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난 너에게 보호가 되고

1인 가구에 살게 되어버린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주는 의미

by 아나스타시아

강형욱 훈련사가 언젠가 본인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고 고민은 되지만, 이 역시 사회의 흐름이라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인 가정이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건지
고민을 많이 해보는 요즘이에요


그렇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같이 살게 된 룸메이트의 밥값, 약값, 검진비도 벌어야 한다.

1인 가구도 반려동물과 너무나 함께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의 공허함과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우리 콩이만 해도 그렇다. 아직도 내가 화장실만 가도 나오면 문 앞에서 말똥말똥 화장실을 쳐다보며 날 기다리고 있다.


그런 아이가 하루 종일 (9-6 평균적인 업무 시간+통근시간을 계산하면 통상 10시간 정도는 친구와 함께 있을 수 없다.) 풀이 죽어 나 하나만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특히 분양을 받은 아이들이라면 사회성은 더더욱 배우지 못한 채 1개월 때부터 어미견과 떨어져 나와 사회성 조차 없어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그것이 6년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반려견을 들이지 않았던 이유였다. 난 너에게 잘해줄 자신이 없으니까.


치와와가 일명 악마견 전 단계인 지 O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그나마 '독립심이 강한 견종'이라는 것. 내가 어느 정도의 공백기를 가지며 함께 생활하고 외출도 하면서 떨어져 있는 연습도 해보고. 그러면 이 친구가 내가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어느 정도 견뎌줄 수 있는 내성이 있는 친구가 아닐까라며 '어쩜 우린 이렇게도 천생연분이람!' 하며 치와와를 공부해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서 말했듯 우리 콩이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누나 바라기다. 마치 아기들이 등 센서가 달려있다고 하듯, 콩이에게는 누나 센서가 달려 있어서 누나가 조금만 떨어져도 삐약삐약 울고불고 다급하면 짖기까지 한다.


지금은 다행히도(?) 내가 백수의 처지라 이 친구와 늘 함께해줄 수 있지만,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이 친구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콩이가 내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은 내 목숨을 연장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불안이 극도로 심한 나는 비몽사몽 갓 깼을 때의 공포를 굉장히 싫어한다. 여긴 어딘지, 지금 난 어디 있는 건지 불빛은 없고 (불빛이 조금만 새도 못 자고, 너무 깜깜하면 공황이 오는 참 극성맞은 잠버릇이 마음이 아프고부터 생겨났다.) 안경은 쓰지 않아 안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날 위협하기만 할 것 같은 그 상황. 정면으로 누워 잤는데, 왼편으로 돌아 누운 상태로 새벽에 눈을 떴다 치면 그때의 공포는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내 손이 닿는 곳에 안경, 핸드폰, 수면 라이트 리모컨까지 모두 두고 걱정에 걱정을 쌓아 잠을 청했었다. 하지만 콩이가 내 곁에 온 순간부터 달라졌다. 내 옆에서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져지는 솜뭉치. 그 안정감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어머니는 침대가 털 천지가 된다고 굉장히 싫어하신다.)


콩이가 우리 집에 온 후 처음으로 내가 공황발작을 일으켜 숨을 헐떡이며 대성통곡을 하던 순간, 6개월의 새끼 강아지는 본인의 장난감을 모두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나를 톡톡 치며 마치 '누나, 무슨 일이야 누나?'라듯 주변을 맴돌다 그런 내가 조금은 무서웠는지 가만히 내가 진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쇼크성 생리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도 혀가 닳을 정도로 나를 핥아가며 맨바닥에 쓰러진 내게 정신을 차려보라 핥아주기도 하고, 콩이가 침대 생활을 하기 전 집 생활을 할 시절, 도저히 나 혼자 잠들기엔 겁이나 콩이가 잠든 틈을 타 콩이 집 옆 맨바닥에 담요만 덮고 잠을 청하자 쪼르르 달려와 내 품을 파고들었다.


반려 동물과 함께 살고 계신 보호자 분들이라면 하나쯤은 다들 이런 놀라운 공감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계신다.


KakaoTalk_20201028_224827383.jpg 네가 잡을 손은 내 손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게

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올 때, 그리고 너무나 연약하고 걷는 것조차 불안정해 뇌압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른 병원에서 확인해보니, 벌써 이 작은 녀석이 슬개골 탈구가 와있었고, 다행히도(?) 그 불편함에 걷는 것이 비대칭적일 뿐이었다.) '나에게 위로가 되는 너에게, 내가 힘닿는데 까지 나는 보호가 되어줄게.'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요즘은 산책을 나가 벌벌 떨어댈 때를 제외하면, 되려 이 콩알만 한 녀석이 그 누구보다 나의 보호가 되어주는 듯하다. 투닥투닥 거리기도 하고, 특히나 손도 다치고 글을 쓴답시며 올려다보기만 해야 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미워서일까 자꾸 칭얼대는 이 아이.


같이 있어주는 것만이 보호가 아니라는 것 또한 느끼고 있다.


가족이 많은 집으로 분양이 되어 갔더라면 사회성도 길러지고 좀 더 겁이 줄어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는다. 그래도 이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했던 운명이기에 나에게 와준걸 거라고.


앞으로 함께할 10년, (하지만 늘 콩이 눈을 보며 말한다. "인간 수명이 100세로 늘어난다고 하니, 너는 40살까지 이제부터 누나랑 살 거야. 누나가 70이 될 때 같이 하늘나라에 손잡고 가자.")에서 15년을 함께할 너에게, 이미 영혼만큼은 수십 번 죽을 시도를 한 나에게 삶을 불어준 너에게. 다시 한번 약속한다.


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으니, 난 너에게 보호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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