 (역시나 나 답게) 이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나는 어째 하다 하다 강아지 한 마리 제대로 못 데려오나.(이 친구를 탓하는 건 절대 아니다.)' 라며 내 탓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겁이 많아 산책을 좋아하면서도 집 밖에만 나가면 새끼처럼 삐약거리지만, 이젠 내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장난감을 가져다 내던지며 볼멘소리도 내는 개린이가 되었다.


그래도 똘똘한 친구여서인지 이내 훈련도 잘 되고 정말 기를 쓰고 열심히 먹이다 작은 미니핀만큼 확대를 시켰다. 이제 함께한 지 4 개월. 이제 한 달 반 전쯤부터는 산책도 조금씩 하며, 교감도 하고, 13년이 넘는 자취생활에 생긴 혼잣말 습관의 "명분"이 되어주기도 하는 어느새 커진 콩이. 하지만 여전히 내 눈엔 너무나 작고 연약한, 하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만 바라봐주는 작은 아기일 뿐이다.


겁쟁이라 늘 내가 지켜줘야 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이 친구가 보호해주고 있어 든든하기도 하다.


어린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생명을 들인다는 것.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 아이가 내가 아플 때나 바쁠 때, 칭얼거리고 놀아달라 난리를 치다 삐져서 대답도 하지 않아 달래야 하고, 말을 듣지 않아 혼을 내며 화가 날 때도 있다.

마냥 예쁜...(예쁘다. 부정할 수 없다.)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잠시라도 외출을 할 때면 이 아이 생각에 집중을 못하고 안절부절을 못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또다시 상투적인 표현으로 글의 끝을 달려보자면


결국 반려 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늘 사랑만 하고 사는 건 사실 아니지 않나? 가끔은 서운할 때도 있고,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고. 그렇지만 그 모든 감정의 기반에 사랑이 깔려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를 바라봐주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어쩌면 나의 이 공백기간이 이 작은 천사를 만나기 위해 생긴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인 콩이를 오늘도 난 곁에 두고 잠이 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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